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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범 Nov 18. 2021

뜨개 옷 아이들

유채꽃 향기가 운동장을 가득 채우던 어느 날 선생님 한 분이 찾아오셨다. “우리 학교 나무에 옷을 입혀도 되나요?” 선생님께서는 여행 중에 나무가 뜨게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셨단다. 너무 예뻐서 우리 학교 나무에도 입혀보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아이들과 함께 나무 뜨게 옷을 만들고 싶다고 하셨다.  

   

뜨게 옷을 입은 우리 학교 나무를 상상해 보았다. 운동장 건너 벚나무는 어떤 옷을 입고 있을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빨강 옷을 입을 것 같다. 의젓한 소나무는 파랑 옷을 입지 않을까?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뜨게 옷을 입은 나무들을 보면서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식물과 새로운 사랑을 맺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생각했다.      


그 후 선생님과의 대화를 잊고 지냈다. 뜨게 옷을 만드는지 관심을 보이지도 못했다. 사실 학교에서 아이들과 뜨게 옷을 만들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우선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요즘 아이들은 연예인처럼 일정이 빡빡하다. 방과 후 학교에 남아서 나무 뜨게 옷을 만든다고 하면 어느 부모들이 이해해 줄 것인가.    

  

“나무에 뜨게 옷을 언제 입힐까요?” 얼마 전 그 선생님이 다시 찾아오셨다. 아이들과 뜨게 옷을 완성하셨다고 말씀하셨다. 점심시간 등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40벌의 뜨게 옷을 만드셨단다. 어휴! 이를 어째. 뜨게 옷을 만들 때 간식이라도 챙겨서 보냈어야 했는데. 얼굴이 화끈거려지고 미안했다.


3월부터 시작했으니 뜨게 옷 완성에는 9개월이 걸렸다. 한땀 한땀 뜨개질을 하면서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그들은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 한가운데로 생각 여행을 떠났을 것이다. 그곳에서 따뜻한 옷을 입고 미소 짓는 나무들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돌아오는 봄에는 더 예쁜 꽃을 피우겠다는 나무들의 다짐을 들었을 것이다.     

드디어 나무가 옷을 입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아이들 뒤를 따르면서 그들이 보여주는 이야기를 카메라로 담아 보았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뜨게 옷을 입혀줄 나무를 찾아 떠난다. 발걸음은 사뿐사뿐, 미소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말의 진심을 알 것 같다.  

   

드디어 아이들이 나무 앞에 도착했다. 식물 공부를 많이 했을까? 옷을 입혀주기 전 의식 행사가 있다. 나무와 이야기를 한다. 나무를 토닥거려준다. 드디어 나무가 옷을 입는다. 아이의 가녀린 손이 나무줄기를 만지기 시작한다. 아이의 숨소리가 나뭇가지를 타고 흐른다. 영화 아바타처럼 인간과 식물의 교감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언젠가 읽었던 대니엘 샤모비치의 ‘식물은 알고 있다.’라는 책이 떠올랐다. 이 책에서는 ‘나무는 보고 들을 수 있다. 냄새를 맡고 기억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내가 식물 가까이 다가가면 식물은 나를 본다고 한다. 식물은 누군가가 자신을 만진다는 사실을 알 뿐만 아니라 차가운 것과 뜨거운 것을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대니엘 새모비치는 사람이나 식물이나 세포 수준까지 내려가면 큰 차이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동물이나 식물이나 세포의 움직임 원리는 똑같다는 것이다. 같이 시작한 세포 중에서 한자리에 뿌리박고 태양에너지를 이용해서 사는 쪽은 식물이고, 돌아다니면서 먹이를 찾는 쪽은 동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대니엘 새모비치에 의하면 식물은 우리 생각처럼 단순하고 무능력한 생물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처럼 보고, 듣고, 느끼고, 기억하는 생명체라고 설명을 한다. 우리가 식물과 다른 점은 좀 더 잘 보고, 잘 듣고, 잘 기억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고, 인간의 생명, 감정 등에 식물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오솔길, 꽃밭에 가면 누구나 마음이 이완된다. 왜 그럴까? 이것은 우리 조상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유전자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은 꽃밭을 발견하면 행복했다. 꽃이 지고 나면 열매가 열리기 때문이다. 조상들은 그 열매를 따 먹고 살았다. 그들의 후손이 우리이다. 오늘 우리가 둘레길을 걷고 꽃밭을 찾는 이유이다. 

    

학교에 숲이 만들어져야 한다. 꽃밭이 만들어져야 한다. 새소리가 들려야 한다. 이런 환경이 아이들의 정서를 결정한다. 이런 곳에서 아이들의 신체적인 정서가 편안한 상태가 된다. 불안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사라지고 기쁨, 만족이라는 감정이 몸과 마음을 지배한다. 이때부터 아이들의 성장이 시작된다. 선생님에게 배움에 대한 준비 자세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교문을 나섰다. 길거리에 크리스마스트리가 보인다. 요즘 트리 풍경 중의 하나는 살아있는 나무에 전구로 장식하는 일이다. 수십 개의 전구가 달린 크리스마스트리 전선이 식물의 팔과 목을 감고 지나간다. 낮에도 깜박인다. 밤에도 깜박인다. 우리 나무들은 언제 잠을 자라고. 그 모습을 본 우리 뜨게 옷 친구들은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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