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여전히 은지를 향해 욕을 퍼붓는다. 목욕을 도와주는 부드러운 은지의 손길에 고마움 따위 느끼실 수 없는 건지 듣기 민망한 욕이 다양하게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의 온도는 적당한지, 비누가 너무 많은 건 아닌지, 바닥이 미끄러워 넘어질까 봐 엄마가 딛는 모든 발길을 돕는 은지의 손길은 여전히 섬세하다.
"언젠가 내가 니년을 죽이고 이 세상 뜰 거야, 썩을 년 같으니라고."
무엇이 엄마를 이토록 거칠게 만들었을까. 아버지 부재의 대한 죗값은 아버지가 받아야 하는 거 아닐까. 그 후회와 미련과 사죄의 고통은 당사자인 아버지의 몫인 것 같은데, 여전히 은지가 쥐어 메고 있다. 아마도 은지가 머리를 짧게 자른 후부터 엄마의 수위는 더욱 높아진 것 같다. 은지를 보면 아버지가 생각이 나셔서 그러시는 걸까 싶다가도, 원래 머리 길이와 상관없이 모진 말을 뱉어내던 과거가 생각이 난다. 외모는 중요하지 않았다. 고운 얼굴에 이쁘게 박힌 눈망울에서부터 아버지를 닮았다며 욕을 해대던 엄마다. 엄마 자신을 바라보는 은지의 눈빛마저 거절하듯 눈 맞춤도 안 하려 했었고, 마주치게 되면 지 아비 닮았다며 욕을 해댔었다.
"엄마, 나 곧 죽어. 그러니까 내가 살아있는 것에 너무 화내지 마."
엄마의 기분에 맞춰 대답을 던진다. 그동안 아무 말 없이 움직였던 은지의 몸은 소리로 상대를 대하기 시작한다. 차라리 내뱉은 말이 사실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엄마를 조금 더 측은하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살아있는 것 자체로 죄가 된다면, 숨 쉬는 것만으로도 누군가를 분노케 할 수 있는 일이 되는 거라면 애초에 은지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해왔다. 은지의 인생 티켓은 잘못 쥐어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삶은 생각만큼 쉬이 져버릴 수 없었다. 살아지니 살아온 것인데도 누군가는 은지를 보며 한숨을 쉬고, 누군가는 그런 은지에게 죽으라 한다. 은지의 존재는 애초에 부정당했다.
"니가 죽어?"
"..."
"언제?"
"... 곧."
"그럼, 나도 죽어?"
"..."
"그럼, 넌 죽지 말아야지."
"뭐?"
"니가 왜 죽어, 잘 살아야지."
엄마와 눈이 마주친 은지에게서 눈물이 고인다. 지금 들은 엄마의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가 중요하지 않다. 살아있어 달라는 말에 은지는 왠지 모를 울컥함이 뜨겁게 올라온다. 잘 살아달라는 말에 마음이 무너진다. 그동안 간신히 버텨왔던 은지의 존재의 무게를 인정받은 것 같다. 은지는 부축하느라 잡고 있던 엄마의 팔의 감촉을 느낀다. 힘이 없어 이미 주저앉은 인생처럼 가냘프게 말라있다. 짐승 가죽처럼 두텁게 말라버린 피부와 죽음이란 말에 흔들리는 엄마의 날카로운 시선도 모두 연약한 몸뚱이였을 뿐이다. 마법은 여러모로 단단한 은지를 허물고 있다.
"... 잘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