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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근육 Sep 07. 2019

이들의 학습 형태가 신기하다.

커리큘럼을 따라가는 듯 아닌 듯.

지난번 언급했던 프로그램과 관련해서 요 며칠 신기한 경험을 했다. 3일 정도를 곰곰 생각해 보다가 어제 저녁을 먹으며 와이프와 얘기를 좀 나눴는데 그때 언급한 내용의 일부를 일단 기록으로 남겨둔다. 한국에 돌아가고 나서 접목할 거리가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비록 아직 정리는 안 되었지만 이런 것을 발견하면 무척 신난다.  


무엇이 신기했냐고 하는 분들을 위해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다음 두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1. 강사뿐 아니라 학생도 커리큘럼을 이끄는 주체가 된다.

2. 배우기 전에는 오답도 부끄러워 않는 자존감을, 배우고 난 뒤에는 배운 것을 그대로 활용하는 겸손함을 가진다.


https://brunch.co.kr/@crispwatch/233


1-①. 학습 과정은 자율적이고 Interactive 하다.

수업 중 강사가 질문을 하면 서로 대답을 한다. 때로는 '예습 안 했다'는 티가 팍팍 나는 오답일지라도 손을 든다. 봉숭아 학당(아재라는 것을 인증했다!)의 맹구가 손을 경쟁적으로 치켜드는 모습은 우리나라에선 개그의 소재였지만, 여기서는 그냥 익숙한 풍경일 뿐이다.


또한 수강생들은 모르는 게 있으면 바로 질문을 한다. 어쩔 때는 질문만으로 하나의 시간을 다 채운 적도 있었다. 물론 정식 Q&A 세션이 아니었다. 때로는 이해가 느린 사람의 거듭된 질문으로 인해 한 부분에 오래 머물 때도 있었다. '이래서야 진도를 뺄 수나 있겠나.'. 나는 걱정했다.


1-②. 학습 결과를 보면 올바로 커리큘럼을 따라가 있다.

그러나 이런 걱정들이 무색하게도, 나는 교육이 끝난 뒤 교재를 무사히 다 마친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잠깐 과정을 되짚어 보자 두 가지 기여 요인이 떠올랐다. 하나는 강사의 역량이다. 그는 쏟아지는 질문들과 대답들을 커리큘럼에 맞게 최대한 조율했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오케이 좋은 질문이야. 지금 답하기에는 조금 긴데 다행히 우리 이거 내일 배울 거야. 그때 다시 되짚어 보는 게 어때?".


학생들의 자질도 한몫했다. "오, 무척 기초적인 질문인 것을 알지만 설명에 단계 A를 생략한 것 같은데, 그 이유를 알려 주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동료들에게 도움이 될 거야.". "내가 질문을 너무 많이 한 것 같아. 이따 쉬는 시간에 따로 물어볼게.". 이러한 융통성은 학생들로부터 나왔다. 그 덕에 수업을 마치면 과정이 무사히 끝나 있었다. 마치 선생님의 설명 대신에 학생들의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으로 진도를 나간 느낌이었다.



2-①. 건강한 자존감을 갖고 있다.

이 부분은 두 가지로 나눠서 해석해야 오해가 없을 듯하다. 하나는 문화적인 차이다. 진도를 나가는 책임을 강사에게 100% 할애하지 않는 문화를 말한다. 앞선 1-②의 논의와 중첩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들은 질문이나 오답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뒷 배경에는 학생들도 진도 나가는 책임을 상당 부분 담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있을 것이다.


물론 질문이나 대답의 수준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성향도 크게 작용한다. 흔히 얘기하는 자존감 내지는 자신감의 영역일 것이다. 사실 이는 당연한 것이다. '모두 다 이를 처음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이것이 잘 안된다. 마치 경제학 속 야구경기장의 일화*처럼 모두가 슬금슬금 선행학습을 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한국과의 차이에서 오는 이 충격이 그 두 번째 해석이다. 나쁜 문화가 아님에도 처음에는 그 차이 자체만으로 충격이었고, 어떠한 순간에는 그게 규칙의 무시로 느껴진 적도 있었다.


* 야구장에 갔는데 경기가 잘 보이지 않자 앞자리 관중들이 일어나서 보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 때문에 시야가 가려 경기를 못 보게 된 뒷자리 사람들이 모두 순차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국 모든 관중은 서서 경기를 봐야 했다.


2-②. 그러고 겸손했다.

강의를 마쳤다. 진실로 장담하건대 강의 내내, 그리고 강의가 끝난 직후의 며칠은 내가 에이스였다. 심지어 한국 동료들에게도 자랑했을 정도다. "나 xxx 프로그램 여기서 제일 잘해!" (죄송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하루 이틀 지나자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나는 한국에서의 안 좋은 버릇이 아내 나왔고, 그들은 그러하지 않았던 탓이다. 좀 더 상세히 설명해 보겠다.


공부에 관련한 나의 나쁜 버릇이란 일정한 패턴을 띄었다. 착실하게 배우고 → 그것을 익힌 뒤 → 내 것으로 만든 이후에는 되레 약간 거만해졌던 것이다. 예를 들자면 책을 다시 살펴보는 것은 어쩐지 '조금 부끄러운' 일로 여겼다. 어쩌면 그런 행위를 한다는 것은 '아직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는 신호를 준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긴 달랐다. 그들은 부지런히 다시 책을 살폈고, 배운 그대로의 용어를 썼다. 나라면 '데이터 포함한 파일로 주세요.'라고 했을 일을 그들은 수업에서 배운 대로 '웨벡스 파일로 주세요.'라고 했다. 한치의 가감이 없었고, 들은 그대로, 배운 그대로를 실제 업무에 활용했다. 토끼와 거북이의 일화처럼 - Slow but steady - 그들은 나를 따라잡았다.




내 글을 몇 개만 읽어봐도 내가 얼마나 연역법을 사랑하는지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연역법은 큰 명제에서 세부적인 현상으로 접근하는 방식이다. 이를 학습 형태로 따지자면 정당한 권위를 갖춘 이(강사나 책)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고 그 뒤에 내가 스스로 살을 붙여 나가는 방식이 된다. 관련 서적을 더 읽거나 연관된 분야의 사람에게서 추가적인 것을 배우거나 (학생 때라면-) 문제를 풀어보는 것으로 살을 붙여 나갈 수 있다.


그러던 나였기에 학생과 강사가 더불에 진도를 나아가는 방식은 신선한 문화 충격이었던 것 같다. 그 방식이 위태롭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물론 이를 이끌기 위한 강사와 학생의 자질,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문화적인 토대가 전제되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정식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는 르네상스 시대의 수사학자들에게 환멸을 느껴 철저한 실험/ 경험주의를 외쳤다. 그러다 인쇄술의 발달 이후 책들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고, 책에서 지식을 습득하는 연역적 방식의 효용을 느낀 뒤 두 방식을 성공적으로 혼용하게 되었다.


https://brunch.co.kr/@crispwatch/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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