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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악어엄마 Feb 18. 2024

우울한데 사람을 사귀는 법

우울증의 진짜 처방

아마 이 얘기 들어보셨을 거예요. 외로움은 매일 담배를 15개비씩 피우는 것만큼 해롭다고요. 외로움이 얼마나 나쁜지, 조기사망 가능성, 심장병, 뇌졸중, 불안증, 치매, 비만 위험을 높이고 바이러스 감염과도 관련이 있다네요? 그래서 제가 찾아봤습니다. 누가 어떤 근거를 가지고 이렇게 살벌한 얘기를 했는지 말이죠.


담배도 피우고 외로운 사람은 어쩌죠


그리고 이 발언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미국의 쓰리 스타 장군연방공공보건부대 의무총감 (Surgeon General) 이신 닥터 비벡 머시입니다. 목소리도 나긋나긋하시고, 단어 선택하시는 걸 들어보면, 이야, 이런 분들이 진짜 세상을 구하는 사람이구나 싶어요. 의사가 아니라 꼭 성직자가 더 어울릴 거 같고요. 


신기한 게 미국 의무총감 유니폼이 꼭 해군이랑 비슷하잖아요. 그게 연방공공보건부대가 옛날에는 항구에서 해군들이 옮겨오는 질병을 통제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는데요. 어떤 정치 논리에도 간섭받지 않고 독립기구로써 다양한 활동을 벌여왔대요. 흡연, 비만, 중독의 위험에 대해 적극 홍보한 것도 이 연방공공보건부대였고요.

미국 연방공공보건부대 의무총감 (Surgeon General) 닥터 비벡 머시


그럼 왜 연방공공보건부대에서 외로움에 대해 연구한 것일까요? 당연합니다. 외로움은 국가 안보에 직결되는 아주 중요한 문제니까요. 사회적 고립으로 인한 미국인의 연간 사망자 수는 암 또는 뇌졸중으로 인한 사망자 수를 초과하는 16만 2000명에 이릅니다. 게다가 일명 "외로운 늑대"라고 부르는 극단주의를 추종하는 단독 테러범들이 느는 것도 치안 불안을 야기합니다. 전염병을 항구에서부터 원천 봉쇄하듯, 이제 고립감과 외로움을 국가가 움직여서라도 해결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죠.  




원래 사람은 혼자고 외로운 거 아니냐고요? 근데, 이게 확실히 현대의 외로움은 뭔가 다른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재밌는 걸 하나 발견했는데요, 1800년 이전에는 영어에 외로움이란 단어 Loneliness가 존재하지 않았대요. 뭐 대강 수긍이 가지 않나요?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한 곳에서 모여 살았고, 신이 항상 내 옆에 있다고 믿었으니 별로 외롭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현재,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외롭고 단절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미국의 한 조사에서 몇십 년 전에는 어려울 때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사람의 숫자는 3명이었대요. 2004년 조사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숫자는 0이랍니다. 오래된 통계이긴 하지만 아마 이 숫자가 더 나빠졌지 좋아졌을 것 같진 않아요. 영국 남성 중에서 친한 친구가 하나도 없다고 대답한 사람이 무려 250만 명이래요. 현재 한국에서 1인 가구의 숫자가 1천만이라는데요. 핵가족을 넘어 핵개인 시대라는데, 이런 현대 사회를 본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뭐라고 할지 궁금하네요. 인간은 사회적 동물 아니었나요.


외로움에 대한 정치 경제적 논의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는 완전히 생략하기로 하겠습니다. 그 주제에 대해서는 너무 쓸 거리가 많기도 하고, 처음부터 거인을 상대하는 기분이 들 필요는 없으니까요. 다만 성인이 되어 친구를 사귀었던 사람들의 재미있는 사례만 2개 들어볼게요.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영국 런던에 사는 미국인 제시카 팬입니다. 제시카는 정말 심각한 내향인이었답니다. 대학시절 제시카의 생일에 친구들이 모였더니 감동의 눈물은커녕 무서워서 눈물을 흘렸대요. 하지만 그렇다고 제시카가 호기심이 없는 사람은 또 아니었어요. 제시카는 성인이 되자 미국을 떠나 중국, 호주, 영국에서 살았대요. 지금과의 나와는 다른 내가 될 수 있는 장소를 찾고 싶었다는 거예요. 그냥 새로운 걸 계속 접하면 행복하고 따뜻하게 잘 살 줄 알았대요.


하지만 밖에 건물과 발코니가 아무리 예쁘더라도, 결국 제시카는 이야기 상대가 없어 혼자 가로등 기둥을 껴안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영국인 남편을 따라 런던에 왔지만, 결국은 외톨이였거든요. 런던에서도 소파에 하루 종일 앉아 우울증에 시달리다 어느 날 결심을 했대요. 딱 1년만 밖에 나가서 모르는 사람들하고 부딪혀 보자고요. 그러면서 제시카는 인간관계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받으며 엄청난 도전을 하나씩 해내기 시작합니다.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에 서고, 모르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친구 찾기 앱에서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중 재미있었던 과제 하나는 길거리에서 정말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는 거였어요. 예를 들어 모르는 사람을 붙잡고 "제가 진짜 몰라서 그러는데요, 영국에 지금 여왕이 있던가요? 이름이 뭐였죠?" 이렇게 묻는 거예요. (아, 이 책은 출판된 지 몇 년 되었습니다. ) 그랬더니 어떤 남자가 아주 당당하게 그러더래요. 


"빅토리아 여왕이요"


그리고 걱정스럽게도 이런 대답을 하는 사람들을 여러 명 만났대요. 아, 영국 공교육 문제가 심각한 건가요? 저도 이런 대답을 들었다면, 자신감이 생겼을까요? 세상 사람들이 다 똘똘한 건 아니니까 무서워할 필요는 없겠다고요?


그러면서 제시카는 친구는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대요. 사람들은 티를 안 낼 뿐이지 모두 외로움을 느끼거든요. 스몰토크(small talk)의 문화가 있는 미국과 영국의 전문가들은 놀랍게도, 새 친구를 사귀려면 날씨 같은 피상적 주제보다 깊이 있고, 힘들었던 개인사 같은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시도하라고 권유했대요. 그리고, 이 부담스러운 방법이 상상이상으로 효력을 발휘하더래요.  


이런 식으로 무한도전에 성공한 제시카는 집에서 10명의 새 친구들을 위한 추수감사절 파티를 여는 걸로 1년 간의 친구 만들기 여정에 끝을 맺습니다. 그러면서 1년간 너무 행복했다고 합니다. 실수도 많이 했고 창피도 많이 당했지만 괜찮았대요. 아니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생기가 넘치는 사람이 되었대요.


마지막으로 이 책에 재미있는 통계가 나옵니다. 친구라고 느끼기까지 6~8번 정도를 만나야 하고요. 50시간을 같이 보내야 상대를 가벼운 친구로, 90시간 이상을 같이 보내야 진짜 친구가 된답니다. 그래서 평생 가장 친구가 많은 시기는 29세이고,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횟수는 25세에 정점을 찍고 그 이후부터는 줄어든데요. 




두 번째 이야기는 영국 작가 요한 하리(Johann Hari)가 들려줍니다. 요한은 어렸을 때부터 우울증이 너무 심했대요. 그래서 우울증의 진짜 원인을 알고자 전 세계를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인터뷰를 합니다. 그리고 많은 전문가들이 요한에게 그랬대요. 현대 우울증이 우리가 흔히 들어왔듯, 뇌 내의 화학 물질이 불완전하고, 세로토닌이 덜 나와서 생기는게 아니라고요. 우울증의 진짜 원인은 많은 경우, 공동체의 상실에 있다고 보았어요. 부족(tribe)을 이루며 살던 인간이 갑자기 무리에서 떨어져 나왔는데 어떻게 건강할 수가 있냐는 거예요.


그리고 요한이 우울증을 연구하기 위해 방문한 도시 중에는 베를린도 있었어요. 요한은 문제 지역으로 손꼽히는 베를린 코트부스, 혹은 "코티(Kotti)"에서 외로움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2011년 여름 베를린 아파트 단지, 휠체어를 탄 63살의 터키계 여성 누리예가 창문에 나 이제 죽을 거라고 종이를 붙입니다. 월세를 못 내서 1주일 뒤에 아파트에서 쫓겨나는데, 자살하더라도 그 이유는 알리고 죽겠다고요. 대부분의 독일 아파트 단지들은 부자들이 살지 않아요. 어떤 곳은 범죄가 심각해서 이웃하고 인사도 잘 안 하고 집에 들어가자마자 문 잠그고 산답니다. 코티는 게이랑, 무슬림 이민자들이랑, 돈 버는 건 관심 없는 무단 점유자(squatter)들이 흘러들어와 사는 동네였고요. 뭐 이 사람들끼리 무슨 공통점이 있겠어요. 근데 이 사람들이 누리예 때문에 다 같이 모이게 돼요.  


누리예의 사연을 들은 이웃 몇몇이 점거 시위를 하자고 제안했대요. 누리예는 맨 처음에 이 사람들이 미쳤구나라고 생각했고요. 근데 예상과 달리 안 그래도 오르는 월세 때문에 화가 나 있던 사람들이 시위에 동참하기 시작했대요. 판자랑 가구를 쌓아놓고 바리케이드를 쳤대요. 근데 경찰이 와서 다 뜯어갈지 모르니까 사람들이 보초를 서기로 했대요. 


그리고 어느 날, 누리예는 타이나와 한 조가 되어 보초를 섭니다. 63살의 히잡을 쓴 터키계 여성과 46살의 문신이 가득한 독일 힙스터 여성이 같이 앉습니다. 무슨 코미디도 아니고 참 뻘쭘했겠어요. 그러다 계속 얼굴을 보다 어쩌다 이 동네에 넘어오게 되었는지 말을 트게 되었대요. 그리고 이 전혀 달라 보이는 여성들은 삶의 공통점을 발견합니다.


IMG_1080 | Kotti und Co | Flickr


누리예는 전기도 상수도도 없는 동네에서 자라 17살에 결혼해 두 아이의 엄마가 됩니다. 그리고는 베를린으로 넘어와 공장에서 일하면서 터키에 있는 남편에게 돈을 보냈대요. 그러다 누리예가 채 스물이 되기도 전에 남편이 병으로 사망합니다. 타이나는 14살에 집에서 쫓겨나서 이 동네에 넘어왔대요. 80년대 당시 코티는 집들이 다 비어 있어서 진짜 무서웠대요. 그래서 펑크족들이랑 모여서 집에 들어가 살았대요. 그러다 타이나는 임신을 하게 되고 싱글맘이 되었답니다. 아무도 타이나를 도와주지 않았대요.


두 여성은 겉모습은 달랐지만 속은 비슷했던 거죠. 더 이상 돌아갈 고향이 없었던,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따듯했던 싱글맘들이요. 그리고 이렇게 코티 사람들은 조금씩 서로를 발견합니다. 힙합을 좋아하는 터키계 소년 메멧은 낮은 성적으로 학교에서 쫓겨날 위기 였죠. 보초 서는 날, 메멧은 은퇴교사 데트레프를 만나게 돼요. 예상하셨겠지만 데트레프는 메멧의 학교 적응을 도와줍니다. 숙제를 도와주고, 메멧의 할아버지 같은 존재가 됩니다.


서독 작은 마을에 도망쳤던 리처드는 코티에서 게이 클럽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이웃들의 소식을 들은 그는 시위대들을 위한 회의 공간과 각종 물품을 무상으로 제공합니다. 회의에 나왔던 이민자들 대부분이 아주 독실한 무슬림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다들 리처드의 게이 클럽에서 회의하러 나왔대요. 그리고 어느 날 무슬림 여성이 가져온 케이크에는 무지개가 그려져 있더랍니다. 전혀 섞일 것 같지 않던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서로의 다른 모습을 인정하기 시작한 거예요.


IMG_8555 | Kotti und Co | Flickr



요한 하리는 코티의 사람들이 자기를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거래요. 이들의 모습들을 밀착 취재하던 요한은 정말 시도 때도 펑펑 울었답니다. 너무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며 친구가 되는 모습이 너무 감동적이었더래요. 가난한 동네 코티, 많은 이들이 우울증을 앓고 있었어요. 이 모든 것의 발단이 된 누리예가 자살을 생각할 만큼이요. 하지만 휠체어를 탄 누리예는 용기를 가지고 연대합니다. 집안에서 나와 거리로 뛰쳐나옵니다. 코티의 이웃들은 해당 부동산 회사가 이미 투자금액의 5배를 회수하고도 월세를 올리려 한다는 걸 알게 됩니다. 끈질긴 노력으로 이들은 결국 월세 동결이란 목표까지 달성하고, 현재 코티를 넘어 베를린 전역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부러 재미있고 훈훈한 예만 들었지만 이 글은 여태까지 쓰면서 가장 힘들었습니다. 외로울 때 나오는 코티솔의 양은 길 가다가 모르는 사람한테 폭력을 당했을 때와 같다고 하네요. 상상도 할 수 없는 괴로움입니다.


우울증에 대한 많은 논문, 기사와 인터뷰를 읽었지만 분석이 뭔가 피상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우울증이 감기 같은 거니까 가서 약 먹으라는 식의 조언도 너무 찜찜하게 느껴졌습니다. 우울증은 몸이 보내는 구조 신호인데 그 신호를 화학적으로 억제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냐 싶더라고요. 그리고 우리 사회에 골이 정말 많이 깊어졌구나를 느꼈습니다. 모두들 헛다리를 짚고 있다는 기분도 들었고요. 외로움과의 우울증의 인과관계를 밝히려 했던 논문들을 읽으며 외로움을 국가적 재앙으로 보았던 닥터 머시에 공감했습니다.


오찬호 박사님은 말합니다. 너무 분명한 사례들이 우리 눈앞에 던져있는데 우리가 나아가야 할 명확한 방향을 읽어내지 못하는 사회는 퇴행한다고요. 더듬더듬, 아직도 길을 찾고 있는 제가 여기서 감히 결론을 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외로움을 개인 사정으로 치부할 만큼 우리가 한가하지 않다는 것은 깨달았습니다. 아주 깊게 연구하고 행동해야 할 가치가 있는 주제라는 걸 확신하면서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표지사진 출처 https://upload.wikimedia.org/wikiversity/en/d/d7/Sad-Sadness-Man-Depression-Depressive-Loneliness-6073920.jpg>

<코티사진 출처 Kotti und Co |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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