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살릴 수 있는 마법
지금 무용 수업에 열심히 참가하고 계신 우리 집 서열 1위는 예정일보다 9주나 일찍 세상에 나왔습니다. 신생아 집중 치료실 인큐베이터에서 처음 만난 아이는 정말 너무 작았어요. 2킬로그램도 안 되는 아이의 코와 입에는 호스가 주렁주렁 연결되어 있었죠. 하지만 걱정하거나 슬퍼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곧장 캥거루 케어를 해줘야 했거든요.
캥거루 케어는 1980년대, 의료 시설이 열악했던 콜롬비아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개발도상국에는 인큐베이터가 병원에 부족하니 그 대안으로 보호자(아빠도 당연히 합니다)가 아이를 살을 맞대고 따듯하게 안아준 것이죠. 그 효과가 인정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한국과 독일에서도 적극 권장하는 요법입니다. 저와 남편도 4주를 매일매일 병원에 나왔어요. 셔츠를 벗고 맨살로, 작은 아이를 껴안았습니다.
그야말로 손을 아주 많이 탄 우리 아이, 생후 6개월이 되자 소아과 선생님이 이미 정상 발육 그래프를 다 따라잡았다 하시대요. 지금은 아예 또래 보다 키가 큽니다. 사람을 안으면 생명을 살린다는 것을 정말 매일매일 확인하고 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촉각 자극이 있으면 혈압, 맥박수, 코티솔 분비가 내려가고, 옥시토신, 세로토닌이 증가했습니다. 집중력도 올라가고, 우울증이 완화되며, 면역력도 향상되었다네요. 또한 통증 완화에도 상당히 도움이 돼서 지금 약 대신 촉각을 이용하는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대요.
그런데 정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북한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는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 시절에 보육원에서 컸던 아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그것이죠. 동유럽 최악의 독재자로 알려진 차우셰스쿠는 애들이 많아야 국력이 향상된다고 생각했어요. 억지로 사람들에게 아이를 낳게 했고 그 결과 10명씩 아이를 낳는 경우가 흔했어요. 하지만 거의 막장 수준의 경제 상황 속, 아이들을 키울 여건이 안 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버려진 아이들이 무려 16만 명이예요.
당시 보육원의 실태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면, 아이들은 그야말로 학대와 방치 속에서 컸습니다. 제대로 된 촉감 자극이 없었던 아이들은 몸과 마음에 영구적 장애를 입습니다. 아이들은 또래보다 체구가 작았고, 상동행동을 했으며, 뇌발달도 떨어졌어요.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것 역시 어려워했습니다.
또한 미국 교도소 독방 수감자들을 연구한 논문들에 따르면, 다른 사람과의 접촉이 없이 구금된 수감자들은 온갖 정신적, 신체적 이상을 보였답니다. 예를 들어 피부발진, 몸무게 증감소, 근육통 등이 나타났고요, 장기 독방 수감자의 경우 방향감각 등 아주 기본적인 신체 능력도 잃어버리게 된 경우도 있답니다. 연구에 참여한 독방 수감자 반이상이 우울증과 불안 증상을 보였고, 전체 감옥 수감자의 6~8%를 차지하는 독방 수감자들이 자살자의 50%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어렸을 때 받은 촉각 자극의 양은 아이들의 행동에도 큰 영향을 미쳐요. 프랑스 파리에 사는 유치원생과 미국 마이애미에 사는 유치원생을 비교해 봤대요. 그 결과, 미국 애들이 친구나 부모님들에게 촉각 자극을 덜 받는 것으로 나타났고, 프랑스 아이들에 비해 훨씬 더 공격적인 것으로 나타났대요.
피부는 우리의 가장 큰 감각기관입니다. 인간의 몸에서 가장 먼저 발달하는 감각 역시 촉각입니다. 촉각이야 말로 여러 세월 진화를 걸쳐 만들어진 사회적 연결 고리이고요. 그러기에 촉각 자극이 부족해진다는 것은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킵니다. 아, 집에 마사지 의자가 있으시다고요. 그건 해당이 안 됩니다. 누가 어떻게 만지는 가를 뇌가 다 알거든요. 여기서 말하는 촉각이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만져주는 걸 말해요. 안 좋아하는 사람을 막 만지면 그건 변태고요. 말씀드리지만 여기서 인용된 연구에서 다루는 사회적 촉각 (social touch)이란 성적인 의미가 없습니다.
근데 예전엔 루마니아 보육원 사례나, 헝겊 엄마, 철사 엄마 원숭이 실험, 독방 수감자 사례 같은 걸로 촉각 자극 부족을 연구했다면 요즘은 그럴 필요도 없어진 거 같아요. 촉각 자극 부족은 아예 일상이 되었는데요. 우리 사회를 말해주는 대표적 단어 중 하나가 "언택트"잖아요.
이미 전 세계는 인위적으로 촉각 자극을 제거했던 커다란 실험을 했습니다. 코로나 봉쇄 정책이 바로 그것이죠. 코로나 시절, 촉각 자극 부족과 정신건강을 연구한 사례에 따르면 우울증, 불면증, PTSD, 고독감 등이 촉각 자극 부족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답니다.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우리는 열심히 촉각을 시각으로 대체하려 했지만, 오히려 촉각의 중요성을 더 강조한 셈이 되었어요.
영어로는 촉각 자극 결핍을 "Skin Hunger"라고도 한다네요. 진짜 이름 잘 지었네요. 촉각 결핍은 그야말로 피부의 온기를 고파하는 거예요. 근데 한국을 포함해서 전 세계는 지금 정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고, 자본주의는 이런 방향을 더 부추기는 것 같아요. 예전엔 동네 할머니들이 애들 예쁘다고 머리도 쓰다듬어 주시고 그랬던 거 같은데. 요즘 그랬다간 어디 커뮤니티 게시판에 개념 없는 사람이라고 글이 올라오겠죠? 학생 때 친구들끼리 팔짱 끼고 화장실 가던 낭만은 다 어디 갔는지 모르겠어요. 선을 넘으면 안 되는 세상, 다들 그냥 외로워도 그게 인생이다 하고 살고 있는 건가요.
그리고 이런 촉각 자극 부족 문제는 출생률과도 연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얼마 전에 본 인터뷰에서 영국 사람들이 난리를 치면서 그러더라고요. 한국 출생률이 너무 낮아서 100년 후에는 지금 100명이 4명이 될 거라며 막 우리를 걱정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코로나 시절 1~2%의 사망률을 가지고 그 난리가 났는데, 이건 96%의 사망률 아니냐고 막 그러대요. 만지는 건 다 성적인 거라고 오해하는 지금, 섹시한 남녀들이 화면에 넘치는데, 현실은 타임머신을 타고 남녀칠세부동석이에요. 그야말로 서로에게 손을 내밀지 않으면 우리 다 죽게 생겼네요.
그리고 피치 못한 사정으로 인하여 주위 사람을 안아주지 못할 경우도 있어요. 그때는 이럴 땐 땅을 밟으며 발바닥의 촉감을 느끼거나, 얼굴에 크림을 바르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해요. 하지만, 난 사람이랑 같이 있으면 기 빨린 다는 분들도, 촉각 자극을 계속 주셔야 된대요. 나중엔 이런 결핍에 익숙해져서 촉각 자극이 어색하게 느껴지게 돼버리고, 동시에 아까 언급했던 결핍에 따른 부작용이 생긴다고 해요.
또한 포옹할 때는 되도록이면 등 위, 날개 죽지 부위를 천천히 쓸어주세요. 거기에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신경 섬유가 모여 있다네요. 그게 왜 몸 앞이 아니라 뒤에 있을까 생각하면 참 신기하지 않으세요? 남한테 다정한 손길을 받으며 무리 속에 들어가라는 진화의 산물인 거잖아요. 혹은 털이 나있는 팔을 만지는 것도 역시 신경 섬유가 많이 모여 효과가 좋대요. 왜 원숭이들의 친밀감과 무리의 세력을 알 수 있는 지표 중 하나가 서로 털 고르기 해주는 시간을 측정하는 거라잖아요. 원숭이들은 무려 하루의 10%에서 20%를 친구 털 고르기를 하면서 보낸데요.
한국 문화는 보수적이라 서로 안아주는 걸 부담스러워한다는 인식도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제 경험은 조금 달라요. 이제 외쿡물 먹은 지 많이 오래된 저, 한국에 들어가면 인사할 때 무조건 가족과 친구를 안아요. 처음엔 당황하시는 것 같기도 했지만 금방 저의 진심을 알아주시더라고요. 피하시거나 '어머, 징그러워." 하는 분은 한 분도 없었습니다.
특히 사정이 되신 다면,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을 포옹해 주세요. 어색하다고 하시면, 이게 고혈압이랑 심장 관련 증상 완화, 면역력 강화에 직방이라고 말해주세요. 수상한 건강보조식품 사드리는 것보다 효과도 확실하고 돈도 안 들어요.
그 무뚝뚝한 독일 사람들도 남녀노소 없이 인사할 땐 서로 포옹하거든요. 까짓것 우리도 합시다. 피부의 온기는 말 그대로 사람을 구하니까요.
<원숭이 그림 출처: https://images.app.goo.gl/5H22kN9D7GUDfnEw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