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도서관의 외로운 한국 서가(업데이트 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한 권이 뭐냐

by 악어엄마

우리 독일 시누이는 매년 세계를 여행하는 전형적인 DINK족이다. 진짜 안 가본 나라가 없는 사람인데, 몇 주전 시누이가 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냥 즉흥적으로 표를 사서, 한국을 여행하기로 했단다. 내가 동선 짜는 거 도와주려고 했는데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시누이 커플은 나도 들어보지도 못한 지방 행사까지 찾아서 정말 야무지게 놀다 왔다. 너무 재미있어서 6주가 부족했단다. 여름에는 우리 집 아래 집 6살짜리 금발머리 독일 여자애가 한국말로 친구들이랑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는 거보고, 약간 멘붕이 오기도 했다. 이게 뭐지? 난 어디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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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나에게 올해 독일 도서관은 또 다른 충격을 안겨주었다. 무려 한국책이 들어왔다. 독일말로 번역된 한국책은 봤어도 한국어로 된 한국책은 처음이다. 아이랑 어린이 도서관으로 들어가는데 한국말이 보였다. 우와, 한강 작가의 "희랍어 시간"이 전시되어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당장 책을 옆구리에 끼고 다른 책이 있나 찾아보았다.


음?


한국책 카테고리 맞는데, 한국책이 어디 있는 거지? 책장을 가득 채운 일본책 사이, 아무리 찾아도 한국책이 보이지 않았다. 여기는 중국, 여기는 일본, 한국책은 어디 있다는 거야?


에이 설마. 이거 딱 한 권?


딱 한 권?????


20251208_100426.jpg 한국책을 찾아보세요

베를린에 가면 훔볼트 포럼이라는 박물관이 있다. 식민 역사를 반성하며 전 세계에서 약탈한 문화재들을 전시하는 곳이다. 무료에다가 어린이를 위한 행사도 많아서 내 아이도 항상 데리고 간다. 동아시아는 독일의 식민지는 아니었지만 아주 큰 상설 전시장에서 중국, 일본, 한국의 문화재들을 감상할 수 있다. 기증받은 것도 있고, 구입한 것도 있는 모양이다. 문제는 중국과 일본에 비해 한국관의 규모가 너무 작아서 처음부터 말이 많았다. 2023년 연합뉴스 기사에는 훔볼트 포럼 한국관 관람은 열 걸음이면 끝난다고 했는데, 내 기억으론 열 걸음도 필요 없다. 그냥 커다란 장식장에 작은 도자기들이 전시된 수준이다. 올해 8월에도 훔볼트 포럼에 가봤는데 하나도 변한 게 없었다. 일본의 식민 사관이 들어간 자료를 버젓이 전시하는 것은 덤이다.


남편은 이 초라한 전시를 보고 자기도 충격을 받았는지 한국의 문화재는 밥그릇 밖에 없냐며 아직도 생각만 나면 농담을 한다. 한국이 전 세계에 인기가 있다고 하는데도 독일에서 한국은 "문화"가 아니다. 그냥 바이럴이다.


아이와 함께 들어간 어린이 도서관에서는 우크라이나어로 동화책을 읽어주는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 공간엔 폴란드어, 중국어, 아랍어, 터키어 등등 세계 각국의 동화책이 구비되어 있다. 특히 일본어로 된 동화책은 크기도 다양하고, 종류가 하도 많아서 너무 부러웠다. 아예 일본 아동 서가가 따로 있다. 여기엔 한국어로 된 동화책은 단 한 권도 없다.


한국에 갈 때마다 한국책을 낑낑 거리며 가져오는 나에게 단출하다 못해 어이가 없는 "한국 서가"는 아직도 충격이다. 내가 사는 이 도시에는 간호사·광부로 입독한 한국 디아스포라의 역사가 아직도 살아 있다. 게다가 독일에서 최고 도서관으로 상을 받은 여기로 단체로 연수를 오는 건지 독일 직원을 따라다니며 설명을 듣는 한국 사람 무리를 본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한국에 대한 관심은 높다고 하는데 제도적 인프라는 아직도 텅텅 빈 것 같다.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우선은 도서관에 이메일이라도 보내볼 생각이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분 중 더 체계적으로 한국책을 독일 도서관에 확충할 수 있는 방법을 아는 분이 있다면 꼭 공유 부탁드린다.



단 하루 만에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되어 너무 기쁩니다.


독일 도서관에서 방금 답장이 왔는데, 여태까지 한국책 문의가 하나도 없어서 구비를 안 한 것이라고 합니다. 제가 직접 아래 사진에 있는 것 처럼 상태 좋은 책들을 먼저 도서관에 기부하기로 했습니다. 생각보다 너무 간단하네요. 독일에 있으신 다른 한국분들도 독일 도서관에 한국책 구비해 달라고 팍팍 압력을 넣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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