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다. 부(富)를 축적하기 위해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권력이나 명예를 추구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행복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열심히 재물을 모으고,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리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인생의 최고선(最高善, the highest good)으로 행복을 들고 있다. 그는 우선 행복을 ‘인간의 고유한 기능이 덕에 따라 탁월하게 발휘되는 영혼의 활동’이라고 정의하고, 인간적 행위의 목적으로 선(善, good)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선 중 최상의 선이 바로 행복이라고 하였다.(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행복은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으로 여러 가지 속성을 지니고 있다. 행복은 우선 주관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행복은 정신적 만족상태를 나타내기 때문에 본인이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는 것이다. 즉, 행복은 인간의 마음가짐의 문제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볼 때 아무리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본인이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면 그 사람은 결코 행복한 사람이 아니다. 반대로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부족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으로 보여도 스스로가 행복하다고 느끼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권력과 부귀를 거머쥔 알렉산더 대왕보다 남루한 차림의 디오게네스가 더 행복할 수도 있는 것이다.
행복은 또한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나 자신이나 가족, 직장 등 우리 가까운 곳에 있으며 거기서부터 찾아야 한다. 괴테는 '경고(Erinnerung)'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행복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어디까지 방황하며 멀리 가려느냐?
보아라, 좋은 것은 여기 가까이 있다.
행복을 잡는 법을 배워두어라.
행복은 언제나 네 곁에 있다.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는데도 사람들은 먼 곳에서 그것을 찾으려 한다. 자신의 능력을 벗어난 물질적 가치나 사회적 지위를 추구하는 사람은 행복할 수 없으며, 그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불행의 씨앗이 싹트게 되는 것이다.
행복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행복에는 대가와 희생이 따른다. 행복은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누구든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다. 데일 카네기(D. Carnegie)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한다.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성실하고 올바르게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행복은 달성되는 것이다.
행복은 만족의 정도에 비례하고 욕망의 크기에 반비례한다.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우선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어느 상황에서, 어느 정도 만족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은 없으나, 자기가 처한 현실을 고려하여 주관적으로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또 다른 방법은 욕망을 줄이는 것이다. 재산이 아무리 많은 부호(富豪)라 하더라도, 계속되는 물질적 욕망을 다스릴 수 없으면 행복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만족감을 늘이든지 욕망을 줄이는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택하여만 한다.
무덥고 축축한 여름이 끝나고 찾아온 가을은 맑고 상쾌하다. 하늘은 더없이 푸르고 공기는 산뜻하다. 빨랫줄에 앉아 있는 빨간 고추잠자리가 깊어가는 가을을 알리고 있다.
산기슭에 위치한 시골집에는 한낮인데도 적막감이 감돌고 있다. 가을바람에 살랑거리는 대나무 잎새 소리만 간간이 들려올 뿐이다. 심신을 안정시키는 이 화음들은 자연이 빚어내는 한 줄기 오케스트라이다.
저 멀리 산봉우리에는 하얀 구름조각이 걸려 있다. 솜털처럼 가볍고 보송보송한 이 구름은, 사바세계의 중생들로 하여금 부질없는 집착에서 벗어나 마음을 비우라고 훈시하는 듯하다.
김진섭은이 지상에서 가장 장엄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고향일 것이오, 사람 마음속에서 소멸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 또한 고향일 것이라고 하였다. 영원한 안식처인 고향에서 마음을 비우고,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추구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