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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송 Dec 08. 2023

이천 원짜리 점심에서 얻는 행복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요소가 의식주(衣食住)이다. 이 중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있으랴마는, 음식(食)은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영양소를 제공하고 신체활동을 위한 에너지를 공급한다. 인간의 먹는 행위와 관련하여 ‘살기 위해 먹느냐, 먹기 위해 사느냐’라는 상반되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일단 사람은 살기 위해서 먹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 명제(命題)에 대한 역(逆)도 성립한다고 본다.

   의식주 중 옷(衣)은 그 중요성이 과거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다고 생각된다. 체온유지와 같은 생존 수단으로써의 옷은 오늘날 아파트 의류수거함에서도 무료로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집(住)의 경우, 일단 마련되고 나면 추가적인 노력 없이도 기본생활은 유지할 수 있다. 물론 더 크고 화려한 집을 원하면 거기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 한다. 반면 식(食)은 인간의 생명이 지속되는 한, 계속해서 제공되어야 할 무기한의 서비스 행위이다. 여기에 식생활의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3.5년이라고 한다. 이 수명대로 산다고 가정할 경우, 한 사람이 평생 91,432(83.5 ×365 ×3) 끼니의 식사를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실로 어마무시한 숫자이다.

   예로부터 조상들은 삼시 세끼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느냐며 한탄하곤 했다. 가난과 배고픔으로 직조(織造)된 삶 속에서, 하루하루의 땟거리 장만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불과 5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쌀독을 박박 긁어대는 소리가 들리면 가슴이 철렁한다고 하시던 부모님들의 하소연을 들을 수 있었다.

   오늘날의 식생활은 예전에 비해 많이 개선되었다. 사회안전망 구축에 따른 복지 수준의 향상으로 인해 밥 굶는 사람은 과거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었다. 오히려 음식물의 과다섭취로 인한 부작용을 걱정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건강을 위해 소식하거나 끼니를 거르는 사람들도 많다. 이와 같은 식생활의 변화에도 변증법적(辨證法的) 논리가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식생활이 많이 편리해졌다고 하지만, 시골에서 홀로 생활하는 독거남에게는 결코 만만한 일과는 아니다. 결혼 이후 도시에서 줄곧 맞벌이를 해 온 우리 부부에게, 고향의 집과 논밭을 관리하는 일은 오로지 나의 몫이었다. 시골집 안팎의 청소나 텃밭 작물 재배도 만만치 않은 일과인데 끼니 챙기는 일까지 추가되니 시골에서의 생활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밥이야 전기밥솥이 해결해 준다 하더라도 반찬을 준비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나홀로 식단을 꾸려보니 가족의 생계를 위해 매일 메뉴를 고민해야 하는 가정주부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나의 마음을 알아주기라도 하듯, 읍내에 노인들을 위한 복지관이 문을 열었다. 그곳에서는 나이 든 사람들을 위한 취미활동과 여가프로그램이 개설되어 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나의 마음을 끄는 것은 싼 값에 점심을 제공한다는 사실이다.   


   집 앞 주목나무의 가지치기 작업을 끝내고 나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다. 작업복 차림으로 서둘러 복지관으로 향했다. 깔끔하게 단장된 복지관 입구에는 오늘도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하려는 노인들이 줄을 잇는다. 자신의 몸뚱이를 건사하는 것조차도 어려워 휠체어나 지팡이에 의지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오늘도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받기 위해 이곳으로 몰려든다.

  이천 원을 내고 식권을 구매한 다음, 식당 입구로 향하니 벌써 긴 줄이 만들어졌다. 식당 안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급식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배식구 입구에는 오늘의 메뉴와 음식의 염도(鹽度)를 표시한 게시판이 자리 잡고 있다. 오늘 점심으로는 흰밥에 미역국, 갈치조림, 두부부침, 김치와 가지나물이 나왔다. 단돈 이천 원짜리 식사치고는 호화만찬이다. 이와 같은 가성비 높은 식사를 제공할 수 있는 비결은 자원봉사자들의 희생 덕택이라고 생각된다.

  순서대로 배식을 받은 사람들은 각자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한다. 그들이 먹고 있는 것은 단순히 탄수화물이나 단백질 같은 영양소뿐만이 아니다. 점심메뉴에 듬뿍 첨가된 자원봉사자들의 박애(博愛) 정신도 함께 섭취하고 있는 것이다.  

              


  식당 입구에 길게 늘어선 대기행렬에 신경이 쓰여 후다닥 식사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식사를 끝낸 사람들의 얼굴에는 오늘도 무난히 한 끼를 해결했다는 행복감과 안도감이 교차되어 피어오른다. 급등하는 생활물가지수로 인해 싸고 푸짐한 점심식사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모쪼록 노인들을 위한 이곳의 급식이 지속되기를 바라면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복지관의 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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