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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근육 Aug 13. 2019

아니 그 품목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중요하지만 익숙한 것 : 공기처럼.

1.

브라질이었다. 캐리어를 몇 번이나 뒤졌지만 없었다. 애초에 캐리어에 넣었던 기억이 없었으니 없는 게 당연했지만 짐을 죄다 엎었던 것은 미련 때문이었다. 나는 마트로 향했다. 브라질은 포르투갈어를 쓴다. 번화가의 나름 큰 백화점 건물이었지만 영어가 통하지 않았다. 나는 인터넷 번역기에 의존했다. 점원과 나는 옛날 사신들처럼 필담을 나누었다. 그렇게 겨우 하나를 찾았다. 크기는 묘하고 날은 매서운데 무디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언뜻 잘 못 잡으면 다치기 십상이지만 정작 제 용도로서는 효능이 덜했다는 뜻이다.


2.

군대 훈련을 마치고 특기 교육을 받을 때였다. 장교라 숙소가 2인 1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얼마 전까지 다들 뒤엉켜 훈련을 받던 동기들인지라 쉬는 시간만 되면 동기들은 이 방으로 저 방으로 놀러 다니며 추억을 곱씹거나 서로의 관심사를 교환했다. 우리 방에 놀러 왔던 어떤 동기가 문득 말을 꺼냈다. "야 주변 나라에서 어떻게든 따라 하려고 해도 잘 안 되는 품목이 있대.". "못 따라 할 것 뭐냐. 성분 분석하고, 각도 분석하고, 모든 부품 다 따라 만들면 되지.". "아냐 그게 또 그것만으로 안 되는 '우리만의 감' 같은 게 있나 봐."


위 얘기들에서 언급된 대상은 동일하다. 그리고 이미 눈치채신 분들도 있겠지만 그건 바로 '손톱깎이'다.


신입사원 시절 첫 출장에 대비하는데 해외여행을 자주 가 봤던 동기 동생이 팁을 줬다. 체류가 1주일이 넘으면 다들 꼼꼼하게 짐을 싼다고 하는데 의외로 놓치고 없으면 무척 불편한 게 바로 손톱깎이랬다. 곰곰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는지 짐을 쌀 때마다 이 말이 귓전에 맴돌았다. 덕분에 주말에 호텔에서 손톱을 깎고 있으려 치면 마치 해외에서 한국의 정취를 느끼는 나만의 방식을 찾은 것 같아 기분이 좋기도 했었다. 그러다 나는 남미 국가 몇 개를 돌아야 하는 출장길에서 그만 손톱깎이를 깜빡하고 말았고, 브라질에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수준이 되어 호텔 밖을 나서야 했던 것이다.


해외 경쟁국의 카피도 마찬가지다. 모든 부품을 따라 만들어도, 그 특유의 딸깍딸깍 하는 손맛을 따라 하지 못한다고 했다. 모든 공정이 기계화되었을 테니 일견 설득력은 부족해 보였지만, 다른 제품을 써 보면 '아 안전하고 깔끔하게 잘 잘린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게 대부분이긴 하다. 날이 너무 매서우면 안전하지 않아 보이고, 반대의 경우에는 손톱깎이가 맞는지 의심이 드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는 어떤 현상을 바라볼 때 대부분 큰 것에 집중한다. 수출이라는 단어 앞에선 반도체와 자동차 등을 떠올리고, 국가 경쟁력을 언급하면 IT나 저작권 같은 항목을 떠올린다. 큰 그림을 그리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늘 강조하는 나로서 이를 나쁘게 보지는 않는다. (물론 큰 그림과 '주요한 항목'이라는 것은 엄연히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여기서 그런 세부적인 구분은 넘어가겠다.)


그러나 때론 중요하지만 너무 일상에 잘 녹아있어서 고려 대상에서 깜빡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지구 전체를 놓고 보면 '공기'가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고, 앞서 언급한 '손톱깎이'도 분명히 같은 맥락에 해당한다.


이처럼 빠짐없이 전체를 고려하는 방식 역시 큰 그림 기반의 전략 달성에 유리하다. 이는 내가 수출 전략을 짜는데 어떤 품목을 누락하는 데 따른 피해를 줄이는 것뿐 아니라 (직접적 관련성) 간접적으로 연관된 부분에서도 힘을 가진다. 예를 들어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데 있어서 예상치 못한 맹점을 파악한다든지, 향후 경기 예측에 영향을 주는 돌발 요소를 점검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즉 굳이 쉬운 예를 들기 위해 '손톱깎이'라는 유형의 품목을 언급하긴 했지만 사실 '혹시 고려 대상에서 빠뜨린 것은 없는지' 되돌아보는 습관 자체가 전략 수립 및 달성에 중요한 것이다.


나는 딸과 끝말잇기를 하거나 어떤 단어가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을 때 ㄱ부터 ㅎ까지를 빠르게 훑는다. 이건 마치 출장 짐을 쌀 때 하루 일과를 아침부터 밤까지 훑는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https://brunch.co.kr/@crispwatch/183


품목에 대한 것이든 전략에 대한 것이든 경기 예측에 대한 것이든 최대한 전체를 아우르려는 노력은 어떠한 방식이든 유용하다. 물론 우리는 전지전능하지 않으므로 100%의 항목을 다 검토할 수 없다. 그리고 96%의 검토가 95%의 검토보다 반드시 낫다고 할 수는 없다는 반론도 있다. ('차선의 이론')

https://brunch.co.kr/@crispwatch/118

그러나 현실에서 더 많은 고려는 더 신중한 판단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된다. 일단 알게 되었는데 내가 채택하지 않은 것과 애초부터 몰라서 반영 못하고 지나간 것은 엄연히 다르다.





늘 쓰는 게 그 말이 그 말이다. 잔소리꾼이 되어버렸다!


https://brunch.co.kr/@crispwatch/168

https://brunch.co.kr/@crispwatch/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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