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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악어엄마 Feb 10. 2024

우울할 때 혼자 커피 마시는 방법

나만의 커피를 찾아서

오소희 작가님이 그러더군요. 꿈을 잃어버려 무기력해하지 말고, 아침에 우선 집을 나가 카페로 갑니다. 도서관도 있지만, 거기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기는 너무 조용하고 졸리잖아요. 그러니까 무작정 책 한 권들고 맘에 드는 카페에 가서 커피를 한잔 시킵니다. 특히 어떤 사람들은 카페 가서 메뉴판 보고 한참 고민한 후 가장 싼 걸 시키는 데 제발 그러지 말라 하시더라요. 그래봤자 몇 천 원 차이 나니까, 그냥 마시고 싶은 거 마시랍니다. 자기를 홀대하는 버릇을 이제 좀 버리고, 가장 맛있는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뭔가를 하기 시작하라고요. 


그깟 몇천 원이 아까와서 집에 있잖아요? 그럼 집에 있던 모습으로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엘리베이터에서 잘 차려입은 옆집 이웃이랑 인사를 하게 됩니다. 너무 창피하죠. 그리고 이제 온 정신은 옆집 이웃이 들었던 명품백 같은 걸로 쏠리게 된답니다. 내 팔자야, 내가 그것만 있었더라면, 이러고 있지 않을 텐데. 충격을 받은 당신은 더 집에 들어앉아 인터넷 쇼핑몰이나 들여다보며 쓸데없는 물건이나 주문하고 있을 거랍니다. 


그런데 밖에 나가 매일매일 책을 읽게 되면 어떨까요. 아마도 뿌듯함과 자신감으로 가득 차 그 딴 명품백 따위에 정신이 팔리지 않겠죠. 정신이 이미 부자인데요 뭘. 한 달 동안 쓴 커피값이 클까요, 홧김에 지른 명품백 가격이 더 클까요. 

 

그리고 이게 계속 더 발전하면 혼자 마시던 커피는 둘이 마시던 커피가 되고, 공동체를 꾸려나가는 연료가 되겠죠. 근데 여기까진 좀 먼 얘기인 거 같으니까, 우선 혼자서 커피를 잘 마시는 방법부터 알아봤습니다. 커피가 생각보다 엄청난 음료더라고요.




미국의 마이클 폴란 (Micheal Pollan)이란 작가를 들어보셨나요? 식물과 인간의 상호작용에 대해 많은 글을 쓰시는 데 정말 재미있고 호기심이 많은 분입니다. 이 분 나오는 인터뷰는 꼭 찾아들어요. 그리고 예전에 이 분이 커피 속 카페인에 대해서 설명하는 걸 듣고 제가 깜짝 놀랐답니다.


조 로건, 마이클 폴란 인터뷰


우선 조 로건과의 인터뷰에서 폴란 아저씨가 그러시더라고요. 커피 전문가의 권유로 3달 동안 커피를 끊어 봤대요. 커피가 얼마나 강력한지 진짜 효과를 알아보려면 한 번 끊어봐야 된다 했다는 거예요. 첫 1주는 정말 집중이 안되더래요. 글도 하나도 못썼고, 왠지 현실과 나 사이의 장막이 있는 듯하며 너무 어색했대요. 거의 매일 커피를 섭취하는 현대인들에게 자아의 기본값이란 이미 몸에 카페인이 들어간 상태였던 거죠. 그리고 3달 후, 다시 마셨던 커피는 너무 환상적이고 환각적일 정도(psychedelic)였대요. 그래서 깜짝 놀란 폴란 아저씨는 커피의 역사에 큰 관심이 생겼답니다. 


폴란 아저씨는 커피는 아랍 문명의 발달과 연관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커피가 처음 발견된 곳은 800년대 에티오피아라고 하죠. 양들이 특히 좋아하는 빨간 열매를 본 목동이 이 것 저것 실험을 해보고 만든 음료가 커피였다고 해요. 그리고 커피가 집중력을 높여준다는 걸 알게 된 이슬람 학자들에게 이 음료는 큰 인기를 끌게 됩니다. 또한 커피를 만들기 위해서는 물을 끓여야 했는데, 이러면서 질병의 위험도 낮아져 공공 보건 수준이 높아집니다. 커피 이전에는 아무도 끓인 물이나 뜨거운 음료를 마시지 않았대요.


이렇게 아랍 세계가 먼저 커피를 마셨고, 그 결과 아랍 문명은 과학, 문학 등의 분야에서 큰 발전을 이루며 황금기를 누리게 되었다는 거죠. 나중에 여러 실험을 통해서도 밝혀지는 바이지만 카페인은 고도의 명확하고 직선적인 사고를 도와줍니다. "천국의 맛"을 집필한 독일 학자 볼프강 쉬벨부쉬에 따르면 커피는 아랍 세계의 수학 발전에 정말 완벽한 음료였다고 해요. 또한 이렇게 글을 쓴다는 것 역시 직선적 사고가 필요한 행위잖아요. 폴란 아저씨가 커피를 끊자 글이 안 나왔다는 게 이해가 됩니다.


그랬다면 서구 사회는 어땠을까요. 커피는 오랫동안 유럽에 자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그 당시 유럽에서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술을 마셨습니다. 물을 그냥 마신다는 건 질병에 걸린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에게도 아침 식사에 술을 주었대요. 고단한 육체노동의 노고를 잊는데도 술은 제격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다들 아침 점심 저녁에 술을 마셨고, 하루 종일 술에 취해 있는 상태였대요.  


그러다 1650년경, 영국에 카페인이 속속 도착합니다. 커피, 차, 초콜릿이 들어온 거죠. 그 후 유럽 내 계몽과 이성의 시대의 도래를 카페인의 등장과 함께 설명하는 많은 이론들이 있답니다. 심지어는 산업 혁명의 도래를 커피의 대중화와 함께 설명하기도 합니다. 육체노동만으로 살아왔던 시절에는 그냥 해 뜰 때 일어나서 술 마시고, 중간에 술 좀 더 마셔가며 일하고 해가 지면 무조건 일이 끝이 났어요. 그런데 기계가 들어오고 복식 부기를 해야 하는 시절에는 술은 더 이상 어울리는 음료가 아니게 됩니다. 밤 8시쯤에 센 커피 한잔을 마시고 밤에 일을 하는 게 가능해집니다. 교대 근무가 생깁니다. 


프렌치 카페


커피 브레이크요? 자본주의 역사책에서 그 용어의 유래를 찾을 수 있답니다. 제2차 세계 당시 미국 덴버의 넥타이 공장에서 일하던 여성 근로자들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4~5시간 정도밖에 효율이 안 나더래요. 그래서 회의를 소집했고, 근로자들이 10시랑 4시에 차와 커피를 내어 달라고 했대요. 그리고 예상하신 대로 생산성과 품질이 증가하자 커피 브레이크가 제도화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정말 자본주의의 영악함이란. 고용주가 향정신성 물질을 시간 맞추어서 준다고요? 네, 카페인은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향정신성 약물(psychoactive drug) 맞습니다. 미국 성인의 90%, 그리고 유청소년의 50%가 카페인을 매일 섭취한답니다. 


아참, 3달 동안 커피를 끊었더니 딱 하나 좋아진 게 있는데, 정말 10대 때처럼 미친 듯이 잠이 잘 왔다네요. 




카페인에 대해 배우면서 너무 재밌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꿀벌도 카페인을 좋아하고, 카페인을 섭취한 꿀벌이 똑똑해지는 거 아세요?  잘 아시다시피 카페인이 집중력을 높여주고 피로를 줄여주는 것도 맞는데, 이 실험에서 더 중요한 사실은 카페인은 강화제(reinforcer)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음식에 카페인이 들어있다면,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을 때도, 카페인이 들어간 음식이나 음료를 좋아하게 된대요. 예를 들어 다들 몸에 좋다는 건 아는데 솔직히 플레인 요구르트를 좋아서 찾아 먹진 않잖아요. 그런데 플레인 요구르트에 카페인을 집어넣으면 피실험자들이 딱 그걸 선호 했습니다. 이 강화 효과가 흥미로운 게, 나중에 카페인을 제거해도 사람들이나 혹은 꿀벌들도 카페인이 들어있었던  음식을 찾으려고 했대요.


그런데 순수 카페인은 먹으면 진짜 역하게 쓰다고 하네요. 이게 카페인은 맛으로 먹는 게 아니라, 카페인먹으니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에, 별로 맛이 없는 음식이었는데도, 이유도 없이 다시 돌아온다는 거죠. 항상 진한 블랙커피만 마시거든요. 저도 이런 제 취향 이해 못 했는데, 이제야 납득이 가네요. 


또한 정신 노동자들에게 카페인은 정말 유용합니다. 사고의 명확성을 높이고, 집중력을 강화해 주는 것으로 나타났거든요. 또한 맥락을 이해하고 다양한 맥락에 따라 다르게 참여하는 방법을 바꾸는데도 큰 기여를 한답니다. 기억력도 좋아지고, 문제 해결 시간도 줄어듭니다. 운동하시는 분들에게도 카페인은 도움이 됩니다. 어느 정도냐면 카페인은 가장 많이 연구된 경기력 향상 약물이라네요. 운동 전 60에서 90분 전에 섭취한 카페인은 지구력, 집중력, 근력, 속도까지 다 도움이 된 것으로 나타났답니다. 


카페인의 놀라운 효능 중 하나는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거네요. 우선 도파민 수용체의 수를 증가시켜서 행복한 감정이 더 행복해지도록 돕는답니다. 또한 우울증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고 되고 있습니다. 물론 우울증이란 복잡한 병입니다. 사람들의 사회, 경제적 상황도 많이 다를 수 있고요. 그런데 다른 변수들을 고려했던 여러 연구에서 카페인이 우울증과 음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나타났습니다. 리뷰 논문도 찾아 읽어보았는데 카페인이 어떻게 우울증에 작용하는 건지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보수적으로 봐도 카페인의 양과 섭취 시간이 적당했을 때 최소한 우울증 "방지"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https://doi.org/10.1016/j.psychres.2018.11.004.



그리고 중요한 건 카페인은 아데노신의 작용을 억제합니다. 근데 이 아데노신도 참 신기한 분자더라고요. 아데노신은 우리가 잠을 잘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신호전달물질이고, 잠에서 깨면 많이 없어지다가 저녁이 되면 점점 늘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카페인이 아데노신 수용체와 결합을 하면 아데노신의 신호를 차단해 버리고 갑자기 에너지가 더 생긴 것 같습니다. 


하지만, 휴버만 교수님께서 그러시는군요. 이게 에너지가 더 나오는게 아니고요, 우리가 에너지를 그냥 일찍 당겨 쓴 거랍니다. 아데노신은 24시간마다 계속 나올 거고요.  그래서 카페인이 사라지면 빚쟁이들이 몰려오듯 아데노신이 막 몰려오게 된답니다. 결국 무지하게 피곤해진다는 거죠. 우린 카페인으로 그냥 졸린 신호의 타이밍만 변경하는 거예요. 그럼 여기서 이 타이밍을 잘 활용하는 방법이 있대요.


아침에 일어났을 때, 그러니까 아데노신이 바닥을 쳤을 때 바로 커피를 마시지 말고요, 기상 후 최대한 기다렸다가 90분이나 2시간 뒤에 커피를 마시는 거예요. 이렇게 커피 마시는 걸 일부러 지연시키면 오후에 커피를 안 마실 수 있어 좋습니다. 그리고 카페인 섭취는 몸무게 1KG 당 1~3mg 정도가 적당하대요. 어떤 분들은 일어나자마자 커피를 마시는데, 그랬다가는 점심시간 지나고 진짜 피곤해 지죠. 그럼 오후에 커피 한 잔 더 하시겠죠? 그리고 오후 커피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수면의 질을 급격히 떨어트립니다. 


또한 잠을 잘 못 잤을 경우, 아데노신이 몸에 아직도 많이 있을 거래요. 이때 이 아데노신을 최대한 제거하는 방법은, 아침에 의도적으로 코티솔 레벨을 끌어올리는 겁니다. 코티솔 나쁜 거 아니냐고요? 오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니랍니다. 계속 코티솔이 나오는 경우가 문제가 되는 거고, 코티솔은 우리를 집중하게 만들고 면역체계의 효율성을 높혀준다던데요? 


그리고 아침에 햇빛 보고 아니면 인공조명을 충분히 받으면, 바로 그 코티솔이 나온데요. 또한 우리가 아침에 일어날 수 있는 것도 몸 안의 코티솔 상승에 따른 것이고요, 중요한 점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 코티솔 수준을 최대치로 올리는 거래요. 그리고 이런 코티솔이 늦게 나오는 게 바로 우울증의 트레이드 마크 같은 거랍니다. 아침에 눈에 빛 잔뜩 받으면서 일어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 거 같아요. 





생각해 보니, 제가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된 계기도 맛있는 커피 덕분이었습니다. 브런치 작가에 응모하던 날, 전 솔직히 말해서 브런치가 뭔지도 잘 몰랐습니다. 그냥 전 카페에서 재밌는 책을 한 손에 들고 햇살을 받으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읽은 내용을 기억하려면 독자를 상상하면서 공개적으로 글을 써보는 게 좋을 거 같더라고요. 찾아보니 광고도 안 뜨고 브런치가 좋다고 하대요. 정말 그날 햇살과 커피 때문에 제가 달라졌습니다. 덕분에 띄엄띄엄이나마 1년이 넘게 글을 쓰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커피에 대해 조금 공부하고 나니 이해가 갑니다. 누구나 자기만의 커피가 있을 겁니다. 마시는 시간, 좋아하는 맛, 온도, 머그잔, 선호하는 의자까지 모든 것이 합쳐져야 나만의 제대로 된 커피를 경험할 수 있더라고요. 문명을 이끈 음료라는 커피, 독자님들의 삶에 가장 어울리는 방법으로 즐겨 보시기 바라겠습니다. 





  

표지 사진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Traditional_Arabian_Coffee_Tools_from_Jordan.JPG

까페 사진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Le_Saint-Germain_Cafe.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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