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는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싣고 창 밖을 본다. 갈 곳이 있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 행복한 일임을 알았다. 결코 혼자가 아닌 사람은 잠시 혼자여도 괜찮은 사람이다. 그건 외로움과는 다른 차원이다. 분명 존재하는 것이니 그 존재를 스스로 짓밟을 필요도 없다. 내가 누구에게서 비롯된 존재인지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살아있는 것 자체를 부정하거나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 외로움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감정일 뿐이니까.
터미널에서 내린 유리는 다시 택시를 잡는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아는 발걸음에는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이 가득 차 보인다. 두리번거리며 헤매지 않고 나의 길을 정확히 찾아갈 수 있는 그 자신감과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옳은 길인지 확신을 안고 살아가는 것은 마음에 묵직한 무게를 안고 안정적으로 숨 쉴 수 있는 상태에서나 가능한 일인 것 같다. 들고 있던 가방과 핸드폰을 무릎에 올리고 우아하게 앉은 유리에게서 발레로 다져진 자세가 반듯하게 베어 나온다. 고개를 돌린 시선은 창 밖에 있는 세상을 향해 있지만 마음은 이미 그곳에 도착해 있다. 얼마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재촉하듯 전화하지 않아도 될 사이. 차도로 내달리는 거리와 마음이 닿을 수 있는 거리는 확연히 다르다.
도착해서 내린 곳은 익숙한 그곳. 3층밖에 되지 않은 건물이지만 유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짙은 회색빛 대문에 작은 꽃을 매달아 놓은 익숙한 집. 이미 외우고 있던 비밀번호 6자리를 누른 후 들어가 구두를 벗어던지고 고개를 들어 거실로 향해 뛴다. 그리고 우렁차에 외쳐본다.
"다녀왔습니다!"
2층에서 내려오던 영진과 마주친다. 유리는 영진의 위치를 확인하고는 총총거리며 미끄러운 거실을 내달린다. 그리고 영진은 그런 유리를 품에 덥석 안는다. 하루하루 전달해야 하는 사랑의 양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그런 행위를 충실히 해내고 있는 책임감 넘치는 남자인 것처럼 유리를 안는다.
"어서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