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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주신쥬디 Mar 04. 2024

배에서 만난 각양각색의 사람들

크루즈는 작은 지구촌 - 나는 한국 국가대표!

2015/5/4

아트 갤러리에서 "버블 걸"이라는 경매 도우미 알바를 했다.

갤러리에선 일손이 부족한데 마침 나는 공연 외 시간에는 베짱이처럼 룰루랄라 놀고 있기에 알바생으로 섭외됐다. 크루즈에서 피아노 치는 것도 상상 못 했던 일인데 크루즈에서 경매 도우미를 한다니 ㅋㅋ 앞으로 또 무슨 새로운 경험을 하려나?


경매에 대해 아는 게 없었지만 일은 간단했다. 참석한 사람들에게 등록 안내하고, 추첨 티켓을 상자에 넣고 경매 진행자 Dan 옆에 서서 경매 진행 상황을 메모하고 보조하는 역할이다. 


Dan - 아트 갤러리 매니저

호주 출신 Dan은 키가 2미터 정도 된다. 호주 영어로 경매를 진행하는데, 와.. 태어나서 말 그렇게 빨리 하는 거 처음 들었다. 이 일을 하기 위해 말 빨리하기 연습을 한 걸까? 숨을 쉬고 있긴 한 걸까? 너무 신기해.

나보다 키가 40센티는 큰 Dan, 그 옆에 플랫 신고 바닥에 붙어서 메모하는 나. 강단이 Dan 키에 맞춰져 있어서 사람들에게 나는 보이지도 않았을 거다. 보이지 않을지라도 귀 쫑긋하고 주어진 일을 했다. 난생처음 참여해 본 경매는 꽤나 재밌었다. 새로운 세상이로구나!! 이 알바비로 와이파이 비용 커버해야지. 히히.



크루즈 안에는 별 게 다 있다.

아트 갤러리, 면세점, 헬스장, 스파, 도서관, 카페, 다양한 바, 영화관, 여행정보, 보드게임, 수영장, 카지노, 각종 이벤트까지!


노인 승객 비중이 높은 건 이 크루즈사의 특징이라고 한다. 승객이 1600명 정도 있는데, 백인이 아닌 승객은 10명이나 되려나..? 그렇게 많은 노인들을 한 군데서 보는 건 처음인 나..

그들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을지 궁금하다. 분명 많은 사람들은 꿈을 이루며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왔겠지?

슬픈 생각이지만, 굉장히 연로하시고 거동도 불편하신 분들이 많기 때문에 '저분들이 앞으로 얼마나 살까..?

이 크루즈가 저분들의 마지막 여행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그리고 Ballroom Dance 시간에 춤을 추는 노인 커플들을 보면 정말 귀엽고 사랑스럽다. 백발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애정 가득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걸 보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 나도 그렇게 사랑받고 사랑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푸른빛 바다일 때도 있지만, 때론 이렇게 시커먼 바다로 변한다. 그 아름답던 바다가 무서워지는 건 한 끗 차이이다.

다 갖춘 멋진 남자 Steve 

본사에서 파견 온 우리 뮤직 디렉터 Steve는 브리티쉬 영어하는 키 크고 잘생긴 짱짱 멋있는 영국남자다. 나이가 꽤 있어 보이는데도 진짜 멋있다!! 동료들 말에 의하면 그는 대단한 뮤지션이란다. 게다가 착하기도 하고 일도 잘하고, 다 갖췄다.ㅋㅋ 결혼해서 보스턴에서 살고 있단다, 남..자..랑...^^ㅋ

어젠 Steve가 나를 칭찬해 줬는데 동료들이 그건 big deal 이랬다. Steve는 칭찬 잘 안 해준다고. 히히

남편 있는 유부남이지만 멋있는 사람한테 칭찬받으니 좋군요. 히히


내 룸메이트 Sasha - 우크라이나에서 온 클래식 피아니스트

지금까지 만나본 러시아 계열 사람들은 마치 자매들인 양 똑같다. 굉장히 차갑고 needy 한 데다가 눈은 무서울 만큼 똥그랗게 뜨고 무표정으로 쳐다보며 잘 못하는 영어를 꿋꿋하게 한다. 자기 말 못 알아들은 사람이 잘못한 것 마냥 당당하다. 그쪽 사람들을 많이 만나본건 아니지만 내가 지금까지 만나본 사람들은 솔직히 이기적이고 별로였다. 내 룸메는 또한 살짝 이기적인 경향이 있다.

이기적인 것과 별개로, 영어를 너무 못해서 답답하다. 그래서 나는 할 말이 있어도 그냥 안 하거나, 방에 쪽지를 남겨둔다. 간단한 영어도 잘 못 알아듣는데 어떻게 짜증은 영어로 그렇게 잘 낼까? 나에게 짜증을 내는 건 아니고 혼잣말로 중얼중얼거리는데 비좁은 방에서 목소리는 왜 그렇게 큰 건지... 

영어로 짜증 마구마구 내놓고 마지막엔 "오이오이오이~~~" 하면서 자기 언어로 꿍시렁거린다.

그래서 내가 위로의 말을 해주거나 해결책을 제시하면 못 알아듣는다. 하.. 답답해.

결혼도 한 여잔데 왜 남편과 떨어져서 크루즈 일을 할까? 꽤 오래 했다는데.. 우크라이나에선 이만한 일이 없는 걸까..?? 

궁금하지만 안 물어볼 거다. 대화하려면 힘드니까ㅠㅠ


- 나중에 어렵사리 대화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크루즈 월급을 미국 달러로 받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에서는 이것만큼 돈이 되는 일이 없다고 한다. 크루즈 월급이 우크라이나에서 받을 수 있는 월급보다 거의 30배 높다고 한다. 세상에..


PJ & Dom - 항해사를 꿈꾸는 유러피안 친구들 "Cadets"

오늘은 항해사 학교를 다니는 네덜란드인 PJ랑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여기서 선원으로 실습하는 게 학교 과정이라고 한다. Cadet이라고 불린다. 네덜란드인은 처음 만나본 건데 말하는 게 웃기다. 말끝마다 "에~? 에~?"ㅋㅋㅋ 

PJ랑 같이 있던 영국 출신 Dom이랑도 짧게 얘기를 나눴다. 둘 다 Korean friend는 내가 처음이라고 했다. 이 친구들은 나와 다르게 스케줄이 빡빡하다. 그래, 나는 띵까띵까 피아노 좀 치고 놀아도, 너희는 항해사 하려면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야지 얘들아^^ 힘내렴^^


유럽 회사인 만큼 유러피안이 굉장히 많은데, 확실히 유럽 남자들은 미국 남자들과 다르다. 같은 백인, 다른 느낌!

고등학교 다닐 때는 유럽애들 잘난척하는 꼬락서니 때문에 아무리 훈훈해도 밉상이었는데, 대학교 다니며 만난 사람들이 그 선입견을 없애줬다. "젠틀맨"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유러피안이었다.


한때 나는 외국인이랑 결혼할 거라며  떵떵거리고 다녔었는데ㅋㅋ 유러피안 외모에, 라틴 쪽의 유쾌한 성격에, 아시아인의 성실성을 가진 ideal 한 남자는... 응 없어~ ^^


여기서 만난 사람들은 일단 배에서 일한다는 거 자체로도 특이하지만 알고 보면 더 특이하다. 그들에겐 나도 특이한 사람이려나?


Ashley - 크루즈 싱어는 부업, 본업은 회계사

우리 밴드 보컬리스트 애슐리는 음악전공자도 아니고 본업은 회계사다! 크루즈에서 일하지 않을 땐 프리랜서 회계사로 일하고, 나중에는 고등학교 수학 교사를 하고 싶어서 대학원 진학을 생각 중인 친구다. 웬만한 보컬 전공자들보다 악보 잘 보고 열심히 하는 멋진 친구다. 그 많은 노래들을 익히려면 쉽지 않을 텐데 항상 잘 준비해 온다. 동료들 중 유일한 내 또래 여자애다!! 근데 같이 노는 거 재미없다. 역시 난 아메리칸들이 재미없어... 내 브라질리안 베프 캐롤라인 보고 싶다.


James - Rock 기타리스트 밴드리더 아저씨

우리 밴드리더이자 기타리스트인 James는 캐나다인 중년 아저씨다. 처음 만났을 땐 옷을 후줄근하게 입고 수염도 덥수룩해서 길에서 보면 홈리스로 착각할 인상이었다. 무표정으로 진지하게 조크를 던져서 사람을 당황시키는 능력을 갖고 있다. 말을 너무 느리게 한다. 그래서 조크가 더 당황스럽다. 두 번째 와이프 Sari와 최근에 결혼했다고 한다. Sari는 인도네시아인인데 둘이 크루즈에서 일하다가 만나서 결혼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Will - 인생 노잼 드러머

드러머는 North Carolina 출신 아메리칸 Will이라는 친구다. 서른 살 넘은 것 같은데 굉장히 동안이다! 살면서 재미라는 걸 한 번도 못 느껴봤나 보다. 신기할 정도로 웃지 않는다. 표정이 없어서 얼굴에 주름이 없는 건가? 너는 도대체 뭐에 excited 되냐고 물어봤더니 잠자는 거랑 초코칩쿠키가 제일 익사이팅하다고 한다... 아, 아.. 그렇구나.^^;; 


Diego - "Hey 슈디~"

베이시스트는 아르헨티나에서 온 Diego! 언제 어디서든 졸리거나 술 취해 보이는 얼굴을 가지고 있지만 그 누구보다도 성실하다. 음악을 독학으로 했다는데 같이 연주할 때 한. 번. 도. 틀리는 걸 들은 적이 없다. 짱짱 베이스맨!!! 아르헨티나식 스페인어를 해서 내 이름 쥬디를 슈디라고 부른다. ㅋㅋㅋ 다른 라티노들에 비해 차분하고 말수가 적은데 가끔 툭툭 던지는 짧은 영어로 웃길 때가 많다. 아르헨티나에 있는 와이프가 임신 중이라고 한다. 임신했는데 롱디 부부라니 ㅠㅠ... 안타깝다.


George - 금쪽이 아저씨

내가 속한 밴드에서 세컨드 키보드를 맡은 George 아저씨도 우크라이나에서 왔는데 역시나 내 룸메처럼 차갑고 무뚝뚝하다. 미안한 얘기지만, 악보도 잘 못 읽고 키보드도 다룰 줄도 모르는데 영어까지 잘 못해서 밴드에서 혼자 겉돈다. 안타깝다. 몇 번 말을 걸어봤지만 역시나 거의 수수께끼/스무고개 수준으로 대화가 이어진다. 본인은 얼마나 답답할까? 이 포지션 하려면 영어 인터뷰에 온라인 오디션을 거쳐야 했는데, 어떻게 붙은 건지 의문이다.

밴드 리더는 아예 포기한 거 같다. 콘서바토리 나왔다는데 대체 뭘 배운 걸까..? 덕분에 키보드 하나만 필요한 공연은 죄다 내가 하게 생겼다. 그럼 내가 페이 더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한 명 때문에 밴드 전체가 고생한다. 이게 무슨 민폐람?

게다가 Geroge는 애가 4명이나 있는 아빠란 걸 알게 됐다. 헐! 나이 있는 건 알고 있었는데 애가 넷일 줄은!? 그 음악 실력으로 어떻게 가정을 꾸려나갈지 내가 다 걱정된다. 하루라도 빨리 다른 커리어를 찾기를ㅡ_ㅡ.. George의 애들은 아빠가 멋진 피아니스트라고 하고 다니겠지? 슬프다........


Evan - 경찰 DJ

애슐리랑 친한 Evan은 여기서 show host로 일하고 있다. 이벤트 진행이나 DJ 등을 하는 역할이라 온갖 행사에 투입되는 직원이다. 그래서 같이 놀 시간이 별로 없다. Evan은 경찰대를 졸업해서 경찰 자격증도 있다. 올해 10월에는 counter terrorism 대학원 공부를 하러 이스라엘에 간단다! So cool!!


그 외에 뮤지션들은 미국인 베이시스트 Theo, 페루 출신 피아니스트 Gabriel, 미국인 드러머 Scott 아저씨도 있고, 바이올리니스트 Anton도 있다.

샵이랑 아트 갤러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랑도 잘 지낸다. 그쪽 사람들은 라틴계열이 많아서 그런지 훨씬 유쾌하고 재밌다. 스페인어를 틈틈이 배우고 있다.


오늘은 루마니아 출신 Simona랑 미시간 출신 Jane이랑도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Jane 역시 미국인이라 그런지 진짜 재미없다. 얘를 보고 미국인들이 재미없는 이유를 찾아냈다!! 사람들이 웃지를 않는다.!!!!! 처음 만났을 때 보는 그 가식적인 미소 Hi, nice to meet you ^_^ 그리고 지나가다 마주쳤을 때 1초 스마일 Hi :) 할 때 빼곤 대화할 땐 엄청 무뚝뚝하다. ㅡ_ㅡ 미소를 띠고 말하고 있는 내가 민망할 정도로. 잘 웃는 내 친구들 보고 싶다. ㅎㅎ


좀 전에는 갤러리에서 일하는 친구 Manuel이 진심 어린 충고를 해줬다: 여기서 남자 만날 생각하지 말는 충고. 크루즈에서 처음 일하는 사람들이 뭣도 모르고 실수를 한다며, 여기 이 모든 건 Reality가 아니라 Fantasy니까 fall in love 하지 말란다. ㅋㅋ 남자애가 그런 말 해주니까 웃긴데 고마웠다. 그래놓고 지는 애슐리 좋아하는 거 나한테 바로 들켰다. 푸하하ㅋㅋㅋㅋㅋㅋㅋ 참나ㅋㅋㅋ 사실 크루즈 안에서 누구 좋아하고 꽁냥꽁냥 하는 게 당연하고 뻔한 일이겠다. 재미없는 애슐리는 재미없는 Theo를 이틀 만에 좋아하는 꼴을 보고 있자 하니, 대체 재미없는 애들끼리는 뭐가 그리 매력인 걸까 싶다. 근데 가만 보면 미국인 또래 남자애는 Theo밖에 없기 때문에 애슐리한테는 Theo의 존재만으로도 매력일 수도 있다. 신기한 사람들...

동료들이랑 매일 같이 밥 먹고, 곧 알래스카 가면 같이 내려서 여행도 다니게 될 텐데 두루두루 재밌게 지내야지.

크루즈 탄지 일주일도 채 안 됐는데 매일마다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있다. 재밌다. 나는 유일한 한국인이다.


음대와 한인 교회만 왕복하며 4년을 넘게 살았는데, 뮤지션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닌 다양한 직군, 국적의 사람들을 이렇게 많이 만난다니, 앞으로 오고 갈 이야기와 만들 추억이 기대된다.


으아, 룸메가 코를 곤다. 자나 깨나 시끄러운 Sasha. 귀마개 꽂고 자야지.

지금 이층 침대 위층에 앉아서 일기를 쓰고 있는데, 나는 특권을 가진 땅콩이라 생각보다 편하게 허리를 펴고 앉을 수 있다. 키 큰 사람들은 여기 불편해서 어떻게 살지?ㅋㅋㅋㅋㅋ 땅콩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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