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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범 Oct 28. 2021

기다림

하나, 둘, …… 아홉. 우리 학교 명상 숲에 아홉 개의 조그마한 꽃밭이 만들어졌습니다. 꽃밭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고 귀엽습니다. 잔디와 흙을 제거하고 직사각형, 정사각형, 원 모양의 구덩이를 팠습니다. 그곳에 퇴비를 배부르게 넣고, 깜찍하고 앙증맞은 담장도 세웠습니다.      

이곳에 꽃밭을 만들게 된 사연은 이렇습니다. 얼마 전 시설 담당 선생님이 고민이 가득한 얼굴로 찾아오셨습니다. “9개의 꽃밭을 어디에다 만들어야 할까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랬습니다. 11월에 3, 4학년 대상으로 1인 1 꽃 가꾸기 프로그램을 진행한답니다. 3학년 4개 반, 4학년 5개 반, 9개의 꽃밭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학교 주변을 살폈습니다. 9개의 꽃밭을 어디에다 만들 수 있을까? 마땅하게 어울리는 장소가 없었습니다. “명상 숲에 만들면 어떨까요?” 정말 좋은 생각이었습니다. 명상 숲 빨간 풍차, 솟대 옆에 꽃밭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풍차, 솟대가 외롭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에게 새로운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11월 중순이 되면 이곳에 3, 4학년 아이들이 튤립 뿌리를 심을 것입니다. 튤립밭 땅속에 자신만의 뿌리를 심은 다음, 그 위에 이름표를 세워준답니다. 아이들 마음은 어떠할까요? 추운 겨울을 잘 견딜 수 있을까? 새싹은 어떤 모양일까? 나의 튤립 색깔은? 등교하면서 쳐다보고, 주말에도 찾아오겠지요. 꽃에 대한 사랑, 식물에 대한 호기심이 애드벌룬처럼 커지기를 소망합니다.    

 햇살이 줄어드는 오후, 오색빛깔 꽃단장을 마친 미국 단풍나무가 튤립밭을 보고 있습니다. 그들도 튤립꽃을 기다리겠지요. 이곳 꽃밭의 이름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마음속으로 ‘기다림’이라고 정해 보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튤립의 색깔을 기다리게 하자. 우리 선생님에게 튤립 봄 길을 기다리게 하자. ‘기다림’이라는 사연으로 가을이 천천히 익어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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