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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주신쥬디 Mar 11. 2024

크루즈에서 본 서양의 부러운 문화

"Ladies and Gentlemen"이란 말이 찰떡인 그들

2015/5/8

이번 공연은 Patrick McMahon이라는 싱어 공연이었는데, 그렇게 에너지 넘치는 싱어 처음 봤다. 한곡 끝날 때마다 "FANTASTIC, GUYS!!!!! OH I LOVE IT!!! THANK YOU GUYS! YOU GUYS ARE AWESOME!!" 이걸 한 200번 들은 듯! ㅋㅋㅋ 솔직히 곡은 너무 쉽고 반복적이어서 연주하는 건 재미없었는데 그 사람 보는 재미가 넘쳤다. 진짜 자기 음악에 빠져 사는 뮤지션인 게 멋있기도 하다. 매 공연마다 새로운 뮤지션과 함께 연주하는 게 이 직업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2015/5/9

크루즈 루프탑엔 풀장이 있다. 다른 데는 에어컨 때문에 다 추운데 거기서만 덥고 습한 날씨를 체험할 수 있다. 오늘 거기서 연주를 했는데, 바람에 습기에 햇빛까지. 오우... 30곡 정도 쭉 연주가 끝나고 나면 정신이 쏙 빠진다. 일 하는 시간으로 치면 적지만 그 짧은 시간만큼은 100%의 집중력과 순발력을 발휘해야 한다. 재미없고 '이걸 음악이라고 만들었나..' 싶은 곡들도 가끔 있지만, 가끔 라틴 그루브가 나오면 나는 신난다. Love is in the Air라는 곡을 몇 번 했는데 할 때마다 너무 기분이 좋다. 아르헨티나 출신 베이시스트 Diego가 나랑 라틴 연주하는 거 재밌댔다! ㅎㅎㅎㅎ 내 라틴 연주 실력 라티노한테 인정받은 건가?! ㅋㅋㅋㅋㅋ

아, 피아노 연습해야 되는데 마땅히 할 곳이 없다. ㅠ ㅠ 키보드 말고 그랜드피아노 치고 싶다.


2015/5/10

어젯밤은 Formal Night이자 Officers ball이었다. 캡틴부터 모든 officer들이 고객들이랑 같이 춤추고 노는 파티였다. 드레스코드는 당연히 formal 이였으니 다들 한껏 차려입고 무도회가 열렸다. 역시 옷이 날개라고, 티셔츠에 슬리퍼 차림으로 뷔페에서 튀긴 음식 양껏 집어가던 승객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화려한 드레스와 suit & tie로 멀끔하게 변신한 사람들이 가득했다. 무도회인만큼 우리 밴드는 잔잔한 곡들 위주의 음악을 선사했다. 

크루즈 자체가 서양인들의 고품격 문화라는 걸 여기 와서 깨달았고 그런 문화가 있다는 게 부러워졌다. 격식 차리는 만큼 서로에게 나이스해지고, Gentlemen 할아버지들이 할머니들 케어해 주는 모습이 부러웠다. 한국인 노부부들이 한 데 모이면 절-대 볼 수 없을 광경이랄까? 착석할 때 의자를 꺼내주고, 문을 열어주고, 손을 내어주고, 팔짱을 끼고, "after you" 라며 아내의 발걸음을 바라봐주는, 그런 "어려운 거 아닌" 일이지만 한국에선 희귀하리만큼 보기 어려운 제스처를 여기선 쉽게 볼 수 있다. 

그렇게 ladies and gentlemen 노부부들이 ballroom dance 하는 거 보는 건 진짜 진짜 사랑스럽다. 거의 다 아무렇게나 추는 거지만 너무 귀엽다. 목적은 춤이 아니라 함께하는 시간을 즐기는 거지, 그렇지! 대부분 뒤뚱뒤뚱 엉거주춤이지만 가끔 댄스 고수들의 스텝을 볼 수 있다. 아담한 노부부가 왈츠를 추는데 스텝이 척~척척! 연주하면서 뚫어져라 쳐다봤다. 요즘 댄스 문화에선 그런 품격 있는 스텝을 볼 수 없는 게 안타깝다. ㅠㅠ 한국엔 그런 고급진 분위기 파티 자체가 없지 않나..? 사람들 모임 하면 술만 많이 마시고, 한국엔 왜 재밌는 게 없는 느낌이지..? 나는 재밌게 살아야지, 지금처럼~~

무도회 내내 나도 힐 신고 서서 연주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끝나자마자 번개처럼 방으로 도망 왔다. 로날드가 나보고 넌 여잔데 왜 그렇게 힐 신는 걸 힘들어하냐고 물었다. 난 여기 오기 전까지 매일 운동화에 백팩 메고 다니던 학생이었단 말이야.. ㅜㅜ 그리고 힐 신고 키보드 치면 페달 때문에 짝다리로 서있는 셈이라 여간 힘든 게 아니라고!!


나한테 진심 어린 조언을 해준 친구 마누엘이 내일 다른 배로 갑자기 파견된다는 소식을 들었다ㅠ.ㅠ 이렇게 갑자기 다른 데로 보내다니 너무해. ㅠㅠ 재밌고 듬직한 친구였는데 가버린다니 아쉽다. 4주 뒤면 애슐리도 떠나는데 그럼 나는 누구랑 놀지..?

다행히도, 나이에 개의치 않고 소통하는 영어 문화가 참 좋다. 어린 신입이어도 다른 사람들과 편하게 어울릴 수 있으니까.

지금은 너무 배가 고픈데.. 먹으러 뷔페 올라가려면 단정하게 차려입고 명찰 달고 고객님들과 눈 마주치면 웃으며 인사해야 되는 게 너무 귀찮고 피곤해서 방에 쭈그리고 있다. 편하게 스낵을 먹을 수 있는 crew livingroom이 있긴 하지만 거기 가면 동남아시아 크루들이 다 쳐다봐서 가고 싶지 않다. ㅠㅠ 투명망토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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