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이 생기자, 버리는 건 생각보다 쉬웠다
비전보드에 ‘은퇴 후 료칸 다니며 소설 쓰기’가 있었다.
사진을 볼 때마다 언젠가의 미래를 꿈꾸며 설렜다.
그 설렘을 ‘지금은 안 되는 일’로 미뤄둔 채로.
평상시처럼 비전보드를 보다가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할 수 있겠는 걸.
왜 굳이 노년까지 기다린다는 생각을 했을까.
그렇게 지금 쓰고 있던 브런치 글의 방식만 바꿔,
정리를 통해 설레는 인생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써보기로 했다.
‘나다움’이라는 뜻을 담아 주인공의 이름을
‘아름이’라고 붙였다.
아름이가 나답게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막상 쓰기 시작하자 이야기는
생각만큼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허구로 만들려 하면 어김없이 내가 끼어들었다.
이건 내 이야기인가, 아름이의 이야기인가.
결국 아름이의 이름을 빌린 내 이야기로,
한 편 한 편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성찰하며
네 달을 보냈고
20편의 이야기가 쌓였다.
그런데 그렇게 완성된
‘아름이’라는 소설 에세이를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대신 ‘설렘의 감각’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실제로 설렘을 느꼈던 에피소드들을
떠올리며 다시 쓰기 시작했다.
쓰는 동안 판단하려는 마음이 줄어들었고
감각이 깨어나면서 얼른 다음 글을 쓰고 싶어졌다.
한 달 반 동안 15편을 완성한 날,
문득 아름이 브런치북을 지워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역할을 다 한 것 같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이제 이 글은 내게 필요 없을 것 같아.
앞으로 이것보다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렇게 브런치북 작품의 ‘삭제’ 버튼을 눌렀다.
딸칵.
방 안에 울려 퍼지는 마우스 소리와 달리
마음은 고요했다.
버릴 결심은, 둔감하게 글을 쓰고 있던 내가
다시 이야기를 쓰는 데에
설렘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버려야 하는 이유는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버리는 결단력이 대단한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설레는 것이 분명해지자
버리는 일은 힘들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정리 코칭을 하며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저 남자친구랑 헤어졌어요.
물건 정리 시작하기 전에
지금 결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잖아요.
정말 자연스럽게 이별하게 됐어요. 신기해요.”
모든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