그리운 이여, 꽃 같은 청춘이여

백화점 건물이 저 꼴이 되었다고?

by 화문화답

교대역에서 서초중앙로를 따라 삼호가든 사거리 쪽으로 가다 보면 법조 타운 건너편으로 아크로비○○라는 초고층 고급 아파트가 보인다. 이곳은 최근 내란 우두머리로 전락한 전직 대통령의 사저가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 아파트의 과거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라는 대형 참사 뒤, 서울시는 희생자 보상금을 대신 지출하고 삼풍 측으로부터 부지를 넘겨받았다. 이후 예산 손실 충당을 위해 이 부지의 용도를 상업용으로 바꿔 민간에 매각했고 결국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다.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당시 정민은 그 현장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5km 남짓 떨어진 ○○점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날도 퇴근해서 집에 도착하니 밤 9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무심코 TV를 켜자,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 건물의 흉물스러운 잔해들이 화면 가득 나타났다.


세상에! 지금 화면에 보이는 저게 삼풍백화점이라고? 백화점이 무너져 저 꼴이 되었다고? 정민은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저녁 무렵 얼핏 사고 소식을 전해 듣기는 하였지만 저렇게까지 심각한 상황인 줄은 몰랐다.


그때 화면 하단에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자막이 눈에 들어왔다. 사망자 명단이라고 했다. 김다인(여, 24세), 이채연(여, 22세), 박아린(여, 27세)..... 정민은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아는 이름들이었다. (가명 사용, 이하 같음)




90년대 초반 국내 백화점은 해외명품과 수입화장품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변신을 도모하고 있었다. 대호황기를 거치면서 고객들의 소비 수준과 눈높이가 대폭 상향되었기 때문이다. 강남권 백화점이 이런 트렌드를 주도했는데 정민이 근무하는 백화점과 G백화점, 삼풍백화점이 삼파전을 벌이고 있었다.


유명 브랜드를 선점하려는 경쟁을 넘어서 시장 점유율 우위를 확보하고자 각종 마케팅 전략이 치열하게 부딪혔으며 특히, 우수한 판매사원을 확보하려는 물밑 전쟁이 끊이지를 않았다. 무엇보다 이들의 역량이 매출을 크게 좌우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한 번 들어온 우수한 판촉사원(판매촉진사원)은 절대 놓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승진, 교육, 행사 지원, 결원 보충 등의 여러 명분으로 이들 세 개 백화점 사이의 이동 근무가 사실상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러다 보니 백화점 담당자들은 물론이고 주요 브랜드 판매사원들도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김다인은 불과 사고 며칠 전 매니저로 진급해서 그곳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녀는 서글서글한 눈웃음으로 까다로운 고객들의 경계심을 무너뜨리는 재주를 가졌다. 평소 아래 동생들을 가르치고 챙기는 역할을 잘해서 매니저로부터 굳건한 신뢰를 받았다.


한 번은 남성 구매 고객이 구매한 상품을 백화점 근처 카페로 가지고 나오라는 요구를 한 적이 있었다. 그 의도가 심상치 않은 관계로 다들 망설이고 있을 때 다인이 나섰다. 나가지 않는다면 매출 취소의 빌미가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도움을 요청받은 정민이 동행했고, 그 남성 고객이 다소 불쾌해했지만 별 탈 없이 마무리된 일이 있었다.


다인은 그런 직원이었다. 매니저가 되는 것은 좋지만 떠나기는 싫다며 눈물을 뚝뚝 흘리던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채연은 소속 브랜드를 옮긴 직원이다.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으므로 이직 자체가 문제 될 것은 없지만, 이로 인해 양쪽 협력사 간에 감정적인 이해관계가 충돌하였다. 이 경우 다른 백화점으로 이동 근무가 원칙이었지만, 정민은 채연을 놓치기 싫었기 때문에 적극 중재하여 채연을 매장에 잔류시켰다.


매장에서 채연을 마주칠 때마다 입 모양으로 파이팅을 외쳐주면 배시시 웃곤 하였다. 다른 직원들로부터 눈총을 받으며 힘든 시간을 견디어 내고 있던 그는 결국 삼풍백화점 매장으로 이동을 신청했다.


박아린은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을 중퇴하고 명품 브랜드 신입으로 들어온 친구이다. 뛰어난 외모에 거침없는 성격이 매력적이었으나 매장 생활에 적응이 힘들었는지 자주 흔들렸다.


브랜드마다 5~6명의 판촉사원이 근무했는데 그중 막내의 역할은 온갖 잡다한 일이나 판매 어시스트를 하는 정도였기 때문에 자칫 가치관의 혼란이 올 수가 있다. 결국, 박아린은 매니저의 요청으로 삼풍으로 발령이 났다. 다행히 그쪽에서는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민이 알거나, 알 만한 사람들은 이 세 명이 전부가 아니었다. 믿어지지가 않았다. 저 백화점이 진짜로 무너져 내려 저 꼴이 되었고, 고객들과 그 안에서 일하던 수많은 사람이 졸지에 목숨을 잃었다니.


사고가 일어났을 때가 간식이나 저녁 식사를 하는 휴식 시간이기 때문에 많은 직원이 직원식당이나 휴게실에서 참변을 당했다. 그 백화점은 직원 편의 시설이 대부분 지하에 있었다고 하니, 지상층에서 근무하던 직원들도 그 시간에는 지하로 내려갔을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고단했던 하루의 피로를 잠시 녹이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의 온기를 그리워하고, 또 누군가는 친구와 즐거운 저녁 약속을 떠올리고 있지 않았을까? 그런 행복한 시간에 느닷없이 들이닥친 참혹한 죽음을 짐작이라도 했겠는가.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서울 서초동에 있는 삼풍백화점 A동이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리는 사고가 발생한 시간은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2분경이었다. 이 사고로 502명이 사망하고 937명이 부상당하는 엄청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백화점에는 1,500여 명의 고객과 직원들이 있었으며, 순식간에 5층 건물이 지하 4층까지 붕괴하면서 많은 사람이 매몰되었다.


관계 당국은 ‘삼풍백화점은 4층짜리 상가 건물로 설계되었으나, 5층으로 무단 변경되었다. 이 과정에서 건물의 하중을 지탱하는 기둥의 개수를 줄이고, 철근을 부실하게 사용하는 등 기본적인 안전 규정을 무시한 부실시공이 이루어졌다. 건축 허가, 설계 변경, 시공 감리 등 전 과정에서 관계 당국의 부실한 감독과 뇌물 수수 등의 비리가 드러났다’고 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이전부터 건물 곳곳에서 균열이 발견되고 붕괴 조짐이 나타났으나, 경영진은 안일하게 대처하며 영업을 강행했다. 사고 당일에도 5층 식당가 천장이 내려앉는 등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고객들을 대피시키지 않고 부분적으로만 통제하였다. 고객 지향, 고객 우선주의를 그렇게 외치던 사람들이 정작 눈앞에 보이는 매출 손실에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




사고 발생 직후, 대규모 구조 작업이 펼쳐졌다. 소방, 경찰, 군인, 자원봉사자 등 많은 사람이 동원되어 잔해 속에서 생존자를 찾기 위해 밤낮없이 노력했다. 정민의 회사에서도 자원봉사자를 모집했다. 정민은 망설이지 않고 신청했다. 물론 낮에 근무하고 밤에만 할 수 있었다. 구조 작업이 밤낮으로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밤에도 자원봉사 활동이 필요했다.


구조 현장 인근에 간이 천막들이 설치되어 있고 많은 기업과 단체의 봉사자들이 음식이나 필수품을 제공하고 있었다. 정민은 주로 구조대나 관계자들에게 즉석 우동 같은 간편 식사와 음료를 제공하는 일을 했다. 다음 날 출근을 해야 하므로 기껏해야 퇴근하고 3~4시간 정도에 불과했지만, 구조 작업이 종료되고 자원봉사 시설이 철수될 때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근거리에서 지켜본 현장은 말할 수 없이 참혹했다. 포탄이 떨어진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먼지 냄새와 각종 소음이 뒤엉켜 잠깐만 서 있어도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지만 사람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한 명이라도 더 구조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정민은 어둠과 폐허가 가득한 현장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빌었다. 제발 살아서 돌아오라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내린 사고는 바로 직전 해 일어난 성수대교 붕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발생한 대형 사고였다.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38분경, 서울 성동구와 강남구를 잇는 성수대교의 10번과 11번 교각 사이 상부 트러스 48m가 무너져 내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등교하던 학생들과 출근하던 시민을 태운 버스와 승용차 등 6대가 한강으로 추락하여 32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당하는 안타까운 인명 피해가 있었다.

사고 조사 결과, 교량 건설 당시 용접 불량, 부적절한 자재 사용 등 부실한 시공이 이루어졌고, 완공 이후에도 정기적인 안전 점검과 보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또한, 이미 사고 발생 전부터 교량에 균열이 발생했다는 목격자들의 증언이 있었으나,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그리고 설계 하중을 초과하는 과적 차량의 빈번한 통행도 교량에 누적된 피로를 가중시켜 붕괴를 촉진한 요인으로 지적되었다.

사고의 책임을 물어 서울시장이 경질되었으나, 그 후임 시장이 성수대교 건설 당시 책임자였음이 드러나 11일 만에 사퇴하였다.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연이어 터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으며, 안전 불감증과 부실한 관리 감독의 심각성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다. 사고 이후 건축법 및 안전 관련 법규가 강화되었고, 대형 건축물에 대한 안전 점검이 강화되는 등 사회 전반의 안전 의식이 높아지는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유사한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에서,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잊어서는 안 될 뼈아픈 교훈으로 남아있다.


정민은 멀지 않은 곳에서 연이어 발생한 두 건의 대형 사고와 많은 이들의 안타까운 희생을 생각하면 여전히 가슴이 저릿해진다. 갓 피어난 꽃송이처럼 젊고 아름다웠던 청춘, 그들과 함께 웃고 울던 시간이 아프게 떠오른다.


정민뿐만이 아니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일상생활의 일부인 백화점과 한강 다리가 무너져 내린 대형 참사는 많은 사람에게 잊지 못할 트라우마를 남겨 주었다. 또한,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대하는 생각과 방식을 변화시키기도 하였다.




정민이 근무하던 백화점에는 공공연한 비밀이 있었는데, '어떤 입점 업체가 로열패밀리 낙하산이다' 같은 소문이었다. 그중 가장 많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던 곳은 식당가의 냉면집과 약국이었다. 냉면집은 항상 줄이 길게 서 있을 정도로 장사가 아주 잘 돼서 낙하산이라는 사실이 크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약국은 달랐다.


약국 사장은 영화 그랜 토리노의 월트 코와르키(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고약했다. 주변에 약국이 없어 거의 독과점으로 운영하다 보니 횡포 아닌 횡포를 부리는 경우도 잦았다. 직원들은 물론 고객들에게까지도 안하무인으로 대해 고객 컴플레인이 빈발했다.


그런데 이 분이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달라졌다. 개과천선(改過遷善)이라고 해야 하나? 일단 세상 친절해지고, 반말도 함부로 내뱉지 않았으며, 약을 던지듯 건네주는 나쁜 습관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고정 고객에게는 박카○를 서비스로 제공하는 선심을 베풀기도 하였다.


그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로는 그날 출근길, 성수대교의 무너진 지점 바로 10m 뒤에 본인이 있었다는 것이다. 아슬아슬하게 사고를 당하지 않았지만, 그때 그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은 불과 10m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 인생은 어느 순간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모든 게 부질없게 느껴졌고 욕심과 집착이 사라졌다고 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보게 되었고, 지금 당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잘해야 하겠다고 다짐했다는 것이다. 죽음의 목전에 이르는 사고를 경험해 본 사람에게 찾아온 '너무 늦지 않은' 참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