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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주신쥬디 Feb 26. 2024

우당탕탕 첫 주

모르는거 투성이지만 난 잘 할거야!

2015/4/30 목요일 - 크루즈 탄지 이틀째

이건 영어로 쓸 수가 없는 일기 ㅋㅋ

역시 미국애들은 재미가 없다ㅋ... 어딜 가든 나에겐 남미 친구들이 최고다! 덕분에 스페인어 많이 배워서 가겠다. 애들 귀찮게 자꾸 물어봐야지~~

아, 근데 스패니쉬 하려면 왜 뜬금없는 잘하지도 못하는 일본어랑 헷갈리는 건지... 내일부터 배우는 거 다 받아 적을 거야 ㅋㅋ


한국어 한 번도 못 들어봤다는 두 남미 친구들을 앞에 두고 한국어를 중얼거렸다.

코 앞에서 붕어눈ㅇ_ㅇ하고 쳐다보는게 너무 웃겼다.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내 룸메는 우크라이나 출신 클래식 피아니스트. 자기 언어로 말할 때 겁나 시끄럽고 혼잣말도 엄청 많이 하는데 영어는 거의 못한다. 그런데 그 짧은 영어로 불만이랑 짜증은 200% 표현하는 신기한 능력을 가졌다.


온라인 트레이닝이 무지하게 많다. 수료증만 10개 정도 받았다. 처음으로 크루즈에서 일하는 나는, 틈만 나면 "컴퓨터실"에 가서 15년은 더 되어 보이는 구식 컴퓨터로 온라인 교육방송을 보고 시험을 봤다. 원칙대로라면 모든 과정을 pass 하기 전까진 일을 못한다는데 ㅋㅋㅋ 웃기고 있네.. 배 타고 짐도 풀기 전에 연주시켰잖아요 ^^......

아무튼 재미는 없지만 중요한 안전 및 환경 교육에 열심히 임하는 중.




2015/5/1 금요일

12:36 pm

하... 역대급의 바람을 맞으며 연주했다. 크루즈 루프탑 풀장에서 연주를 했다. 2시간 동안 진행 예정이었던 공연이었지만, 바람이 너무 세서 30분 후에 중단해야 했다. 거센 풀장 파도가 악기와 음향 장비에 자꾸 들이쳤고, 멤버들 모두 바람 때문에 연주가 너무 힘들었다. 더군다나 나는 하이힐 신고 중심 잡으며 서있는 게 너무 괴로웠는데, 공연이 중단돼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ㅠㅠ

바람과 맞서 싸우며 연주하는 내게 머리끈을 건네주신 친절한 할머니 승객분께 정말 감사했다!!! 지금도 배가 꽤 흔들리고 있다. @_@ 으아아


7:39 pm

드디어 크루즈에서 사용할 수 있는 와이파이를 샀다! 1분에 10센트다. 그러니 이만 -


이렇게 오프라인 메모장에 틈틈이 일기를 쓰고 비싼 와이파이를 켤 때 한꺼번에 업로드해서 지인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2015/5/2 토요일 2:00 pm (크루즈 탄지 4일)

ㅋㅋ 자유시간이 많으니 계속 끄적이게 된다. 아주 좋다. 뿌듯한 기록이 차곡차곡 쌓이겠구나!

오늘이 토요일인가..? 여기선 요일 감각이 없다. 지금은 또 타임존이 바뀌어서 Central Time을 쓴다.

배의 위치에 따라 매일같이 타임존이 바뀌는 세상 @_@

오늘은 3시간 동안 아침 리허설을 했다. 새로운 노래들이 셋 리스트에 추가됐기 때문이다. 여기서 리허설이라 함은, 곡 목록을 마라톤처럼 쭉- 훑어서 연주하고, 부분 부분 다듬는 것 정도로 끝난다.

초견과 즉흥 솔로를 엄청 많이 한다.


내가 블루스를 좋아했으면 좋았을 텐데…

밴드 리더가 “can’t go wrong with blues!”라고 하며 주야장천 블루스 연주를 시킨다.

내가 진짜 싫어하는 블루스ㅠㅠ 특히 템포 느린 올드 블루스는 내 스타일이 아니다. 그래도 어쩌겠나^^ 내가 리더가 아니니 시키는 걸 하는 수밖에.

게다가, 우리 밴드가 연주하는 노래 98%는 내게 생소하다. 미국에서 살고 미국 음대를 나왔지만, 미국 올드 팝을 듣고 자란 건 아니기에, 내가 미국 60, 70년대 노래를 알 리가 없지. 한국 올드 팝도 모르는데!

모르는 곡들이지만 다행히 연주하기에 어려움은 없다.


그리고 서 있는 상태로 건반을 연주하는 건 정말 힘들다.ㅠ.ㅠ

나는 분명 “연주할 때 입을 유니폼이 제공된다"라고 듣고 배에 탔는데!!! 유니폼도 없고!! 편한 신발도 없고!! 검은 연주복 필요하다고 아무도 말 안 해줬잖아!! 그리고 Formal Night 때 드레스 입어야 한다는 것도 안 알려줬잖아!

샌들이나 운동화도 못 신고, 청바지나 편한 복 차림으로 guest area 가면 안 된다는 것도 난 몰랐잖아!

크루즈가 이렇게 “fancy”한 곳인지 내가 어떻게 알았냐고…

앞으로 3달을 여기서 살아야 하는데 이 중요한 사항들을 왜, 왜 안 알려준 거야 도대체!

배에 갇혀있으니 마음대로 쇼핑을 할 수도 없는데 ㅠㅠ

알래스카에 2달간 있을 거라는 사실도 배 타기 전까지 몰랐지 나는. Surprise~~ 후..ㅠㅠ


끙차끙차 끌고 온 짐 중 대부분은 꺼낼 필요도 없겠다. 중미, 파나마 운하, 샌디에고, 밴쿠버까지 2주 정도만 여름 날씨이고 알래스카는 쌀쌀할 텐데,

챙겨 온 옷은 대부분 여름옷인 데다가, 크루즈에선 입을 수도 없는 편한 복장이니까 가방에 그대로 모셔놔야겠네.

Amazing....


내가 몰랐던 정보는 앞으로 매일매일 깜짝 소식처럼 밝혀질 예정이다.ㅋㅋㅋ 오늘 또 알게 된 사실은, 친구나 가족이 나랑 같이 여행하면 할인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아직 나는 신입이라 혜택이 적지만, 배에서 일한 경력이 쌓이면 이러한 할인 혜택이 쏠쏠한 것 같다.


그리고 크루즈 안은 에어컨 때문에 너무너무 춥다.

어제는 안전, 회사 규칙, 윤리, 환경에 관한 온라인 교육을 세뇌당하듯 받았는데, 절약을 생활화해서 지구를 지킵시다!!!라고 그렇게 강조해 놓고

후들후들 추울 만큼 24시간 에어컨 가동하는 아이러니..


승무원들은 guest area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없다. 사진을 찍으면 안 되는 건 아닌데, 승객들조차도 사진을 찍지 않아서 왠지 나도 찍는 게 눈치 보인다.  인터넷이 비싸고 어차피 크루즈 내에선 휴대폰이 필요 없으니, 승객들은 아예 폰을 안 가지고 다니는 것 같다. 나는 몰래몰래 사진 찍어야지 ㅋㅋ


크루즈 내 승객들에게 보이는 공간과, 승무원 전용 공간이 너무 대조적인 게 충격적이다. 마치 같은 건물 안에 감옥과 성이 공존하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난 그 양쪽을 오가며 살고 있다.


오늘은 남미에서 온 재밌는 친구들을 만났다. 역시 Latinas & Latinos!! 밤에는 Tricia Kelly라는 아티스트와 공연을 할 예정이다. 재밌을 것 같다!!

그리고 내일은 또 공연 없는 Day off! 아싸 ㅎㅎㅎㅎ 종일 뭐 하고 놀지? ㅋㅋㅋ



2015/5/3 일요일 Zaandam 크루즈 5일째

복도 청소하는 소리에 아침 일찍 깼다. 어젯밤에는 Tricia Kelly 공연 연주를 했다. 재밌었지만, 역시나 서서 연주하는 게 너무 힘들다. 연주복이랑 편한 신발 사러 가야 되는데 도대체 언제 갈 수 있으려나ㅠㅠ

함께 연주하는 뮤지션들은 정말 실력파다. 초견으로 연주하는데도 틀리는 거 거의 없이 칼박 + 정확성 100! 나는 가끔 실수하는데 ㅋㅋ 내가 실수해도 동료들이 잘 잡아줘서 끄떡없다. 듬직해!!!


뭔가, 배에 갇혀서 크루즈 뮤지션으로 있기엔 조금 아깝다는 느낌도 든다. 크루즈 일을 한 번 시작하면 쉽게 이 일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곧 대학원에 가야 하니 학교 마칠 때 까진 이 일을 계속할 수는 없겠구나. 나중에 다시 이렇게 할지 아닐지는 모르겠다. 오늘은 신입 5일 차에 불과하니까^^.. 일단 95일 정도 남았네...^^

곧 파나마 운하를 통과할 예정이다. 풍경을 보러 데크로 나갈 건데, 밖이 너무 습하다.ㅠㅠ


이 크루즈에는 9개의 "데크"가 있다.

나는 습관적으로 몇"층" (4th floor, 8th floor)이라고 말하는데, "Deck 4, Deck 8"가 맞다며 굳이 굳이 고쳐주는 직원들이 가끔 있다.... (그거나 그거나.. 유남쌩이잖아 -_-)

배의 앞, 뒤는 front, back이 아니라 forward, aft

왼쪽, 오른쪽은 port side, starboard side 이렇게 배 전용 명칭이 있다.

명칭이 있어도 길치에겐 어렵다.


같은 날 밤 12시 20분

오늘은 공연이 없었다.

배 꼭대기에 전면 유리인 gym이 있다. 트레드밀에서 보는 뷰는 타이타닉 Jack & Rose 가 백허그 하면서 보는 뷰랑 비슷하겠구나. ㅋㅋㅋㅋㅋ

Gym에서 파나마 운하 통과하는 걸 보았는데, 음.. 그냥 운하였다. Man-made라는 사실은 인상적이지만, 글쎄, 우와!!! +_+ 하는 감동은 없었다. 그리고 파나마가 한 나라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 크루즈에는 세 개의 밴드가 있다:

내가 속한 밴드는 6인조 쇼 밴드로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메인 쇼에서 연주한다.

Neptune Band는 매일 밤 50분 x 다섯 세트의 재즈를 연주하는 트리오 그룹이다. 드러머는 연주하면서 노래도 부르니까 quartet이라고 해야 하나?


그리고 바이올린과 피아노 듀오도 매일 저녁 4시간 이상 연주한다. 아직 안 들어봤지만 분명 멋있겠지!! 둘 다 우크라이나 출신인데 그중 피아니스트가 내 룸메다.


솔직히 내 포지션에 굉장히 만족하고 있다.ㅋㅋㅋㅋ

노인 승객들로 가득 찬 극장에서 우리가 메인 공연을 하는 게 부담감이 상당하지만 짧은 리허설에 공연 두 번이면 마치니까 매일 5시간 동안 연주하는 다른 팀들에 비해서 꿀잡이다.

그리고 매일 반복되는 레퍼토리가 아닌, 매번 새로운 공연을 한다는 점이 아주 맘에 든다!!


나는 스스로를 "재즈" 피아니스트라고 하지 않는다.

굳이, 굳이, 클래식 vs 재즈로 나누라고 한다면 재즈피아니스트라고 하겠지만 음악이 꼭 그렇게 둘로만 나뉘는 건 아니잖아요? ^^

난 어떤 피아니스트인지 모르겠다 - 이 일로 내 음악적 정체성은 더 모호해졌다. ㅋㅋ.. 난 뭘까.....


아, 초대 아티스트(Guest Entertainer)와 메인 공연을 할 때는 간단한 리허설을 한다. 오후 5시에 리허설을 하고, 오후 8시와 10시에 공연을 한다.

낮에 풀장이나 라운지에서 연주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난 그 어떤 스케줄이 주어져도 이젠 놀라지 않을 예정이다.

"오늘 공연은 키보드가 필요 없으니 나만 쉬는 날~" 또는 "리허설 없이 300 페이지의 악보 연주하는 공연!!" 같은 통보를 받아도 그러려니~ 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벌써 생겼다.

(배 탄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내 적응력 무엇)

무슨 일이 닥치든 프로답게 해낼테다! 훗


드디어 "Musician" 쓰여있는 명찰을 받았다.

Guest area에서는 항상 이 명찰을 달고 다녀야 한다. 직원 느낌 뿜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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