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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우 Oct 01. 2023

'번아웃'만큼 무서운 '보어아웃'

업무 자율권을 부여했는데도 성과가 오르지 않는다면 '보어아웃(Boreout)'을 의심해야 한다.

보어아웃은 2007년 스위스 비즈니스 컨설턴트 필리페 로틀린과 페터 베르더가 함께 쓴 책, <보어아웃: 일하지 않고 월급만 받는 직장인 보고서>를 통해 처음 소개돼 세상에 알려졌다. '번아웃(Burnout)'이 지나치게 일에 몰두하다 정신적, 육체적 피로로 인해 무기력증, 자기혐오, 직무 거부 등에 빠지는 현상을 의미한다면 '보어아웃'은 지루함과 단조롭게 반복되는 업무에 지쳐 의욕을 상실하는 현상을 말한다.


출처: https://www.firstbeat.com


'보어아웃' 상태라면 회사를 왜 다니는지,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일에 의미감을 느끼지 못하지만, 퇴근 후에는 더욱 예민해지고 짜증만 늘어가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곤 한다. 보어아웃 연구자들은 조직 내 보어아웃에 빠진 사람들이 업무시간에 온라인 쇼핑이나 동료와의 잡담 등 업무 외 활동으로 시간을 주로 보내는 것이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 무기력에 대응하는 방어기제라고 말한다.


실제 우리나라에서도'보어아웃'을 경험하고 있는 직장인이 많다. 2020년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직장인 782명을 대상으로 ‘보어 아웃’ 경험 여부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41%(321명)가 보어 아웃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특히 과장급(42.6%), 사원급(39.5%)보다 대리(45.1%)급에서 보어 아웃을 경험한 비율이 높았다. 보어 아웃을 경험한 이유(복수응답)로는 ▲체계적인 관리시스템ㆍ동기부여가 없어서(35.2%) ▲능력에 비해 쉽고 단조로운 업무만 맡아서(34.9%)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해서(34.9%) 순으로 나타났다. 이외에도 ▲일이 너무 없어서라고 답한 이도 16.2%나 됐다. '조용한 사직(Quite Quitting)'과 더불어 '보어아웃'은 현대 직장인들에게 하나의 신드롬이나 트렌드라 할 수 있다.


일이 없으면 마냥 좋을 것 같지만,  프랑스 EM 리옹 경영대학원(EM Lyon, Ecole Management de Lyon) 로타 하르주(Lotta Harju)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만성적 무력감은 스트레스 수치를 높이고, 건강을 악화시키며 우울증과 불안 지수를 악화시킴과 동시에 두통과 불면증 같은 증상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번아웃에 빠진 직장인들은 실제 직장에서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지만, 보어아웃에 빠진 직장인들은 직장에서 스트레스에 빠진 척 연기하느라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출처: https://medium.com/big-self-society/bore-out-burnouts-ugly-stepsister-befce0a8be14



'보어아웃'의 주요 증상으로는 '업무 수행 과정에서 지루함', '자기 발전과 성장의 위기', '일의 의미에 대한 위기'를 들 수 있다. 보어아웃 진단은 독일 다름슈타트 대학교(Technische Universität Darmstadt) 마케팅 및 HRM학과 루트 마리아 스톡(Ruth Maria Stock) 교수가 개발한 문항이 현재 가장 널리 활용되고 있다.


척도 타당화를 거친 한국어 문항을 찾지 못해 우선 내가 번역한 문항을 아래에 소개한다.


<다음 진술에 동의하는 정도를 5점 만점으로 표시하시오>

1. 전혀 그렇지 않다   2. 약간 그렇지 않다   3. 보통이다   4. 약간 그렇다   5. 매우 그렇다


업무 수행 과정에서 지루함(Job  boredom)

1. 나는 직무를 수행하면서 지루함을 느낀다.

2. 나는 직무를 수행하면서 내 일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3. 나는 내 일에 집중하기 어렵다.

4. 나는 직무를 수행하면서 좌절감을 느낀다.


일의 의미에 대한 위기(Crisis of Meaning at Work)

5. 나는 내 일이 무의미하다고 느낀다.

6. 나는 내 일에서 어떤한 의미도 찾기가 어렵다.

7. 나는 내 일에서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 괴롭다.

8. 나는 내 일의 의미를 생각할 때 공허함을 느낀다.


자기 발전과 성장의 위기(Crisis of Growth at Work)

9. 내 직업은 나에게 개인적 성장과 발전의 기회를 준다(r).

10. 나는 업무를 수행하면서 무언가를 성취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든다(r).

11. 나는 업무를 수행하면서 자발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다(r).

12. 나는 업무를 수행하면서 새로운 것을 배운다(r).


* (r)은 역문항으로 6점에서 응답한 점수를 뺀 점수를 기준으로 한다.


'업무 수행 과정에서 지루함'의 경우 평균 4.4 이상이면 직무를 수행하면서 지루함을 크게 느끼는 사람이고, 2 ~ 4.3이면 보통, 1.9 이하라면  지루함을 느끼지 않은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일의 의미에 대한 위기'의 경우, 평균 4.3 이상이면 위기감이 높은 수준, 1.9~4.2라면 보통, 1.8 이하라면 위기감이 낮은 수준이다. '자기 발전과 성장의 위기'의 경우, 평균 4.5 이상이면 위기감이 높은 수준, 2.2~4.4는 보통, 2.1 이하라면 위기감이 낮은 수준이다.


전체적으로 이 셋의 점수가 높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보어아웃'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은데, 스톡 교수가 최근 연구에서 매장 영업 직원들 중 '보어아웃'을 경험한 사람의 경우 업무 자율권이 높아져도 오히려 더 '보어아웃'이 심해지고 '고객 중심적 행동'은 줄어들 수 있다는 경고가 눈에 띈다. 리더가 직무 자율성을 부여할 경우, 미미 '보어아웃'을 경험하고 있는 직원들은 그 직무에 흥미가 없다는 사실을 더 쉽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번아웃'과 달리 '보어아웃'은 숙달이나 고객과의 사회적 경험을 통해 얻는 자원의 효과가 아예 없거나 크지 않았다.'번아웃'은 사회적 지지나 지원이 직무 자원(job resources)으로서 잘 작동하는 반면, '보어아웃'의 경우, 이미 업무에서 의미감을 잃어버린 상태이기 때문에 사회적 지지로는 자원 회복 효과가 제한적이다. 결국 현재 하고 있는 일에서 목적과 의미감을 되찾는 노력, 혹은 다른 직무를 통해 의미감을 발견하는 시도가 '보어아웃'에 더 효과적인 대응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잡 크래프팅'과 '성장 마인드셋'이 '보어 아웃'에 효과적인 대응 기제가 될 것으로 본다.


한편으로 '보어아웃'에 빠진 사람이라면 자신의 직무 적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직무 적성 검사는 전통적으로 Holland의 <RIASEC 모델>을 가장 많이 활용하고 있는데, 최근엔 직무 적성의 타당도와 신뢰도가 대폭 개선된 <SETPOINT 모델>이 등장해 큰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SETPOINT모델이 제대로 소개되지 않은 상태인데, 조만간 브런치를 통해 SETPOINT 모델을 RIASEC과 비교해 설명하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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