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행복과 행운

by 여송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겠으나 행복을 궁극적(窮極的)인 목표라는 데에는 큰 이견(異見)이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기도 하고, 권력이나 명예를 추구하기도 한다.


이러한 행복은 다분히 주관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행복해 보일지라도 스스로가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불행한 것이다. 반대로 객관적으로 볼 때 행복할 수 있는 요건을 별로 갖추지 못하면서도 스스로가 행복하다고 느낀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권력과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다 하더라도 과도한 욕심으로 현재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고, 평생을 물통 속에서 스스로 만족하며 살면서 알렉산드로스 제왕의 호의를 뿌리치고 지금 당장 나에게는 한 줄기 햇볕만 필요하니 한 걸음 비껴서라고 외친 디오게네스의 삶은 그에게는 행복한 삶인 것이다. 결국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처럼 욕망을 줄이든지 소유물을 늘이든지 둘 중 하나의 길을 택하여만 한다.

행복은 또한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주위의 가까운 곳에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행복을 가까운 데서 찾지 않고 먼 곳에서 찾으려 한다. 그 결과 사람들은 행복을 찾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불행하게 된다. 김동인의 단편소설 "무지개"에서 무지개를 잡으러 떠난 아이가 무지개는 잡지 못하고 백발노인이 되어 돌아왔다는 이야기나, 벨기에의 작가 메테를링크의 "파랑새"에서 두 어린 남매가 파랑새를 찾기 위해 헤매었으나 찾지 못하고 실망하여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들이 그토록 찾던 파랑새는 자기 집 처마 밑에서 즐겁게 노래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는 이야기는 모두 허황된 행복을 찾아 먼 길을 떠나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돌아온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무지개나 파랑새는 행복을 상징하는 단어이며, 이 작품들은 행복은 우리들 바로 곁에 있지만 우리의 욕심 때문에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먼 곳에서 찾으려는 현대인들을 풍자하고 있다.


행복은 개개인 스스로가 창조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실한 삶과 부단한 노력, 인내와 지혜가 필요하다. 아무런 희생 없이 행복을 바란다면 그것은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것과 다름없다. "사람은 자기가 결심한 만큼 행복해질 수 있다"라고 한 링컨의 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행복과 불행은 또한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마주치게 되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세상에는 행복만 있는 인생도 없고 불행만 있는 인생도 없다. 이젠 고인이 된 안병욱 교수는 우리는 행복할 때에는 불행이 다가올 때를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며, 불행할 때에는 행복할 때를 기다리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행복이 개인의 노력과 인내로 이루어진 산물인 반면, 행운은 아무런 대가 없이 저절로 내게 그야말로 운이 굴러들어 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행운은 우연의 산물이요, 요행의 결과다. 행운은 우연히 찾아오는 것이기 때문에 자주 일어나지 않으며, 따라서 그것만 기대하고 인생을 살아가서는 안된다.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폴레옹이 전쟁터에서 네 잎 클로버를 발견하고 신기해하면서 상체를 숙이는 순간, 총알이 그의 머리 위로 지나가 목숨을 건졌다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네 잎 클로버는 돌연변이에 의해 생겨난 것으로, 그러한 환경이 조성된 곳에서만 계속 발견된다. 네 잎 클로버가 행운의 상징이라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반면, 세 잎 클로버가 행복의 상징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행운의 상징인 네 잎 클로버는 홀로 자랄 수 없으며, 반드시 세 잎 클로버와 함께 군락을 이루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드물다. 이는 행복을 위해 열심히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만 행운이 따라온다는 사실을 자연의 섭리를 통해 알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네 잎 클로버를 찾기 위해 주위에 지천으로 널린 세 잎 클로버를 밟으면서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행운을 바라듯이 행복을 바라서는 안된다. 이 시점에서도 자신이 멀리 있는 행운을 찾기 위해 가까운 곳에 있는 행복을 밟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집에서 다소 떨어진 멧밭으로 향하는, 폐선된 철로변에 네 잎 클로버 군락지가 있다. 이곳에서 네 잎 클로버를 자주 따서 주위의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곤 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네 잎 클로버가 자라나고 있다. 비록 잎은 벌레가 먹고 폭염의 날씨에 다소 시들었지만, 4장의 잎사귀는 확실히 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몇 장을 따서 책갈피에 넣어 두었겠지만, 올해는 그냥 바라보기만 하고 그대로 두기로 했다. 대신 주위에 널려있는 세 잎 클로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았다. 클로버 군락지는 행복 속에서만 행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고 있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리운 시냇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