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이 지났다. 머리카락은 제법 자라 귀 밑까지 닿아있다. 자연스러움이 깃든 헝클어짐은 은지의 아름다운 얼굴에 잘 어울린다. 신경 쓰지 않아도 풍기는 멋스러움이다. 온몸을 감싸주는 베이지색 스웨터 원피스는 은지의 여성스러움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한결 부드러워진 표정과 생기가 도는 얼굴은 과거의 은지를 상상할 수 없게 바꾸어 놓았다. 아무래도 그럴 것이 지금 말랑말랑한 음악이 감도는 카페에 그 남자와 함께 있다.
"카푸치노 어떠세요? 이 집은 카푸치노가 제일 맛있거든요."
"전 아메리카노요."
"아, 그러실래요?"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앉아있던 은지도 같이 일어선다.
"각자 계산하죠."
"아뇨, 제가 사겠습니다. 바쁜 은지 씨를 제가 불러낸 거잖아요."
"사양할게요. 각자 해요."
은지는 남자에게 틈을 주지 않는다. 어떤 호의도 받지 않겠다는 멘트가 건조하게 나간다. 이 남자에게서 느껴졌던 온기 덕분에 마법이 일어났던 과거가 있다. 경직된 몸동작에 표정을 관리하며 대화의 긴장은 계속된다. 뜨거운 커피를 앞에 두고 곡선으로 오르는 연기처럼 유연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말하고 있지 않은 시간마저 달콤하다. 이 남자에게서는 따뜻한 냄새가 난다. 마법은 거기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은지는 확신했다.
"제 얼굴, 기억 못 하시겠죠?"
"..."
"전 은지 씨가 다니는 대학, 경영학과 박사과정에 있어요."
"...!"
"학부 때부터 휴학과 복학을 수도 없이 하는 바람에 자주 들락거렸는데..."
"죄송해요."
"아뇨, 죄송하긴요."
다소 긴 정적이 흐른다. 은지의 긴장이 풀린다. 낯선 남자와 함께 한 자리가 어색하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다. 두 남녀는 서로 편안한 자세로 마주 보고 앉았다. 정적을 깨기 위해 애를 쓰지 않는 둘이다. 어쩌면 둘만이 통했을 안도감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은지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른다. 핑크빛 립스틱이 얇고 길게 번진다.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창밖을 바라본다. 들숨과 날숨의 소리마저 간지럽게 느껴질 만큼 모든 감각이 살아있다. 은지는 남자의 시선이 닿는 것을 느끼자 고개를 돌려 남자의 눈을 바라본다. 결코 가볍지 않은 깊은 눈이다. 미세한 흔들림도 용납되지 않을 무게가 남자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다. 강직함이라고 표현될만한 에너지다. 은지는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