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러 온 건지 놀러 온 건지
2015/5/19
북미를 반바퀴 정도 돌아서 알래스카에 왔다! 이제부터 7월 말까지 알래스카 해안만 반복하는 루트다.
승객들은 일주일마다 바뀐다. 밴쿠버에서 새로운 승객들을 태우고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알래스카의 작은 도시들(Ketchikan, Jeneau, Skagway, Seward, Haines)에 정박해서 관광을 한다. 중간에 Sea day랑 빙하 루트를 지나는 Glacier Bay day가 하루 있다. 가장 북쪽인 Sweard에서 내리는 승객들도 있고, 다시 밴쿠버까지 가서 내리는 승객들도 있다. 새로운 승객들을 맞이하는 날을 Embarkation Day라고 하는데 크루들은 그날을 가장 싫어한다. 모든 부서가 매우 바쁘기 때문.ㅎㅎㅎ 우리도 Welcome 공연을 하는 날이지만 딱히 바쁘진 않다.
플로리다에서 시작해서 지금까지는 반복하는 항구 하나도 없이 한 번씩만 발도장 찍고 왔는데 이제는 뭔가 정착한 기분이 들 것 같다. 혹여나 배에서 내리지 못하거나 날씨가 안 좋아도 다음 기회가 있을 테니 아쉬움도 덜 할 테니, 두 달 동안 여유 있게 알래스카 탐방을 해보자!
알래스카 첫 항구는 Ketchikan. 연어의 도시라니 ㅎㅎ 실제로 연어들이 물살을 가르며 열심히 헤엄치는 걸 볼 수 있었다. 얼마나 힘들까..
물길을 둘러서 시내가 있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건물들이 물 위에(?) 있는게 불안불안했다.
니카라과에서는 아기돼지 삼형제 중 첫째가 지은 지푸라기 집을 봤는데 ㅋㅋㅋ 알래스카에 오니 둘째 아기돼지가 지은 나무집이 많구나.
항구 뒤편으로는 이렇게 만년설과 침엽수가 빼곡한 산이 있다. 3시 출항이라 오늘은 간단히 시내 구경만 했다. 다음엔 등산도 하고 액티비티도 찾아봐야지.
2015/5/20
오늘의 도착지는 알래스카의 수도, Jeneau!
알래스카 유경험자 친구들이 주노가 제일 큰 도시라 할 것도 많은 favorite port이라고 해서 기대가 컸다.
음... 그런데 "도시" 라기보다는 ㅋㅋㅋ 한국으로 치면 시골 사람들 모이는 시내.. 정도? 어제 갔던 케치칸보다 크긴 컸지만 여전히 귀여운 규모의 동네였다.
친구들이랑 등산을 하기로 해서 채비를 하고 열심히 Mt.Roberts 산을 올랐다. 처음엔 추웠는데 올라갈수록 땀이 삐질삐질.
아름다운 뷰!!!! 미국에선 등산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렇게 알래스카에서 등산을 하게 된다니, 너무 신나!!
꽤 올라가니 만년설이 살짝 있었는데, 텍사스랑 호주 출신 친구 두 명이 태어나서 실제 눈을 처음 본다며 아주 얕게 쌓인 눈에서 신나게 굴러다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대가 되어 첫눈을 맞이하는 기분은 어떨까..ㅋㅋㅋㅋ 내겐 너무 당연하고 매년 지긋지긋한 눈이 누군가에겐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한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오늘은 밤 10시 출항이라 여유롭게 주노에서 놀 수 있었다. 그래서 등산을 마치고는 Viking이라는 펍에 갔다. 주노에 오면 크루들이 무조건 Viking에서 논다고 한다.
크루즈 내에서 승무원들은 아주 저렴하게 맥주랑 와인을 마실 수 있다. 한잔에 1불! 그래서 crew bar는 매일 밤 크루들로 북적인다. 그렇게 매일같이 술을 마시면서, 땅에 내려서 굳이 또 펍에 간다는 게 (가격도 비싸고) 난 좀 이해가 안 가지만 뭐, 일단은 따라갔다.
진작부터 놀고 있던 크루들도 있었고 크루즈 승객들도 많아서 펍이 바글바글했다. ㅋㅋㅋ
배에서 그렇게 먹고 마시고, 내려서 또 먹고 마시고, 배 타서 또 먹고 마시겠지.
"다 먹고살려고 일하는 거지"
아무튼, 크루즈에서 늘 무한으로 먹을 수 있는데 따로 먹는데 돈을 쓰는 건 불필요한 지출이라 나는 외식을 많이 하진 않을 생각이다.
가끔 친구들이랑 나와서 사 먹겠지만 최대한 월급을 아껴야지!
2015/5/21
알래스카 세 번째 도시, Skagway
어제 등산으로 아직 근육통이 좀 있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법! 친구들이랑 스쿠터를 빌려서 Skagway 강변을 신나게 달렸다!! 한국 강촌 놀러 가서 처음으로 스쿠터 타고 놀았었는데 이번엔 알래스카의 강촌(?)에서 붕붕! 햇빛은 쨍쨍! 기분은 짱짱 ㅋㅋ
시원한 바람맞으며 어느 정도 달리고 나니 유리 같은 저수지에 다다랐다. 와…… ㅠㅠ 너무 예쁘잖아.. 그렇게 특이한 물 색깔은 처음 봤다. 반투명한 파스텔색? 미네랄이 많은 빙하수라 색이 특이하다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
끊임없이 파도로 일렁이는 파란 바다만 매일 보다가 미동도 없어 보이는 잔잔한 유리물을 보고 있으니 serenity라는 단어가 딱 떠올랐다. 그리고 내가 그 평화롭고 아름다운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너무 감사하게 느껴졌다.
이 예쁜 순간에 가족과 함께 있었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과 함께 나는 과연 지금 이 순간을 deserve 하는가? 너무 쉽게 이런 복을 누리는 건 아닌가? 내가 한 게 뭐가 있다고 여기에 이러고 있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평온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인간이 제 아무리 멋진 걸 만든다 해도 자연이 주는 감동을 넘을 수는 없지 싶다.
저녁 공연까지 시간이 남아서 배로 돌아와 밥을 먹고 애슐리랑 sun deck에 가서 태닝을 했다.
만년설을 바라보며 뜨거운 햇살을 맨살에 쬐고 있다니 ㅋㅋ 새롭고 신기한 순간이 일상을 가득 채운다.ㅋㅋ
메인 공연을 무사히 마쳤고, 내일은 day off! 게다가 sea day니까 늦잠 자야지~~~~
2015/5/23
배에서 베프 삼고 싶은 너무 재밌는 친구가 생겼다.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 크리스. 여기서 만난 사람들 중에 제일 편하고 재밌다. 근데 크리스도 몇 주 뒤면 다른 배로 떠난다. ㅜㅜ 그리고 또 친해졌던 브라질리안 친구 루씨아모도 며칠 전 갑자기 다른 배로 떠나버렸다..ㅠㅠ 재밌는 친구들만 다 떠난다. ㅠㅠ 애슐리까지 떠나면 여자 친구 하나도 없겠다…ㅠㅠ..
우리 밴드 뮤지션들은 배에서 제일 한가하다. 베짱이가 따로 없다. 오늘은 두 시간 연주했다. 다른 부서 친구들은 9-10시간씩 일하는데.. 난 하루종일 여기저기 가서 웃고 떠들고, 스패니쉬 공부하고, 운동하고, 라운지에서 그림이나 그리고 있다….ㅜ.ㅜ;;; 암 쏘 쏘리..
그래도 오늘은 가브리엘이랑 같이 피아노 연습을 했다. 탐앤제리를 쳐보래서 쳐봤지만 손가락이 돌아갈 리가 없지ㅋㅋㅋㅋ 나 그거 어떻게 쳤었지..?
지금은 내 룸메의 친구 안톤이 방에 와있다….. 옆에 지나가기만 해도 담배 쩐내가 나서 숨 참고 지나가는데 이 작은 방에 와있으니, 숨 쉬는 게 곤욕스럽다.
2015/5/30
어느새 배에서 한 달이 지났네..? 가족이랑 놀다가 리허설 늦는 꿈 꾸고, 비 오는 버클리 앞 길 걸어가는 꿈도 꾸고, 친구들도 꿈에 많이 나온다. 보고 싶은가 보다. ㅋㅋㅋ 나에게 크루즈 생활은, 걱정 고민이라고는 ‘자유시간에 뭐 할까?’ 정도밖에 없고, 너무 편해서 불편한? 그런 가짜 세상이다. ㅎㅎ 보고 싶은 모두들, 진짜 세상에서 잘 지내고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