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 ‘가르침이 아니라 기다림’에서 4살짜리 아이가 장구 가방 지퍼를 열었던 이야기를 해드렸습니다. 저는 지금도 장구 가방 지퍼가 열렸을 때 환호하던 그 아이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마치 전쟁터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장군 같았습니다. 영화 안시성에서 당나라 대군들이 도망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양만춘 장군이었습니다.
4살짜리 아이를 보면서 나의 지난 세월을 돌아봅니다. 나는 언제 자신감이 폭발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마라톤 대회 참가였습니다. 제가 다니던 대학에서는 축제 기간에 마라톤 대회가 열렸습니다. 10km 단축 마라톤이었습니다. 제가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게 된 계기는 단 한 장의 포스터였습니다. 우연히 학내 게시판을 보게 되었는데, 마라톤 대회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지구력은 있지만 스피드가 뛰어난 것도 아닌데, 저의 시선이 한참 동안 포스터에 머물렀습니다. 결국 마라톤 대회 참가 신청을 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용기가 어디서 생겼는지 나도 모르겠습니다. 막상 마라톤 참가 신청서를 제출하고 나니 겁이 났습니다. 비록 10km 단축 마라톤이지만, 처음으로 마라톤에 도전하는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날짜를 계산해 보니 대회까지는 약 한 달이 남았습니다. “일단 연습해 보자.” 다음 날부터 새벽 4시에 일어났습니다. 깜깜한 새벽 도로를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라는 시간은 흘러갔고, 드디어 대회가 열리는 날이 되었습니다. ‘탕’이라는 총소리가 무섭게 앞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나의 능력에 비해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선두그룹에서 뒤처지지 않았습니다.
러너스 하이 = 엔도르핀
얼마를 달렸을까요? 목구멍에 숨이 막혀 더 이상 달릴 수 없었습니다. 무릎은 곧 아스팔트에 닿을 듯합니다. 이러다가 무릎이 박살 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극심한 신체적 고통에 ‘포기할까?’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의 머릿속에 또렷하게 생각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이 정도 고통을 이기지 못하면 다른 일도 마찬가지겠지. 그래! 달리자. 차마 죽기야 하겠어.’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며 계속 달렸습니다. 얼마를 더 달렸을까요? 몸에서 신기한 일이 벌어집니다. 극심한 고통이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나의 몸이 나비가 되었습니다. 나의 다리에는 강력한 터보 엔진이 장착되었습니다. 한 명, 두 명, 동료들을 앞지르기 시작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처음 출전한 단축 마라톤에서 1등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학 시절 마라톤 도전은 신이 내린 선물이었습니다. “당신의 삶에서 가장 큰 배움은 무엇이었습니까?”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마라톤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극심한 고통을 이겨냈을 때의 느낌이 어떤 것인지 배웠습니다. ‘골이 깊으면 산도 높다’라는 말이 있듯이 어려움이 클수록 찾아오는 행복도 높았습니다. ‘아! 내가 해냈다.’라는 경험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자신감을 상승시켰습니다.
아 내가 해냈다 = 엔도르핀
4살짜리 아이가 장구 가방 지퍼를 열었을 때, 단축 마라톤에서 1등을 했을 때, 즉 ‘아! 내가 해냈다’라는 성공 경험을 맛볼 때 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뇌 과학자의 설명을 빌리면 성공 경험을 느낄 때 뇌에서는 ‘엔도르핀’이 다량 분비된다고 합니다. ‘엔도르핀이 팡팡 터지는 날’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엔도르핀은 우리 몸에서 행복감을 만드는 화학 분자입니다.
엔도르핀은 우리 몸에서 분비되는 자연 진통 물질로 운동이나 통증, 스트레스 등의 상황에서 분비되어 고통을 완화하고 행복감을 느끼게 해 줍니다. 저의 단축 마라톤 경험으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탕 하는 총소리와 함께 출발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극심한 고통을 맛보게 됩니다. 무릎은 곧 아스팔트에 닿을 듯하고 숨쉬기가 어렵습니다. 더 이상 달릴 수가 없습니다.
이때 등장하는 주인공이 ‘엔도르핀’입니다. 우리 몸이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든 고통을 느낄 때 어김없이 등장합니다. 고통이 사라지고 내 몸이 나비가 된 것 같습니다. 꽃밭을 걷는 것 같습니다. 마라톤에서는 이것을 ‘러너스 하이’라고 부릅니다. 엔도르핀 덕으로 산모가 아기도 낳을 수 있겠지요.
엔도르핀을 두드려라. 배움 문이 열린다.
70이 넘은 나이에도 주말이면 높은 산을 등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힘은 들지만 정상에 도착했을 때의 엔도르핀을 맛보고 싶어서입니다. 작가도 그렇지요. 글이 써지지 않아 고통으로 세수하는 날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이유는 원고가 출간되었을 때의 엔도르핀을 잊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엔도르핀을 다시 맛보기 위해 글쓰기의 힘듦을 이겨내는 것입니다.
물론 엔도르핀이 절대적인 주인공은 아닙니다. 마라톤 완주, 높은 산 등반, 책 출간 등 장기간 노력을 통하여 어려움을 이겨내고 목적한 바를 이루었을 때 등장하는 화학 분자는 엔도르핀 외에도 도파민, 아드레날린, 옥시토신 등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설명은 뒤에서 자세히 다르겠습니다.
이제 배움 성공의 길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엔도르핀을 두드리면 배움 문이 열립니다. 장구 지퍼를 열었던 4살 아이처럼 배움에서 엔도르핀을 맛보게 되면 배움을 계속하게 됩니다. 독서에서 엔도르핀을 맛보게 되면 독서광이 되지요. 수학에서 엔도르핀을 맛보게 되면 훗날 유명한 수학자도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