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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송 Nov 24. 2023

마음을 비워야 큰 결실을 얻을 수 있다

    2023년의 달력도 마지막 잎새처럼 이젠 한 장 달랑 남았다. 때맞춰 길가의 노란 은행나무잎이 꿈의 껍질이 되어 아스팔트 위로 이리저리 흩날린다. 이런 풍경을 보면 조건반사적으로 구르몽(Gourmont)의 ‘낙엽’이라는 시가 소환되게 된다.  

   농촌에서는 12월부터 농한기에 접어든다. 벼나 밭작물을 재배하는 농가에게는 내년 봄까지 달콤한 휴식시간이 주어진다. 반면, 과수원을 경작하는 농민들은 한겨울에도 할 일이 많다. 과일나무 가지치기나 거름 넣기 등은 이들이 겨울철에 해야 하는 농사일이다.

   시골집 텃밭에는 정원수가 많이 자라고 있다. 소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지만 주목이나 구상나무, 황금편백, 금목서, 은목서 등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정원수들은 각자의 특징을 가지고 있어 계절마다 이들의 자태를 감상하고 꽃향기에 취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세상에 좋은 것은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정원수들을 감상하고 즐기려면 거기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유실수 경작 시의 시비(施肥)나 병충해 방제 같은 고난도, 고비용의 작업은 불필요하지만, 가지치기나 물 주기 등은 정원수 관리를 위한 필수작업이다.

   겨울이 가기 전에 시골집에서 해야 할 주된 과제가 정원수의 가지치기이다. 전지(剪枝) 혹은 전정(剪定)이라고 하는 이 작업은 나무가 원하는 형태로 자라도록 불필요한 가지를 잘라주는 것을 말한다. 집 주위의 정원수들은 모두 전지를 필요로 하는 나무들이다.

   오늘은 우선 소나무 전지 작업을 하기로 하였다. 모자와 장갑, 장화로 완전무장을 한 다음  창고에 있는 사다리를 소나무 아래에 세웠다. 소나무의 윗부분을 전지하기 위해 사다리 꼭대기에 올라서니 지면이 아득하게 보이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으랴마는 이 전지도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소나무처럼 잎이 뾰족한 침엽수를 전지할 때에는 눈이나 피부가 잎에 찔리기도 한다. 전지 작업 후 목욕탕에 들어가면 찔린 부위가 바늘로 쑤시는 듯 따가워지는 고통을 맛본다. 작업자의 키보다 높은 가지를 전지하기 위해 위로 올려다보고 작업을 할 때에는 나뭇잎이나 껍질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가 눈 속으로 들어가서 눈동자를 움직일 때마다 꺼칠함이나 통증을 느낀다. 다음 날 아침에는 이들 이물질이 눈곱에 새까맣게 섞여 나오기도 한다.

   전지를 할 때에는 햇빛의 방향이나 나무가 장차 자라나면서 가져야 할 형태 등을 고려하여 남겨둘 가지는 남겨두고 나머지 가지들은 잘라내어야 한다. 다소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런 점에서 전지 작업은 과학과 예술의 결합체라고 할 수 있다.

   전지는 나무의 종류에 따라 그 작업내용이 달라진다. 정원수의 경우 모양을 예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목이나 구상나무는 원추형 꼴이나 탑신이 여러 개인 석탑 형태로 가꾸는 반면, 소나무는 밑동이 굵고 가지 수나 잎이 적은 분재형 형태를 선호한다.

   과일나무의 경우,  나뭇가지의 채광이나 통풍을 원활하게 하여 열매와 나무가 크고 튼튼하게 자라도록 전지해야 한다. 북쪽으로 향하거나 촘촘한 부위의 가지를 우선적으로 잘라내고 길게 자란 가지는 일정한 길이가 되도록 절단해야 한다.

   전지 작업에서 유의하여야 할 사항은 ‘마음을 비워야 큰 결실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을 명심하는 것이다. 불필요한 가지는 과감하게 잘라내어야 하는데, 작업자는 그동안 키운 나뭇가지가 아까워서 함부로 자르지 못한다. 그 결과, 남은 가지의 숫자가 많아지고 가늘게 되어 나무가 볼품이 없어진다. 특히 유실수의 경우, 가지 하나를 잘라내면 과일 대여섯 개는 포기해야 하기에 농부는 나뭇가지를 붙잡고 고민하다 결국 자르지 못한다. 이렇게 되면 과일의 크기가 작아지고 상품성이 떨어져 경제성, 효율성이 낮아진다. 전지작업은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한다는 말이 이래서 생겨난 것이다.

   눈앞의 조그만 것을 추구하다 나중에 큰 것을 놓치는 것이 중생이거늘, 문제는 이러한 인생의 진리를 알고도 실천하지 못하는 데 있다. 채근담(菜根譚)에 의하면, 사나운 짐승은 길들이기 쉬워도 사람의 마음은 다스리기 어렵고, 깊은 골짜기는 채우기 쉬워도 사람의 마음은 채우기 어렵다고 한다. 이러한 옛 성현들의 가르침에 따라, 금년에는 소나무의 가지를 대부분 잘라내어 분재 형태로 만들었다.



   전지 작업을 끝낸 소나무는 깔끔하고 단정하다. 이와 더불어 내 마음속에 어지럽게 얽혀 있는 미망(迷妄)의 가지들도 잘라낸 것 같아 속이 후련하다. 내년 봄이 되면 자른 나뭇가지에서 또다시 잔가지가 돋아날 것이다. 내 마음 역시 시간이 지나면 잔가지로 채워질지 모르지만, 그때마다 전지 작업이 가르쳐 주는 교훈을 가슴 깊이 새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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