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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악어엄마 Jan 13. 2024

우울한데 아침에 일어 나는 법

잠이 들지 않으면 일어날 수도 없어요

아침입니다. 불을 켭니다. 독일의 겨울 아침은 7시가 돼도 깜깜합니다. 독일에선 하얀색 전등을 잘 안 쓰므로, 노란색 부분 조명을 켭니다. 좀 낫네요. 어제 이 것 저 것 늦게까지 인터넷 쇼핑 하느라 잠을 잘 못 잤습니다. 커피부터 내립니다. 빈 속에 먹으면 안 될 것 같아 토스트도 입에 하나 물었습니다. 재밌는 글 올라온 거 없나 커뮤니티 게시판을 들여다봅니다. 재미가 없어지자 이 것 저 것 스크롤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모습, 너무 흔하디 흔하고 평범합니다. 그런데 앤드류 후버만 교수님에 따르면 이미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네요.


인터넷 좀 했다고 뭐라고 한다고요?

아닙니다. 전등 키는 부분부터 틀렸습니다.



우울한 감정이 드는 건 그냥 내버려 둡시다. 어차피 하지 말라고 해도 우울한 생각은 꾸물꾸물 올라올 거잖아요. 이번 주, 우리는 내가 빛을 받는 시간, 빛을 받지 않는 시간만 신경 쓸 거예요. 딴 건 안 할 거예요. 


별거 없어요. 생물 시간 때 들어봤죠? 햇빛 받아야 기분 좋아지고 잠이 온다고요. 그러면 우리 학벌에서 오는 권위에 기대어, 스탠퍼드 의과대학 후버만 교수님의 조언을 들어볼까요. (여러 강의를 듣고 제가 정리한 내용입니다)

잊으셨을 까봐. 바위 들고 운동하시는 교수님 사진 다시 한번 투척합니다.
일어나면 최대한 빨리 (그전에 물도 마시고, 화장실도 가고 다 하셔도 됩니다.) 밖으로 나가서 눈으로 햇빛을 받으세요. 창문으로 받는 빛은 효과가 떨어집니다. 선글라스는 햇빛을 반사하니 끼지 마십시오. 컨택트 렌즈는 괜찮습니다. 맑은 날이면 아침에 2분에서 10분, 구름 낀 날이면 30분 정도의 햇빛 노출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흐린 날이라도 햇빛에서 나오는 광자(Photon)가 인공광보다 더 많습니다.

이렇게 빛에 충분히 노출이 되면 코티솔이 분비되어 정신이 각성이 되고, 면역력과 집중력이 높아집니다. 도파민도 나와 기분이 좋아집니다. 동시에 수면을 도와줄 멜라토닌 분비 타이머가 켜집니다. 누구나 이런 습관을 실천할 것을 권장합니다. 심지어는 눈이 보이지 않는 분들도 말이죠! 잠을 자는 시간 14~16시간 전에 이렇게 몸의 광 스위치를 켜세요.

(참고로 저녁노을을 받는 것도 몸에게 좀 있으면 자라는 신호를 보내는 데 도움이 된답니다.)


돈 드는 것도 아니고, 안전한 방법이라, 후버만 교수님이 나온 거의 모든 인터뷰에서 이 얘기를 들은 거 같아요. 설명을 들으니 빛이라는 놈이 몸과 마음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연구가 진짜 엄청나게 많더라고요. 예를 들어 햇빛을 받으면 서로가 더 섹시해 보인다네요. 심지어 머리카락도 잘 자라고, 상처도 잘 아물고, 피부도 좋아진데요. 여름에 다들 연애하는 이유를 알 거 같네요. 


너무 일찍 일어나셨거나 날씨가 별로라서 햇빛이 안 보이면, 광테라피, 멜라토닌 라이트라고 검색해 보세요. 10k LUX 짜리, 하얀색 조명이 나올 거예요. 그 거 하나 구입하세요. 비싼 거 필요 없대요. 후버만 교수님도 라이트 박스라고 그림 그리는 분들이 밑그림 트레이싱할 때 쓰는 저렴한 거 사서 일할 때 하루 종일 켜 놓는다네요. 전 독일에서 샀는데 18유로 정도 되었네요. 가격이 저렴해도 타이머도 있어, 알람 대신 사용할 수도 있고요. 음질이 좀 구리긴 하지만 라디오도 나와요. 게다가 이 조명은 식물 키울 때도 사용 가능하다고 해요. 이 조명을 켜 놓으니까 식물들이 좀 더 건강해진 느낌이에요. 돈 쓰기 싫다고요? 그럼 아침에 해가 날 때까지 가능한 많은 조명을 켜 놓으랍니다.


우울하면 자꾸 자신을 괴롭히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나를 벌주고 싶다면 내가 가장 싫어하는 걸 해야겠다고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밖에 나가 움직이는 거 말이에요. 참 신기한 게 저에겐 이게 통했어요. 나를 방치하고 막 대했던, 못난 나란 녀석. 햇빛으로 막 괴롭혔어요.  




둘째, 아침에 일어나려면 당연히 밤에는 잠을 자야 해요. 그런데 중요한 건 이거예요. 자기 전 (특히 밤 11시부터 새벽 4시까지) 우리가 받는 인공광을 최소한으로 줄이셔야 해요. 안 그러면 도파민 분비에 엄청난 교란이 오고, 학습 능력과 기분 저하 같은 부작용들이 줄줄이 생긴다고 합니다. 또한 어떤 집들은 대부분 하얗고 밝은 형광등이 설치되어 있죠? 밤에는 형광등을 공장이나 사무실에 양보하세요. 해가 지면 최대한 노란색 부분 조명만 켜세요. 우리 몸은 잘 때 켜놓는 희미한 빛에도 반응할 만큼 정말 민감하다고 해요. 네이처 지에 나온 연구에 따르면 밤에 빛을 많이 보는 행동이 주요 우울증, 일반적 불안장애, PTSD, 정신병, 양극성 장애 및 자해 행동의 증가된 위험과 관련이 있었답니다. 


우울한 밤, 안 그래도 나쁜 상황을 확실하게 더 나쁘게 만들고 싶다면, 핸드폰을 들고 잠자리에 가세요. 이 건 네이처 연구 논문도 필요 없어요. 제가 산 증인이거든요.

새벽 2시다.  아직도 누워서 유튜브를 보고 있다. 광고가 계속 나오니 짜증이 몰려온다. 2분도 안 되는 요리 영상을 보려고 광고 5초 빨리 넘기려고 기다린다. 둘째 손가락은 오른쪽 아래 세모 버튼에 이미 가있다. 화가 난다. 유튜브도 재미가 없다. 퉁퉁 불은 라면을 내 몸에 꾸역꾸역 넣었을 때 느꼈던 감정이랑 누워서 하루 종일 유튜브 볼 때랑 비슷한 거 같다. 

새벽 4시 30분이다. 밖에 새소리가 들린다. 인스타를 켜고 알던 사람 근황을 조사한다. 왜 얘네들은 이런 것까지 포스팅하지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시시콜콜한 내용들을 어깨가 아플 때까지 쳐다보고 있는 나한테 화나서 눈물이 난다.


또한 핸드폰이나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는 건 당연 시야가 좁아지겠죠? 그럼 우리의 신경은 곤두서게 되고, 긴장은 스트레스가 된답니다. 반대로 시야를 평원을 바라보듯 최대한 넓게 가지면 우리 몸은 반대로 이완되어 휴식을 취하게 되는 거고요. 말 그대로 최대한 멀리 보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 우리의 정신 건강에도 좋답니다. 


"잠이 들지 않으면 일어날 수도 없어요" (이 대사는 영화 애스테로이드 시티 (Asteroid City)에 나와요. 강추해요!)


그리고 아까 멜라토닌 얘기했죠? 빛에 의해 억제되는 호르몬 말이에요. 엄청 중요하죠. 예를 들어 아이들의 사춘기 억제 작용을 하는 호르몬이 멜라토닌이래요. 어린아이들은 오후 7시만 되면 벌써 눈을 비빕니다. (10시가 되어도 안 잔다고요? 혹시 아이들 저녁에 휴대폰 너무 많이 본 거 아닌가요?) 원래 이때가 일생에서 멜라토닌이 제일 많이 나올 때니까요. 이런 맥락에서 앤드류 후버만 교수님은 성인들의 불면증 치료를 위한 고용량 멜라토닌 보조제가 인기가 많기는 하지만, 그다지는 권하지 않으신다네요. 교수님이 직접 하셨던 연구에 따르면 고용량 멜라토닌을 섭취한 수컷 햄스터들의 고환이 쌀알 크기로 작아지고, 암컷 생리주기가 교란되는 등 생식능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 되었답니다.




사실 이 글 쓰면서 엄청 고민했습니다. 빛과 정신건강에 대한 연구들이 진짜 무궁무진하게 많더라고요. 1주일 동안 공부해선 진짜 택도 없는데 이 글 써도 되나? 그래도 딱 3개 포인트는 기억하기로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최대한 빨리 집 밖에 나가 2분에서 10분 동안 직접 햇빛을 받는다. 

밤에는 인공광을 최소한으로 켜 놓고, 방을 최대한 어둡게 해 놓고 잔다. 

시야가 넓어지면 몸이 안정이 된다. 핸드폰 등의 작은 화면은 시야를 좁혀 몸이 긴장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전 의사도 아니고 신경과학자도 아니니 심한 우울증이 있으신 분들은 전문가한테 가셔야 할 거예요. 하지만, 여기까지 읽어 주실 만큼 아직 힘이 좀 남아있는 분들이라면, 시도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아참, 하루 이틀 해보고 소용없다고 하심 안 돼요. 늦게 주무시고 늦게 일어나시던 분들, 우리 몸 시곗바늘부터 제대로 맞춰놓도록 해요. 


우울한데 아침에 일어나는 모습을 그리라니까 인공지능이 그린 역시나 이상한 그림 (DALL.E 2)

(표지 그림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Morning_nature_click.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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