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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악어엄마 Jan 26. 2024

우울한데 샤워하는 법

뜨겁게 말고 차갑게

전 고양이를 아주 좋아해요. 처음 만난 녀석들의 나이는 15살이었죠. 다들 새끼 고양이를 원하니, 얘네들을 입양할 사람들은 사실 많지 않았어요. 동물 보호소 직원이 대놓고 "할인가"에 주겠다고 할 정도였어요. 근데 이 녀석들, 저에겐 진짜 귀여웠어요! 나이가 나이인 만큼 한 녀석은 이가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도 고양이들은 우리 집에 잘 적응했고, 귀여움을 듬뿍 받았답니다. 


고양이들을 키우면서 신기했던 건, 고양이 입냄새, 엄청 지독하잖아요. 근데 그 까칠까칠한 혀로 털을 핥으면 털에서 너무 좋은 냄새가 나는 거예요. (우리 애교 많은 고양이는 생선이 잔뜩 든 사료를 먹고 와서 막 제 머리카락을 핥아주기도 했습니다. 아, 필요 없는데) 뭐 목욕을 시키는 것도 아니고 빗질을 해 주는 것도 아닌데, 어찌나 항상 단정한 모습인지. 제가 아무리 샴푸, 컨디셔너, 에센스, 세럼, 막 제품을 구매해도 고양이 하고는 게임이 안되더군요.


그러다 녀석들이 20살이 되었습니다. 사람 나이로 치면 백 살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그때부터 고양이들은 많이 아프기 시작했어요. 한 녀석은 다리를 절었고, 다른 녀석은 종양이 발견되었어요. 고양이들은 더 이상 그루밍을(털을 제대로 고르지) 하지 않았어요. 털을 만져보면 꼭 창고에 처박아둔 오래된 봉재인형 같은 느낌이었어요. 고양이들의 활기와 생기가 점점 사라짐과 동시에, 녀석들은 그루밍하는 것을 힘들어 하기 시작했어요. 

건강한 고양이들은 몸단장을 열심히 해요 (사진 출처: 위키)




오소희 작가님이 만든 엄마들을 위한 공동체는 이름이 "눈썹을 그려라"레요. 특히 전업맘이라면 눈썹을 그렸느냐 안 그렸느냐가 하루를 결정하기 때문이래요. 눈썹을 안 그리면 집에 들어앉아서, 자꾸 인터넷에서 해결하려고 한다는 거예요. 어찌 되었건 일단 밖에 나가야 되는데 말이죠. 


근데 저는 예전에 친정 엄마의 손에 이끌려 눈썹 문신을 했거든요. 이 놈의 반영구 눈썹, 반영구는 무슨, 거의 10년이 지났는데 지워지지가 않네요. 그래서 저는 눈썹이 이미 그려져 버렸으니 (끄응), 샤워했느냐가 외출할 때 더 중요하더라고요. 고양이들의 그루밍처럼, 샤워는 세균과 때를 벗기고, 엔도르핀을 분출시킵니다. 게다가, 샤워는 누구나 해야 하는 거고, 돈도 거의 안 들고, 무엇보다 안전하잖아요. 


그리고 샤워를 이왕 거면 뇌과학자들의 설명을 듣고 이들이 추천한 방법으로 해볼까요. 다시 여러모로 훈훈한 과학자이신 앤드류 후버만 교수님 팟캐스트를 들어봤어요. 그리고 교수님이 추천하시는 방법은 이 것입니다.


아침에, 1분에서 3분간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하랍니다! 

차갑다는 건 주관적이니까, 안전하게 할 수 있는 만큼이 기준이 되어야 한대요. 

아침에 하라는 건, 그래야 체온을 올리고 낮에 활기차게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반대로 밤에 잘 자려면 체온을 낮추는 게 좋으니 따뜻한 물이 좋겠죠.

1분에서 3분 역시, 개인차가 있으니 조절 가능하고 일주일에 다 합해서 11분 (연구에 나왔던 값) 찬물 샤워하는 것을 목표로 삼으래요. 


몇 년 전부터 사람들이 얼음이 동동 뜬 욕조에 들어가는 동영상이 제 피드에 엄청 뜨더라고요. 그리고 일명 테크 브로(tech bro)들이 콜드 플런지(cold plunge)가 좋고 어쩌고 하길래 전 그냥 지나가는 유행인 줄 알았어요. 근데 이게 다 과학자들이 오랫동안 연구했던 주제더라고요. 몸을 일부러 추위에 노출시키는 요법(deliberate cold exposure)의 영향에 대한 정말 다양한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과학자가 직접 가르쳐 주는 찬물 목욕 방법


그리고, 우선 말씀드려야 할 것은 찬물 샤워 자체는 연구가 별로 없대요. 왜냐면 찬물 목욕과 달리, 샤워는 피 실험자에 대한 통제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해요. 다들 샤워하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잖아요. 그래서 인용되는 연구 데이터는 많은 경우 긴 욕조에 들어가 서있는 상태에서 목까지 찬물에 노출되는 경우를 측정해 나왔어요. 하지만 욕조와는 달리, 샤워는 대부분 집에 있고, 위험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접근성 면에서 찬물 샤워를 권한다고 합니다.


휴버만 교수님이 소개했던 논문을 하나 살펴봤어요. 피실험자들은 32도, 20도, 14도의 물에 한 시간 동안 노출이 되었어요. 14도면 아주 낮은 온도도 아니죠. 그런데, 통제군과 비교해서 대사율은 350% 증가했어요! 32도의 경우는 대사율에 변화가 없었고, 20도의 경우도 대사율이 무려 93% 증가했대요. 또한 주목할 것은 14도 물에 노출되었을 때 혈장 도파민 농도가 250% 증가했다고 해요. 


그 외 추위노출요법 효과에 대해서 들어보면 와, 이거 거의 만병통치약 수준이에요. 학술지는 아니지만, "보그"지에서 의사와 인터뷰 한 내용이네요. 효과 한 번 들어보실래요?


염증과 부종 감소 

관절과 근육의 만성 통증 감소

면역 시스템 강화

전반적인 건강 촉진 

대사 개선 및 건강한 체중 감량 

인슐린 감수성 향상 및 2형 당뇨병 위험 감소 

우울증 증상 완화에 도움


진짜 솔깃하지 않으세요? 게다가 도파민 네이션이란 책에 보면 코카인 중독자였던 마이클이란 환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이 사람도 역시 추위 노출 요법을 이용해서 중독에 빠져나왔다네요. 몸을 일부러 추위에 노출시키면 도파민이 2.5배에서 5배까지 나온데요. 게다가 이건 마약과 달리 효과가 지속되기 때문에 훨씬 좋다는데요? (합법에다가 공짜?) 그럼 마약과의 전쟁을 하지 말고, 찬물 샤워하기 운동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또한 신기했던 것은 추위와 지방의 관계에 대한 설명이었어요. 저희 집 꼬맹이는 겨울에 내복만 입고 양말도 안 신고 집에서 돌아다니거든요. 화상전화하면 할머니 난리 나십니다. "손주! 옷 입어" 근데, 손주는 사실 하나도 안 추워요. 왜냐고요? 아이들은 갈색 지방이 많으니까요. 


갈색지방은 열생산과 에너지 소모를 담당하고, 체온 조절 및 대사 활동을 증가시키는 역할을 한데요. 반면, 하얀 지방은 에너지 저장을 담당한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베이지색 지방이 있습니다. 얘는 보통 때는 하얀 지방의 역할을 하다가 저온에 노출되면, 베이지색 지방이 갈색 지방처럼 활성화된답니다. 그러니 찬물 샤워로 다이어트 효과까지 노려볼 수 있다는 말씀!




나를 씻고, 단정하게 하는 것은(그루밍)은 단순히 외모지상주의의 산물이 아니네요. 우리 몸에 어떤 호르몬이 나오느냐 안 나오느냐를 결정하고, 내 몸이 어떤 지방을 원료로 태우느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행동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러고 보니 도인들이 산으로 들어가 차가운 계곡물에 목욕하고 폭포 아래서 가부좌 트는 게 다 과학적 근거가 있었던 거 아닌가 싶네요. 


이런 저도 매일 아침 찬물 샤워 시작한 지 겨우 한 달 정도 되었어요. 딴 건 몰라도, 커피를 몇 잔씩 마시지 않아도 아침에 정신이 말똥말똥해졌어요. 전 진짜 아침마다 해롱해롱 했거든요. 게다가 차가운 물에 샤워를 "자발적"으로 했다는 거 자체가 조금씩 자신감을 안겨주더라고요. 찬물이라 오래도 못하니 금방 아침 단장이 끝난다는 것도 큰 장점이고요.


고미숙 선생님이 말씀하시더라고요. 요즘 사람들은 다들 체온이 높고, 염증을 달고 산다고요. 그러면서 뜨겁게 살지 말고, 차갑게 살라고 하시네요. 왜 긴장할 때 청심환 먹으며 몸의 기운을 식히는 것처럼 말이에요. 병을 예방하려면, 활활 불태우면서 열심히, 더 빨리, 더 많이 살려하지 말라시더라구요. 잘 나가는 부자들이 저온 요법을 그렇게 좋아한다잖아요. 시간이나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그까짓 거 해봅시다. 뜨거운 욕심을 씻어내고, 차갑게. 단정하게.



인공지능이 그린 폭포 아래 도인들 (DALL.E 2)




(고양이 사진 출처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a/ad/A_cat_grooming_%288630065306%29.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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