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악어엄마 Jan 05. 2024

들어가며

원래 수업 첫날은 노는 거 아닌가요?

지금부터 제가 쓸 글은 보통 사람이 여기저기서 들은, 인생이 조금 더 나아지는 방법을 정리한 공부노트입니다. 


언제인가부터 모든 게 다 시큰둥하신 분 있으신가요? 밖에는 얼마나 자주 나가세요? 지금 독자님 집 상태는 어떠세요? 가슴에 손을 얹고, 손님이 10분 후 도착한다고 하면 당당히 집을 공개할 수 있으신가요? 아니, 그 반짝반짝하던 청춘들이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요.  


작은 방은 창고로 변해 버린 지 오래다. 미니멀리즘 실천한답시고 안 입는 옷을 쓰레기봉투에 넣어 둔지 한 달이 지났다. 깨끗한 옷이 없어서 쓰레기봉투들을 다시 열었다. 아침에는 라면을 끓여 먹었다. 깨끗한 냄비가 없어 싱크대에 쌓인 것 중 하나를 대충 헹궜다. 유튜브에서 드라마 요약한 거 보고 있다가 불 끌 시간을 놓쳐서 라면은 퉁퉁 불었다. 정말 맛이 없었지만 국물까지 다 먹었다. 남기면 퉁퉁 불은 라면을 버려야 하는데 그게 귀찮았기 때문이다. 내 몸의 가치는 이미 쓰레기통보다 못하다. 


제가 오랫동안 해왔던 일이 결국 실패한 후 쓴 글이네요. 밥맛이 뚝 떨어지는 TMI 묘사 정말 죄송합니다. 인생의 바닥이라는 거 누구한테나 다 다릅니다만, 제 바닥은 여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신기하게 어찌어찌 인생의 협곡에서 기어 올라왔네요. 그리하여, 정상에는 못 올라가더라도 굴 속에서 나와, 평지에서 산책은 할 수 있으니 다행입니다. 


그건 저의 굳은 의지나 치맥 덕분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물에 젖은 차렵이불 같던, 무거운 몸뚱이를 움직이도록 도와주었던 제 교과서 같던 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힘들면 이분들의 가르침을 다시 공부하면서 설거지도 하고, 머리도 감고, 외국어도 배웠습니다. 새해를 맞이해서 어떤 글을 쓸까 고민하다, 저를 모르는 그 선생님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브런치 북 (공부 노트)를 만들려고 합니다.


다음 10주 동안 그동안 꾸역꾸역 주워듣고, 머릿속에 꾸깃꾸깃 집어넣기만 했던 이야기들을 구역을 나누어 정리할 생각입니다. 그것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뇌과학자들에 따르면 뭔가를 빨리, 제대로 배우려면 두 가지를 해야 한다 합니다. 


첫째,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동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브런치 연재라는 약속이 그런 역할을 하겠지요. 둘째, 배운 걸 정리해서 타인에게 설명해 보는 것입니다. 아직 공부노트에 불과한 수준이지만, 이 글들이 조금이라도 독자님의 삶에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본격적으로 글을 연재하기 앞서 저의 "교과서"를 만들어 주신 선생님들을 소개합니다. 수업 첫날 들어가면 이렇게 강의 계획서 받고, 교과서 설명 듣잖아요. 


질문입니다. 이 분 뭐 하시는 분 같으세요? 격투기 전문가? 바이킹? 나무꾼? 


이 분 방금 33kg(72 lbs) 짜리 바위를 들고 2.4km(1.5ml) 산길을 오르셨습니다.

이 잘생긴 근육남은 바로 스탠퍼드 의과대학 신경과학 교수인 앤드류 후버만 선생님입니다. 진짜 덕질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분입니다. 제가 하도 주위에 이분 광고를 하고 다녀서 얼마 전에 그러지 말고 아예 글로 써보라는 조언을 들었습니다. 상체에 있는 저 많은 문신들은 10대 때 야매로 세긴 거라 하네요. 듣자 하니 이 분도 인생이 순탄하지는 않았답니다. 


그리고 제가 집안 살림을 이만큼이라도 유지할 수 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분의 팟캐스트입니다. 2시간이 넘는 강의 방송을 틀어 놓고 아이 빨래도 개고, 설거지도 하고, 요리도 했습니다. 정말 세상 좋아졌습니다. 집에서 최고 전문가가 설명하는 최신 과학 연구들을 바로바로 들을 수 있다니요! 또한 이 후버만 교수님은 목소리가 끝내 주십니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중저음에, 발음과 속도 역시 얼마나 좋은지, 영어 공부하기에도 찰떡이에요. 신기하게도 이 분은 변성기가 없었다고 합니다. 지금 목소리가 만 5살 때 목소리랑 똑같대요!   


두 번째 저의 선생님은 고미숙 선생님입니다.

공부 열심히 하는 쿵푸의 달인을 그려보라니까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 (DALL.E 2)


이 분의 책들은 저에게 이정표와 보험 같습니다. 쓸데없이 가방끈만 긴 저에게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는 진짜 공부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 책이었습니다. 오랜만에 펴 봤는데 역시 좋네요. 아무 페이지나 펼쳐도 새로운 깨달음이 있는 책들을 쓰십니다. 공부 (Kungfu)는 머리랑 몸이 하는 거라는 이 분의 말씀은 앤드류 후버만 교수님의 최신 신경과학 이론과도 상통합니다. 몸과 마음의 이분법은 이제 좀 고리타분하게 들립니다. 둘은 함께 가는 거니까요. 

선비가 하루만 글을 읽지 아니하면 얼굴이 단아하지 못하고, 말씨가 단아하지 못하고, 갈팡질팡 몸을 가누지 못하고 두려워하면서 마음을 붙일 곳이 없게 된다. 장기 두고 바둑 두고 술 마시고 하는 것이 애초에 어찌 즐거워서 했겠는가? - 연암집, 원사에서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에서 재인용)


또한 제도권에서 벗어나서 진짜 공부하는 공동체를 만들어가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많이 부럽습니다. 나도 한 번 이러한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꿈을 갖게 해 주신 분입니다.


세 번째 교과서 저자는 오소희 선생님입니다. 



저는 이상하게 남들이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길을 마다하고 다른 길로 용감하게 나아가는 사람들에게 본능적으로 끌립니다. 오소희 선생님의 "엄마의 20년"이란 책을 전자책으로 보았더니 페이지 하나하나마다 형광펜으로 밑줄 쫙쫙 치고 싶은 마음을 달래느냐 혼났습니다. 3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오지로 배낭여행을 떠나는 엄마이야기를 읽으며 제 옆에서 레고 가지고 놀고 있는 4살 아드님을 지그시 쳐다보게 만드는 분입니다. 


까맣게 바닥이 탄 냄비에 발을 동동 구르다, 베이킹 소다를 넣고 하루 기다리라는 조언을 읽고 그대로 해봤더니 정말로 그을음이 말끔히 걷혔을 때의 기분을 아세요? 오소희 선생님의 여러 가지 인생에 대한 조언들은 정말 "달인의 비법" 수준입니다. 엄마가 마시는 커피 한 잔은, 세상에 균열을 낼 수 있는 힘이 있음을 가르쳐 주십니다. 게다가 연대의 가치에 공감하고 배움과 실천의 공동체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고미숙 선생님과 비슷합니다. 


이제 기본 교재 설명이 끝났습니다. 이제부터 10주 동안 저도 열심히 세 분의 가르침을 줄 치고, 자르고, 풀 붙여 가며 제 식대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공부 열심히 하라고 가끔씩 응원과 잔소리 부탁드립니다.



다음 주에 소개할 맛보기 글입니다.


아침입니다. 불을 켭니다. 독일의 겨울 아침은 7시가 돼도 깜깜합니다. 독일에선 하얀색 전등을 잘 안 쓰므로, 노란색 부분 조명을 켭니다. 좀 낫네요. 어제 이 것 저 것 늦게까지 인터넷 쇼핑 하느라 잠을 잘 못 잤습니다. 커피부터 내립니다. 빈 속에 카페인은 안 좋은 것 같아 토스트도 입에 하나 물었습니다. 한 손에는 커피, 다른 한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이 것 저 것 스크롤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모습, 너무 흔하디 흔하고 평범합니다.

그런데 앤드류 후버만 교수님에 따르면 이미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네요. 핸드폰 좀 봤다고 뭐라고 한다고요? 아닙니다. 전등 켜는 부분부터 틀렸습니다. 



(덧 붙이는 말 : 그 밖에도 브런치북을 쓰기 위해 참고한 너무 많은 문헌과 팟캐스트와 생활의 지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선 주교재는 이렇게 셋입니다. 나머지 부교재들은 한꺼번에 정리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