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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우 Aug 14. 2023

톰 크루즈의 액션 연기에 숨겨진 "스트레스의 심리학"

직장인을 위한 <스트레스의 심리학>

'연기'는 극의 내용을 관객 앞에서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배우가 몸짓이나 음성으로 나타내는 행위를 말한다. 그리고 그 '연기'에는 인간이 감정을 어떻게 느끼고 표현하는지에 관한 심리학적 원리가 담겨 있다. 심지어는 '발연기'에서도 말이다. 발연기를 포함한 연기의 메키니즘을 이해하면, 우리가 겪는 일상의 스트레스 관리에 큰 도움이 된다.  


우선,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발연기가 무엇인지 사례로 짚어 보자. 사람들은 동일한 표정으로 여러 감정을 연기하는 것을 발연기라고 표현한다. 웹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발연기의 대표적인 사례는 스티븐 시걸과 김태희 등이 있다.


출처: https://mtv.jtbc.co.kr/board/pr10010452/pm10041304/detail/396?site_preference=mobile


그런데, 만약 스티븐 시걸과 김태희가 무성영화 시절에 활약했다면, 발연기 논란은 사라지고 대단한 명연기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무슨 황당한 소리냐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무성영화 시절에 연기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발성이나 목소리의 톤 등 연기자의 수많은 무기는 사라지고 오직 표정만으로 모든 것을 표현해야 한다. 그래서 연기가 훨씬 더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그런데, 러시아 영화감독 레프 쿨레쇼프(Lev Kuleshov)가 시도했던 한 실험을 보고 나면, 그 생각이 바뀔 지도 모른다.


쿨레쇼프 감독은 무성영화 시절 최고의 스타 '이반 모주힌'이 등장하는 장면을 편집해 관객에게 노출시켰다. 관객들은 모주힌의 섬세한 연기력에 감동받았다. 그런데 사실 쿨레쇼프는 어떤 표정인지 알지 못하는 애매한 표정을 짓는 모주힌을 서로 다른 장면에 끼워 넣을 뿐이었다. 관객들은 누군가의 죽음을 보는 모주힌의 표정을 볼 때는 슬픔을 표현하는 섬세함에 감동했고, 음식물을 보는 같은 표정의 모주힌을 볼 때는 배고픔을 참으며 연기하는 모주힌의 연기력에 또 감동했다. 우리는 얼굴에 드러난 감정을 읽는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맥락(context)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사실, 악마의 편집, 가짜 뉴스 등도 맥락(context)을 제멋대로 바꾼 이런 편집과 짜집기를 악용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출처: <생각한다는 착각: 뇌과학과 인지심리학으로 풀어낸 마음의 재해석>

 


더 흥미로운 사실은 인간이 이처럼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을 때만 맥락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이해할 때도 맥락을 중요시 여긴다는 것이다. 1962년 당시 콜롬비아대학교 심리학과 스탠리 샥터(Stanley Schachter) 교수펜셀베이니아주립대학교 심리학과 제롬 싱어(Jerome Singer) 교수는 향후 심리학 역사상 기념비적인 논문이 될 한 연구를 <Psychological Review>에 발표했다. 이 논문은 현재 구글 학술 검색에서 11,000건이 넘는 인용수를 기록하고 있고, 심리학자들은 이 위대한 연구를 샥터-싱어 이론(Schachter-Singer theory)이라고 명명해 두 심리학자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샥터와 싱어는 실험 참가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엔 신경계를 흥분시키는 아드레날린(adrenalin)을 다른 그룹엔 아무런 성분이 없는 위약(placebo)을 주입했고, 실험 시작 전에 한 대기실로 안내했다. 그 대기실에서 참가자들은 다소 독특한 다른 참가자를 만나게 되는데, 어떤 참가자들은 종이 비행기를 날리며 깔깔거리는 사람을 만났고, 또 다른 참가자들은 기다리는 동안 작성해야 할 설문지를 보며 화를 참지 못하고 격분하는 참가자를 만났다.


사실 대기실에서 마주한 이 상황이야말로 진짜 실험이었다. 인위적으로 아드레날린을 주입받은 참가자들은 위약 그룹에 비해 두 가짜 참가자들을 만날 때 더 강한 감정적 반응을 보였다. '조증' 참가자를 만난 참가자들은 자신들의 심박수 증가와 가빠진 호흡, 상기된 얼굴을 자신도 즐거워서 그런 것이라고 해석했고, '격분한' 참가자를 만난 참가자들은 동일한 신체적 반응을 짜증과 분노로 해석했다.


우리가 느끼는 기쁨이나 분노는 어쩌면 내면의 신호를 그대로 읽는 것이 아닐 수 있다.

감정이 내면에서 샘솟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생리적 상태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샥터와 싱어가 발견한 인간 감정 체계의 놀라운 메커니즘이다.


나는 복싱을 좋아하는데, 대개 복싱 선수들은 시합 전에 느끼는 스트레스를 흥분되고 들뜬 상태라고 묘사하면서 이런 폭발적인 아드레날린이 운동 능력과 시합 결과에도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이 선수들이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를 할 때는 아까와 똑같은 아드레날린이 이번엔 긴장, 불안, 압박감으로 바뀐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긴장이나 불안을 극복하고 좋은 결과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긴장이나 불안을 잘 이용한 덕분에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심리학 실험에서 리스본대학교 학생들 100명은 시험 기간 내내 얼마나 많은 불안을 느꼈고, 그 불안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보고했다. 이 때, 시험 준비 과정에서 느낀 불안과 유사한 생리적 상태를 어떤 학생들은 공부에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응답했고, 다른 학생들은 불안하고 초조해서 집중하기 어려웠다고 응답했다. 시험이 끝나고 채점 결과, 시험 준비를 하면서 느낀 스트레스가 해롭지 않고 유용하다고 생각한 학생들은 실제 스트레스 경험 정도도 낮았고, 시험 성적도 좋았다. 더 눈여겨봐야 할 사실은 연구가 끝난 후, 시험 불안이 유용하다고 생각한 그룹의 학생들이 다음 기말 시험 성적 역시 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리적 반응을 유리하게 해석하고 좋은 결과를 얻게 되면 다음에 유사한 상황에서 또 그렇게 해석할 가능성이 높다.


스트레스를 느끼면 내가 시험에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신호라고 여기고 그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성적 뿐만 아니라, 건강과 주변 사람의 관계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심리학의 많은 연구들은 불안감이 실수의 징조가 아니라, 성과를 낼 수 있는 에너지가 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숙련된 스카이다이버들은 낙하 전과 낙하하는 동안에 초보 스카이다이버에 비해 심박수가 훨씬 높다. 이들이 긴장과 불안을 각성과 흥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영화 배우 톰 크루즈가 매번 액션의 신기원을 만드는 원리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출처: https://www.mk.co.kr/star/hot-issues/view/2022/12/1136734/


팬들의 소원이 '자연사'라는 환갑이 넘은 명배우의 액션 연기의 이면에는 어떤 심리적 메커니즘이 있을까? 톰 크루즈가 새로운 연기에 도전을 하며 생기는 불안의 정도가 다른 사람에 비해 낮아서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안을 더 느끼지만, 그 불안이라는 에너지를 활용할 줄 알고, 불안을 없애기 위해 더 많은 훈련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에너지를 활용하는 것과 그 에너지를 무시하고 부당한 조건까지 무조건 수용하는 것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스트레스 신호를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발연기의 메커니즘은 맥락과 해석이다. 우리가 지금 느끼는 감정은 우리 내면에서 '기쁨', '슬픔', '분노' 와 같은 이름으로 이미 정해진 감정만이 아니라, 생리적 상태를 해석하는 과정도 개입될 수 있다. 심리학은 참으로 유용한 학문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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