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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범 Nov 25. 2021

튤립 감성

튤립 뿌리를 화단에 심고 있는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아이들 곁에는 튤립 뿌리가 한 바구니 가득 들어 있었다. 튤립 뿌리는 작은 감자들과 비슷하게 생겼다. 아이들은 튤립 뿌리를 하나씩 선생님께 건네받았다. 튤립 뿌리를 심기 위해서는 껍질을 벗겨야 한다. 양파 껍질 벗기듯이 튤립 뿌리를 벗겨내는 일이다. 선생님은 껍질을 벗겨야 싹이 잘 튼다고 말씀하셨다.     

튤립 뿌리의 껍질을 벗겨내면 하얀색의 속살을 드러낸다. 튤립 뿌리가 식탁에 있다면 양파로 오해할 것이다. 이제 튤립 뿌리를 땅속에 넣을 차례이다. 호미로 작은 웅덩이를 만든 다음, 그 속에 튤립 뿌리를 조심스럽게 넣고, 적당히 흙으로 덮어준다. 포근한 이불을 덮어주는 엄마의 모습과 비슷하다.    

 

이제 튤립 주인의 이름을 새겨 넣어야 한다. 아이들은 자신의 이름표를 조심히 꺼내 든다. 자기가 심었던 튤립의 위치를 찾아서 이름표를 꽂는다. 우리 학교는 대개 1개 반의 학생이 20명 조금 넘는다. 튤립밭에는 20여 개의 이름표가 꽂혀있다. 그 이름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심은 튤립이 흙 속에 잠들어 있어요.” “함부로 파헤치거나 소란스럽게 하지 마세요.”     

“튤립을 심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니?” 아이들의 생각과 느낌을 들어보았다. “저를 닮아서 씩씩했으면 좋겠어요.”, “빨리 새싹을 보고 싶어요.”, “잘 자랐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은 자신이 심은 튤립이 건강하게 잘 자라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튤립을 심은 흙을 몇 번이고 정성스럽게 쓰다듬고 있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감성’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감성을 쉽게 표현하면 ‘고운 감정’이다. 이것은 하천의 모래에 비유할 수 있다. 하천에는 모래와 자갈이 뒤섞여 있다. 여기에서 모래가 감성이라면 자갈은 감정이다. 자갈이 다듬어지면 모래가 되듯이, 거친 감정이 다듬어지면 부드러운 감정, 즉 감성이 된다.     

자갈, 모래 등이 뒤섞여진 곳에서 어떻게 고운 모래를 분리할 수 있을까? 공사장에 가면 그 답을 쉽게 알 수 있다. 공사장에는 ‘채’라는 것이 존재한다. 공사장 인부들은 삽을 이용하여 자갈, 모래를 ‘채’에 던진다. 채를 통과한 것들이 ‘고운 모래’이다. 이 모래는 화분, 벽돌 등 우리 생활의 여러 곳에서 중요하게 이용된다.     

어쩌면 교육이라는 것도 ‘채’에 비유할 수 있다. 우리 본성에 있는 감정들을 채에 던져서 고운 감정과 거친 감정으로 분류해내는 작업이다. 우리에게는 분노, 경쟁 등 거친 감정도 존재하지만, 사랑, 평화, 기쁨 등의 부드러운 감정도 존재한다. 교육의 중요한 일 중의 하나는 우리 본성의 거친 감정의 양을 줄이고, 부드러운 감정의 양을 늘리는 일이다.  


감성의 통로는 오감이다. 오감의 문이 열리면서 감성의 새싹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오감의 문은 한가지 감각에 의존하기보다는 협연이 이루어졌을 때 더욱 잘 열린다. 오케스트라 연주와 비슷하다. 보는 것, 듣는 것, 만지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특별히 우리가 가진 감성 유전자는 식물에 잘 열리게끔 설계되어 있다. 우리 아이들은 꽃을 심고, 가꾸고, 향기를 매일 맡아야 하는 이유이다.     


하굣길에 튤립밭을 살펴보는 아이가 보인다. 쪼그리고 앉아서 튤립밭을 쳐다보고 있다. 이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아이도 알고 있을 것이다. 꽃은 내년 봄에 핀다는 것을. 하지만 이 아이 마음에는 예쁜 튤립꽃이 피어있을 것이다. 새싹이 보이고, 꽃잎이 보이고, 향기가 전해져 올 것이다. 튤립 감성의 물결이 마음 호수에서 출렁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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