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 없는 사랑 #12

by Cruel Ella

휴대폰 벨이 울린다. 잊고 있던 전 남자 친구다. 은지는 싸늘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전화를 거절해버린다. 그러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예전과는 다르다. 이제는 거절해도 괜찮다. 앞에 건너 앉은 이 남자는 여전히 따스하게 자리해있다. 존재만으로도 안심이 된다는 기이한 경험 중이다. 안심이 되니 못할 짓이 없게 된다.


카페의 문이 열리더니 급한 발걸음 소리가 투박하게 들린다. 은지는 직감한다.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준비하듯 한 숨을 크게 내쉰다.


"남자랑 놀고 있었냐? 씨발, 팔자 좋다 너!"


반갑지 않은 손님 등장에도 은지는 당황하지 않는다. 오히려 남자 쪽에서 적잖게 당황한 듯 보인다. 부드럽고 온화했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무너졌다. 편안한 숨을 쉬며 말랑말랑한 음악을 즐기는 중이었다. 미지근해져 버린 커피마저 달콤했던 시간이 전 남자 친구의 등장으로 일순간에 깨져버렸다.


"끝난 사이에 더 볼일 있어?"


식어버린 커피에서 쓴 맛이 올라온다. 은지는 여전히 감정 없는 말을 내뱉는다. 여기에서 전 남자 친구에게 멱살이라도 잡히면 같이 때려줄 심산이다. 부끄러울 것도 없다. 어차피 숨겨질 수 없는 과거일 테고, 은지란 여자의 실체일 수도 있다. 남자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동안 그랬던 것처럼 마지막엔 버려질 수도 있으니까. 늘 그랬었으니까.


"전화도 안 받더니 간댕이가 부었구나! 보자 보자 하니까, 이 개 같은 년이!"


전 남자 친구의 손놀림보다 이 남자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전 남자 친구의 손목을 잡아 꺾은 남자는 최대한의 예의를 지키려고 애를 쓰고 있으나 이미 눈빛은 한기가 가득하다. 은지는 앉은 채로 남자를 올려다본다. 이 남자는 전 남자 친구를 응시하며 은지에게 묻는다.


"은지 씨, 어떻게 할까요?"


마법이 시작된다. 남자가 은지에게 묻는다. '어떻게 할까요?'라고, 은지의 의사를 물어온다. 은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전 남자 친구를 응시한다. 전 남자 친구는 힘을 쓸 수 없어 몸을 부들부들 떤다. 버텨보려 하지만 이미 남자에게 잡힌 손목은 으스러질 듯한 통증에 얼굴까지 일그러졌다. 이 남자는 공주를 구하려고 불구덩이에 뛰어든 왕자처럼 우둑커니 서서 악당을 제압하고 있다. 카페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동화 같은 장면이 된다. 그 안에 은지가 존재한다. 은지는 드디어 준비된 대답을 할 수 있게 됐다.


"치워주세요."


그리고


"감사합니다."


결국 전 남자 친구는 남자에게 끌려 카페 밖으로 내쫓겼다. 이 남자는 등치로 보나 나이로 보나 이길 수 없는 상대다. 그리고 지금은 은지를 지켜주고 싶은 열정이 남자 쪽에 더 많다. 타당한 이유가 담긴 힘 안에는 이길 수밖에 없는 희열이 담겨있다. 앞으로 전 남자 친구는 은지에게 연락하지 못할 것이다. 모든 것이 짧은 시간에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전 남자 친구의 흔적은 지워졌고, 이 남자의 자리는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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