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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주신쥬디 Mar 15. 2024

멕시코, 캐나다를 지나 알래스카로

20일간 북미 반바퀴를 돌았다!

2015/5/11

오늘의 정박지는 멕시코, Los Cabos San Lucas!

Parasailing을 했다!!!!! 오늘 아침부터 미팅 때문에 땅으로 나갈 시간 없을 줄 알았는데 틈나는 시간에 나가서 잽싸게 하늘을 날았다! 낙하산 타고 푸른 하늘을 날면서 조용히 펼쳐진 드넓은 바다 풍경이 정말 멋졌다. 핸드폰 목걸이가 있었으면 사진도 많이 찍었을 텐데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기가 너무너무 불안해서 사진 몇 장 찍고 가방에 쏙 넣어버렸다. 지금도 생각하면 아찔하다 으으~ 최대 600 feet 위에서 나는 거라는데 그럼 180m 정도인가? 최고 높을 때 진짜 진짜 지이이인짜 높았다.. 보자기 가지고 하늘을 날 생각을 하다니 인간은 참 용감하고 똑똑하다.

정박해 있는 크루즈 세 척이 레고처럼 귀여워 보였다

아, 내가 Big brother라고 부르던 마누엘은 오늘 다른 배로 떠났다ㅠ ㅠ.. 자신의 인생철학은 "Work to live, don't live to work"이라며 주저리주저리 얘기해 줬다. 단순하지만 깊은 말이다. 일을 위해 살지 말고 살기 위해 일하라. 여기서 live는 단순히 사는 게 아니라 "즐겁게" 사는 걸 의미한다. 마음에 담아두고 살아야지. 내 빅 브로, 마누엘, I will miss you!



2015/5/13

기다리고 기다리던 San Diego에 정박했다! 4월 29일 크루스 탑승 이후로 처음 밟는 미국 땅! 연주복이랑 정장 쇼핑이 시급했는데 갑작스럽게 12시 반 연주가 생기는 바람에 한 시간 반 동안 초스피드 쇼핑을 해야 했다. 그렇게 단시간에 그렇게 많은 돈을 써본 건 처음인 듯....  얼마 썼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졸리다.... 오늘은 입국심사 때문에 꼭두새벽에 일어나고 연주도 진짜 많이 했다. ㅠㅠ

일이 슬슬 재미 없어지기 시작했다. (벌써?) 팝송 치는 거 질려버렸다. ㅜㅜ

내일은 Elliot Finkel이라는 피아니스트랑 공연하는데 그건 좀 기대된다.



2015/5/14

Elloit Finkel 할아버지 공연 최고였다! 역시 악보 읽는 연주에는 살짝의 챌린지가 있어야 스릴 있게 실수도 좀 해가면서 ^^; 재밌게 할 수 있는 것 같다.......ㅋㅋㅋㅋ 지금까지 받아본 악보 중에 최고 난이도였음..!!!!! 받자마자 멘붕이었지만 집중력과 순발력을 총동원해서 무사히 공연을 마쳤다. 아, 딱 한 번만 더 하면 실수 하나도 없이 할 수 있 것 같은데 아쉽군. ㅋㅋ

반면에 죨지 때문에 답답이 제대로 차올랐다...... 아니 왜... 왜..... 왜..... 왜애애 Uptown Funk 그 쉬운 혼 라인 하나를 제대로 못 읽어... 왜..?????

악보가 없어도 몇 번 들으면 쳐야 되는 거 아니야???? 죨쥐가 잘하는 거 딱 하나 있다, 블루스 솔로. 그건 인정. 그런데 블루스 악보 읽는 건 또 못함. 하.... 진짜 미스터리다.. 피아니스트 친구들 제발 여기 와서 죨지 좀 replace 해줘 ㅜㅜ 죨쥐 때문에 사운드랑 스테이지 셋업하는 크루들 시간이 아깝다.... 없는 게 백배 낫다... 맨날 똑같은 거 물어보고, 대화 다 끝나놓고 딴소리하고, 며칠 전엔 September를 연주하는데 그 중요한 혼 파트를 하나도 안치길래 그거 중요하니까 꼭 쳐달라고 했더니, 싫단다... 응? ㅇ_ㅇ 그래서 알겠어 그럼 내가 혼 칠게, 죨쥐 네가 피아노파트 쳐~ (라고 말하면서도 난 이미 알고 있었다 얘는 피아노파트 못 칠 거란 걸..) 했더니 알겠다고 악보를 보더니 벌써 표정부터 lost다... 그 얘기 이후로 아직 September 연주한 적은 없지만 뻔하다, 혼 라인 없는 발가벗은 쎕템버가 될 거란 걸.ㅎ.ㅎ.ㅎ.ㅎㅎ... 같이 연주하는 내가 괜히 창피해지겠지..ㅎㅎㅎㅎㅎㅎㅎㅎ


오늘은 배가 유난히 많이 흔들린다. 하루종일 놀이기구 타는 기분이다. 배는 진짜 신기하다.... 바다 한가운데에 거대한 건물이 떡하니 떠다닌다니. 가끔 난 세상 모든 게 신기하다. 아니, 꽤나 자주 ㅋㅋ.... 오늘도 아이팟을 들으며 음악이 이어폰을 타고 내 귀로 들어오는 게 새삼 신기했고, 하여튼, 지금 사는 이 편한 세상이 되기까지 기여해 준 많은 똑똑한 사람들한테 고맙다. 근데 이젠 새로운 전자기기는 그만 만들었으면 좋겠다. 이 정도면 충분해. 


2015/5/15

Rockin' the Roadhouse라는 공연은 이제부터 매주 한 번씩 한다. 그때마다 카우보이 모자, 셔츠, 부츠까지 차려입고 해야 한다. 신나는 곡들이 대부분인데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라 연주가 재미없다..

이따가는 70's party라고 70년대 theme으로 연주를 한다. 청바지에다가 알록달록한 셔츠를 입으란다. 하지만 오늘은 formal night이라 연주할 때 외에는 드레스를 입고 다니란다. 째까난 클라젯에 옷걸이 딸랑 두 개 넣어놨으면서 우리가 집에 있는 옷장을 통째로 가져온 줄 아나보다. 그래도 시키는 대로 잘해야지 뭐.

오늘은 Pay day~ 뱅크 밥그릇에 밥 생겼겠다 오예~~ 2주에 한 번씩 돈을 주는 이유가 있다. 지치고 재미없을만하면 먹이를 주는구나. 이제 카우보이 쇼 연주하러 갈 시간이다. 뿅


2015/5/16

캐나다 Victoria에 왔다. 

특별한 계획 없이 그냥 도시를 거닐었다. 도시 자체도 예쁜 데다 날씨도 맑아서 아주 만족스러운 산책을 할 수 있었다. 캐나다는 미국이랑 너무 비슷해서 외국인걸 깜빡할 때가 많다. ㅋㅋㅋㅋ



2015/5/18

오늘은 밴쿠버. 하지만 나가지 못했다. 2주 뒤에 또 밴쿠버 오니까 그땐 나가야징. 대신 오늘 일이 매우 많았다. 무려 5시간 넘게 연주를! 트랙 틀어놓고 손싱크 하는 거만큼 재미없는 게 없다. 손싱크 하다가 나한테 조명 비추면 방긋 웃어야 되는 게 사기 치는 기분 -_-.. 

라이브 연주 할 때도 재밌는 척 웃으면서 연주해야 되는 게 고되다. country나 rock은 영혼 없이 연주하게 되는데 얼굴은 방긋^_^ ㅎ ㅣㅎ ㅣ..

반면에 재밌는 곡 칠 때는 진짜로 신나서 웃음이 절로 난다.ㅎㅎㅎㅎ 삼바, 맘보, 라틴, funk 곡들!! 내 라틴 스피릿은 어디서 온 걸까? 먼 옛날 조상님 중에 라티노가 있었던 걸까?

아, 스패니쉬를 매일 혼자 공부하긴 하는데 친구들한테 쓰면 죄다 웃는다. ㅠㅠ 난 배운 대로 했는데 틀렸단다. 힝. 물론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착한 라티노 친구들ㅜㅜ 그러고 보면 한국어 문법은 참 쉽다. 남녀 구분도 없고 동사변형도 없고, 한국어에 존댓말만 없으면 배우기 쉬울 것 같다. 스패니쉬는 동사가 왜 자꾸 바뀌고 난리인지!!! 버클리에서 일본어 대신 스패니쉬를 1년간 배웠어야 했어ㅠㅠ 100일쯤 뒤면 스페인에 가있을 텐데 ㄷㄷㄷ 말 안 통하는 나라에서 1년 사는걸 너무 만만하게 봤던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ㅋㅋㅋㅋㅋ 스패니쉬 열공해야지!!

이제 슬슬 럭셔리 라운지에 가는 것도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당분간은 편한 차림으로 감옥 같은 crew area를 이용할 듯하다.


생각해 보니 여기 와서 한 번도 한국 음식이나 여기 없는 음식을 먹고 싶단 생각을 안 했다. 난 역시, 주어지지 않은 것들을 생각하거나 상상하지 않는다. 어차피 가질 수 없는 거면 나도 모르게 까먹나 보다. 그렇다고 여기 뷔페가 황홀한 것도 아니다. 나에겐 그저 버클리 카페테리아 같다. 큰 감동은 없지만 불만 없이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고 일 잘하고 해피하게 살고 있다. 적응의 퀸이라고 스스로 칭할 테다! ㅋㅋㅋㅋ

아, 죨쥐는 애가 4명이나 있는 아저씨란 걸 알게 됐다. 애가 넷이나 있을 줄은.. 그 음악 실력으로 어떻게 가정을 꾸려나갈지 내가 다 걱정된다. 하루라도 빨리 다른 커리어를 찾기를 ㅡ_ㅡ.. 죨쥐의 애들은 아빠가 멋진 피아니스트라고 하고 다니겠지? 왠지 슬프다..

그리고 내 룸메를 비롯한 외국 애들이 배에서 일을 왜 오래 하는지도 알게 됐다. 바이올리니스트 안톤은 9년간 크루즈 일을 했다길래 깜짝 놀랐는데, 월급을 미국 달러로 받으니까 환율 차이로 우크라이나에선 어마어마한 가치가 된단다. 우크라이나에서 오케스트라 단원을 하면 한 달에 70불밖에 못 번다고 하니 크루즈 일을 안 할 수가 없겠구나..

나도 그렇고, 미국 애들은 페이가 세다고 생각 안 하는데, 외국사람들한텐 황금 직장인가 보다.

룸메 사샤가 또 코를 고네ㅠ.ㅠ 2주 사이에 룸메의 영어가 좀 는 거 같다! 짜증이라도 영어로 마구마구 표현하니까 영어실력이 늘긴 하나보다. ㅋㅋㅋㅋㅋㅋ 나도 스패니쉬로 불평하는 그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ㅋㅋㅋㅋ


플로리다에서 출발해서 20일 동안 slow but steady 하게 움직인 크루즈. 내일은 드디어 알래스카에 도착한다. 처음 가보는 알래스카, 재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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