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상황을 대처하는 4가지 선택: 이탈(Exit), 표출(Voice), 감내(Loyalty), 방관(Neglect)
진보와 보수 모두로부터 존경받은 경제학자 알버트 허쉬만(Albet Hirschman)은 학교, 직장, 결혼, 친구관계, 투자, 정부 등 인생 전반에 걸쳐 불만을 해결하는 데는 세 가지의 선택지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불만 상황에 놓은 사람들은 그 상황을 벗어나든지(이탈:Exit), 불만을 표출하든지(표출:Voice), 조용히 침묵하면서 인내하는(감내: Loyalty) 것 중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이탈은 문제 상황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직장이나 학교를 그만두거나 옮기고, 친구나 배우자와 헤어지고, 주식을 매도하거나 이민을 가는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표출은 상황을 적극적으로 개선하는 노력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아이디어를 리더나 조직에 제안하거나 정부 정책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것 등을 말합니다.
감내는 스스로 이겨내야 할 시련이라 생각하고 견디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감내는 일정 수준의 충성심을 기반으로 합니다. 회사나 정부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반감을 억누르고 묵묵히 일하고 지지하는 것입니다.
조직심리학자들은 여기에 하나의 선택지가 더 있다고 말합니다. 현재 상황을 그대로 둔 채 자신의 노력을 줄이는 방관(Neglect)입니다. 직장에서 욕먹지 않을 만큼만 일하고 집에서는 집안일을 배우자에게 위임하고 자신의 취미활동에만 몰두하거나 선거일엔 투표장에 나가지 않는 것이 대표적인 방관 행동입니다.
조직에 한정해 생각한다면, 조직 내 문제 상황에서 네 가지 행동 중에 어떤 선택을 할지는 자신에게 그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역량과 재량권(Control)이 있다고 느끼는가와 속한 조직에 대해 얼마나 헌신적(Commitment)인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문제해결의 역량과 재량권이 있다고 느끼면서 조직에 헌신적이라면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개진(Voice)할 것입니다. 역량과 재량권은 없지만 조직에 헌신적이라면 상황을 감내(Loyalty)하는 선택을 할 것입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조직에 헌신적이지 못하다면 이탈(Exit)할 것이고 능력도 없고 헌신적이지도 못하다면 방관(Neglect)적 태도를 보일 것입니다.
우리는 상대를 깊이 아끼는 헌신과 상대가 나의 말이나 행동으로 변화하리라는 믿음이 있을 때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출합니다.
물론 여기엔 가짜 표출(pseudo-voice)도 있습니다. 실제로는 조직에 대한 헌신도 변화의 의지도 없으면서 말로만 떠드는 부류들입니다. 한마디로 속은 방관자지만 겉은 표출자인 사람들입니다.
조직은 반드시 붙잡아야 할 고객과 직원이 분명 있습니다. 조직에 헌신하고 충성심을 보이는 고객과 직원입니다. 충성심을 보였던 직원과 고객의 목소리를 무시한다면 직원은 회사를 떠나고 고객은 관계를 끊어버립니다.
이때, 가장 안타까운 점은 조직은 떠난 직원과 고객이 표출했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원인 파악을 못한 채 문제가 계속 반복된다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헌신과 충성이 없는 직원과 고객이 목소리만 크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허쉬만은 이들은 떠나게 두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떠날 수 있는 방법을 장려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헌신을 보인 직원의 목소리는 반드시 들어야 하지만 헌신 없는 직원의 불만에 지나치게 귀 기울일 필요는 없습니다.
성격 좋고 성실한 리더가 좋은 리더인가?
그렇다면 어떤 직원들이 자신에게 재량권이 있다고 느끼며 조직에 헌신하면서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내세울까요?
미주리 대학교 경영대학 존 쇼브렉(John Schaubroeck) 교수 등의 연구에 따르면 직장에서 어떤 직원이 조직에 얼마나 헌신적일지, 또 자신의 일에 얼마나 재량을 느끼는지는 그 누구보다 직속 상사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함께 일하는 상사가 조직에 헌신적이고 직원들을 두루 아끼며 갈등 상황에서 화합을 강조한다면 직원들은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을 느끼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표출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성격 좋고 따뜻하며 성실한 리더가 부하 직원의 서포터가 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원만하고 배려심이 좋은 리더가 항상 바람직할까요?
원만한 사람들은 한편으론 갈등 상황을 매우 싫어합니다. 분란을 일으키고 불편한 장면을 만들려고 들지 않기 때문에 비판과 개선이 필요한 장면에서 한 발 물러섭니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을 때 본능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습니다.
반면에 까칠한 리더는 직원들의 주장을 일단 반박합니다. 내놓는 아이디어마다 심판하고 분석하고 비판점을 찾아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까칠한 리더를 경험한 구성원들이 비판에 적절히 대응하며 자기주장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향상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까칠한 상사 밑에서 힘들게 지낸 직원의 능력이 사람 좋은 상사 밑에서 적당히 인정받으며 일했던 직원들보다 실력이 더 나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까칠한 리더 즉, 기존 체제에 도전장을 내밀어본 경험이 있는 리더가 부하직원의 아이디어에 훨씬 열린 사고를 지녔고 더 높은 성과를 낸다는 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도전적인 리더는 기본적으로 현상을 유지하기 보다는 조직을 발전시키는 데 에너지를 더 쏟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에도 헌신과 충성은 기본입니다. 충성심이 높은 까칠함이 조직의 결함을 못 본 채 넘어갈 수 없게 만들었고 개선적 아이디어를 관철시킨 것입니다.
이 때문에 사람 좋은 리더로부터 구성원들이 심리적 안전감을 느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창의적 아이디어의 양과 질을 높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리더에게 필요한 덕목은 사람 좋음이 아니라 헌신적 까칠함이다
정리하면 직원들이 문제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낼 수 있으려면 직원의 능력과 조직에 대한 헌신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직장에서 직원의 능력과 헌신에 가장 중요한 요인은 직속 상사의 리더십입니다. 조직에 대한 헌신이 높은 리더는 직원의 능력 향상과 헌신을 이끌어냅니다.
그런데 리더의 원만함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직원들의 심리적 안전감을 높여 아이디어를 내게 할 수도 있지만 갈등 상황 자체를 회피하려고 들기 때문에 상호 비판을 꺼리게 만들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화합이나 원만함을 강조하는 조직 문화에서는 무의식적으로 직원들의 책임감의 분산(diffusion of responsibility)을 야기하기 때문에 문제 제기조차 적절히 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따라서 리더는 너무 원만해서도 그렇다고 너무 까칠해서도 안됩니다. 적당히 까칠한 것이 최상입니다.
적당한 까칠함을 기르기 위해서는 과거의 성과와 미래의 노력에 대한 서로 다른 방식의 피드백 스킬이 필요합니다.
스스로 교육전문가라고 내세우는 사람들 중 다수는 피드백의 주요 목적이 앞으로의 개선을 촉진하는 데 있기 때문에 미래의 노력에 초점을 맞춘 건설적 피드백이 과거 결과에 대한 비판적 피드백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합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누구나 과거 잘잘못에 대한 평가보다는 미래에 더 잘할 수 있다는 격려와 조언을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갈등을 회피하는 리더는 까칠하게 보일 수 있는 평가성 피드백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코칭 혹은 건설적 피드백을 선호합니다.
하지만 영국 애스턴 대학교 심리학과 로버트 내쉬(Robert Nash) 교수 등은 역량 향상에 더 효과적인 것은 미래 행동에 관한 건설적 피드백이 아니라 과거 성과에 관한 평가적 피드백이라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리더는 과거 성과와 역량에 관한 전문성 있는 평가적 피드백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합니다. 까칠해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고 건설적 피드백을 등한시하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평가적 피드백을 통해 스스로 개선해야 할 사항 등을 충분히 공유한 후에 건설적 피드백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이때는 까칠함보다는 원만함이 필요한 순간입니다.
학생이 공부에 흥미를 갖고 더 잘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먼저 현상을 명확히 진단하는 평가적 피드백이 필수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하려면 공부가 주는 의미감이 있어야 합니다. 의미감, 목표, 개선 및 향상 계획이 근간인 건설적 피드백 없이 동기를 유지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좋은 선생님은 평가적 피드백과 건설적 피드백의 균형감이 훌륭합니다. 마찬가지로 적당히 까칠한 리더가 되기 위해서 먼저 전문성 있는 진단을 포함한 평가적 피드백을, 이후 건설적 피드백으로 마무리하는 절차를 익혀야 합니다.
그리고 화합이나 원만함을 강조하는 조직문화에서 자칫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를 유발하지 않기 위해서는 리더들은 구성원 각자가 각기 고유한 방식으로 조직에 기여할 수 있다고 느끼게 해야 합니다. 할 수 있다면,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역량과 재량권이 조직의 성과에 어떤 방식으로 기여하는지 설명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역량과 재량권(control)이 있다고 느낄 때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시도를 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강조하지만 리더십을 발현하는 장면에서 리더의 말과 행동의 기반은 항상 조직에 대한 헌신(commitment)입니다. 헌신 없는 역량은 자신도 구성원도 결국엔 이탈(exit)이나 방관(neglect)으로 내몰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