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보다 동사
매년 연말, 비전보드를 펼쳐 놓고 한 해를 돌아볼 때면
이상하게도 꿈은 더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소설가, TED 강연, 공간 사업가.
‘은퇴 후,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미래가 아니라 지금, 바로 써보았을 때
이유를 알게 됐다.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상상으로 뻗어나가기보다
자꾸만 내 이야기로 흘러갔다.
처음엔 창의력이 부족한가 싶었다.
소설가의 꿈은 접어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다 쓰고 나서야 알았다.
문제는 상상력이 아니라 시기였다.
그때의 나는 허구를 만들어내고 싶은 게 아니라
내 안에 쌓여 있던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깨달았다.
소설이라는 장르와 상관없이,
쓰는 행위 자체가 행복이었다.
해보지 않았더라면
노년까지 소설가라는 꿈만 붙잡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깨달음 이후, 다른 꿈들도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아득하기 느껴졌는지 알았다.
TED 강연은
첫 직장의 동경하던 대표의 무대가
멋져 보였기 때문에 꿈을 품었다.
그럼 나는 왜 무대에 서고 싶은 걸까?
내 경험을 나누어 누군가의 마음에 닿고 싶다.
그런데 그건 강의나 글에서,
사적인 만남에서도 늘 하고 있었다.
마음을 나누고, 내 경험을 건네며
“말만 들어도 설레요”라는 반응을 받을 때의 기쁨.
그 순간은
아직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짧디 짧은 행복이었다.
떠오른 말이 있다.
국가대표 선수들은 금메달을 딴 순간보다,
훈련 속에서 조금씩 성장하는 순간의 행복이
더 오래 지속된다고 했다.
내가 외부 성취를 쫓느라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을 놓치고 있던 건 아닐까.
무엇이 되고 싶은가 보다
어떤 상태로 살고 싶은지가
내게 필요한 질문이었다.
거창한 무대에서 말하는 내가 아니라,
사람과 눈을 맞추며 이야기하는 자리.
소설가라는 이름이 아니라,
책상에 앉아 몰입해 있는 시간.
물리적 공간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내면의 공간에 무뎌진 감각을 되살리는 일.
명사는 나를 설명해 주는 대신
때로는 날 가두기도 한다.
삶은 언제나 동사로 움직인다.
말하고, 쓰고, 느끼는 일이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명사가 아닌 동사로 생각하니,
이미 내 꿈은
매일 이루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