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이 가장 좋아하는 인물 중 벤저민 프랭클린이라는 사람이 있단다. 그는 초등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어린 시절을 인쇄공으로 힘들게 살았지만, 훗날 헌법 제정에 참여하였으며 피뢰침을 발명하였고 미국의 독립전쟁에도 공을 세웠지. 그는 가장 미국적인 사람으로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며 존경받는 인물이다. 하지만 삼촌이 벤저민 프랭클린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남긴 자서전 때문이란다. 책은 시작은 이렇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그는 자서전을 통해 자신이 젊은 날 어떤 실수를 하고 어떻게 극복했는지까지 솔직하게 적어 놓았다. ‘프랭클린 플래너’라는 것도 그가 고안한 것이지. 플랭클린 플래너는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기 위한 자기 점검표란다. 프랭클린은 자산의 삶을 통해 얻은 경험과 교훈들을 자서전의 형태로 후손들에게 물려준 것이야.
프랭클린처럼 너에게 무엇을 남겨줄 수 있을지 오랫동안 고민했다. 함께 한 시간을 추억할 사진첩을 만들고 싶었지만, 너는 사진 찍는 걸 싫어했지. 사진이 잘못 유출되면 네가 보육원에 생활하는 걸 친구들이 알게 될까 봐, 그게 두려운가 싶어 이해했다. 사진 찍기 싫어하는 건 다른 조카들도 다 똑같았으니까.
8년 동안 인연을 맺으며 삼촌과 조카로 살았지만, 코로나나 직장을 핑계로 여행 한 번 같이 가지 못한 데에 대한 미안함도 항상 남아 있구나. 우린 함께 즐거워한 추억보다 어떻게 세상의 편견과 맞서 싸울까에 대한 현실적 고민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나이를 먹고 시간이 흐르면 우리의 기억은 점차 잊힐 텐데. 너와 내가 가족으로 살아간 흔적도 세상에서 서서히 사라질 테고. 세월이 흘러 기억과 흔적이 모두 사라지면 우리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건, 주민등록등본 상의 한때 ‘동거인’이었다는 기록뿐.
요리를 잘하면 굶어 죽지 않는다고 들었다며 내게 요리를 잘하냐고 물었던 어두운 중학생도, 중학교를 졸업하고 한 달 동안 나를 아빠라고 부르던 소년도, 너는 이제 기억 못 하더구나. 그래서 나의 기억마저 사라지기 전에 우리가 지내온 날들을 글로 남긴다.
먼 훗날 이 글을 본다면 네가 부끄러워할 내용도 있지만, 부끄러워하기보다 이 글을 통해 다음 세대에 대한 고민을 해주길 바란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는 어떤 노랫말처럼, 이 글의 어떤 내용들은 내 일방적 기억이라 너의 그것과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구나. 혹 그런 부분이 있더라도 너그러이 이해해 다오.
고등학교 졸업식 / 침대 사준 날, 조카가 외박해서 내가 첫 개시를 하였다 / 크리스마스 이브, 시설이 아닌 집에 사니 어떻냐는 물음에 "너무 좋아요."라고 답했다.
사회복지사가 되더라도 단지 직업인에 머무르지 않아 줬으면 좋겠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동생 같고 조카 같으며 자식 같은 녀석들을 만나거나, 또는 후원자들이나 보호종료아동으로 시설을 퇴소하는 아이들을 만나면 너의 과거와 삼촌을 떠올리며 고민하겠지. 그때 이 글이 너의 고민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너는 SNS를 안 하니 이 글의 존재를 모를 것이고, 안 다고 해도 먼 훗날이 되겠지. 여기 올린 것은 수정본이지만, 우리의 실명이 들어간 초고의 인쇄본 한 부를 네게 남길 텐데. 그 날이 언제가 될지는 아직 나도 정하지 못했단다. 네가 결혼이란 새 출발을 시작하는 순간일 수도 있고, 아빠가 되는 책임감에 두려움을 느낄 때 일수도 있겠지. 어쩌면 내가 세상을 떠나고 내 유품을 정리하다가, 나의 다른 가족 중 누군가가 이 책을 찾아내어 너에게 건네 줄 수도 있을 거야.
그게 언제가 되든 이 책을 우리가 가족으로 살아갔던 하나의 징표로 생각해주길 바란다. 공적 장부는 우리를 단지 '동거인'으로밖에 기록하지 못하지만, 내 기록으로 너를 '가족'으로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