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진은 결국 오늘도 잠을 이루지 못한다. 방금 아저씨의 죽음을 예감하게 하는 메시지를 받았다. 음성 메시지 가 담고 있는 아저씨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침착했다. 그리고 모두 본인의 잘못이라며 이 사건의 처음과 끝을 마무리하신다. 죽음을 앞둔 자의 여유란 짐작으로도 알 수 없는 심정이라.
"모두 내 잘못이다, 영진아. 니 아버지도 내가 죽인 셈이야. 그 여자에게서 받은 1억이란 돈이 절실하게 필요했어. 니 아버지가 말렸어도 그땐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단다. 내가 돈에 눈이 멀었지~ 니 아버지가 내 눈앞에서 쓰러졌는데도 난 도망쳐버렸으니까. 내가 그때 응급차라도 불렀으면 그 사람, 그렇게 가진 않았을 텐데..."
녹음 파일은 약 4분 47초. 아저씨는 영진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긴다. 일 년 동안 잠잠히 지냈던 아저씨는 마지막 순간에 간직하셨던 비밀을 영진에게 폭로하며 그 증거도 살뜰히 챙기신다. 모두가 잠든 것 같은 조용한 새벽, 한산하기만 한 도로에는 가로등 불빛만 외로이 빛난다. 아저씨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귀에 꽂힌 이유는 새벽이기 때문이다. 아저씨는 굳이 새벽을 택하셨다. 모두가 잠들어버린 적막한 시간, 그리고 영진이 느끼게 될 또 한 번의 상실. 그 상실을 안아버린 새벽은 매정할 정도로 차갑고 고요하다.
"영진 씨?"
"..."
"...이었단다. 그래서 내가 그 돈을 갖고 있을 수가 없더구나. 너에게 전달한 8천만 원은 아버지의 보험금이라 생각해라. 그리고 니 아버지는 널 무척 사랑하셨단다. 그건 알지?"
영진은 어둑한 거실에 우뚝 서 있다. 검푸르고 커다란 덩어리 같은. 세상에 버려진 아이라고 하기엔 너무 커버린 생명체. 모두 이런 영진을 떠난다. 곁에 있어주지도 않던 사람들, 그저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 힘이 되었던 사람들이 영진 곁을 떠난다. 남아있는 영진의 인생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무겁다.
유리는 그런 영진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본다. 아무래도 일이 잘못된 듯하다. 이 새벽에, 그리고 꽤나 긴 시간 동안 영진은 미동도 없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바닥으로 스멀스멀 기어 든다. 천장에 들러붙어 빛이 났던 노란 모래는 방울방울 흩어져 비눗방울처럼 터져 버린다. 그 여파로 스산한 기운이 몰려와 유리의 몸을 감싼다. 유리는 몰려오는 불안감에 영진 곁으로 다가간다. 영진은 유리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자 한 발작 뒤로 물러나더니 들고 있던 핸드폰을 천천히 내려놓는다. 영진은 눈앞의 유리를 본다. 가까이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영진의 말을 기다리는 유리의 눈빛에 이 여자를 사랑하게 된 자신을 스스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유가... 사라졌다.
아니, 더욱 절실해졌다.
바닷 마을은 여전히 조용하다. 이른 아침, 새벽 조업을 마친 배들이 몰려와 물건을 나르고, 아낙들은 부두에 앉아 그물을 손질한다.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가게들은 이미 한 김을 내뿜으며 손님을 맞고, 아침 햇살에 커피를 들고 산책을 나온 이들도 있다. 사건 사고 없이 한산한 분위기 속에 다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표정이다. 숨기고 있는 것들이 많아도 티 내지 않는다. 작은 마을에서의 소문은 무서운 편이다. 안주삼아 가볍게 떠들어대도 사실은 보이지 않는 커다란 비밀이 있다는 것쯤은 굳이 확인해보려 하지 않아도 아는 것들이다. 그들은 그저 입 다물어주고, 모른 척해주고, 안쓰러워할 뿐이다. 그들이 품어주는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모였을 때의 재미난 소재거리가 될 뿐이다.
"그 집 딸, 요새 안 보인 다지?"
"한참 미쳐 있더니 잘못된 거 아녀?"
"설마, 그날 창문 깨지는 소리 들었자?"
"뭔 사달이 나긴 난 거구먼."
"그 집 여자, 분위기가 요상하긴 혀~"
"에헷! 괜한 소리 떠들지 말어!"
"괜한 소리가 아니구먼~ 그 여자 소문이 좋지가 않어~"
"남편 퇴임하고 집 지어 내려왔다는데~ 그걸 어떻게 믿어?"
"그렇다면 그런 것이지 뭘 따지고 그랴~"
"딸이 미칠 정도면 그 여자도 문제가 있는 거 아녀?"
"정신병원 같은 데다 딸을 입원시켰나?"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암~"
"요새, 그 청년도 안보이던데~?"
"그 집 할매 말로는 짐은 그대로랴."
"아, 그럼 서울로 잠깐 올라간 건갑네."
"걘 뭐하는 애랴?"
"몰러요, 기타 메고 다니는 걸 보니 별 볼일 없는 애 같더구먼."
"생긴 건 멀쩡하게 잘 생겨가지고."
"차도 있다 아녀, 그럼 돈 많은 백수여."
"깔깔깔... 고거 하나 부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