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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주신쥬디 Aug 19. 2024

5일간 망망대해를 가르며

유유자적하게 하와이로 갑니다.

2017/12/02

샌디에고에서 하와이로 출항! 본격적으로 하와이 크루즈가 시작됐다.

이번 크루즈 승객 평균 나이는 75세쯤 되지 않을까 싶다.

크루즈 여행 즐기는 노인들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인생의 끝자락인 게 너무 눈에 보여서 씁쓸하기도 하다. 노부부가 음악에 맞춰 커플 댄스를 추는 모습은 크루즈에서 가장 보기 좋은 씬이다.


이제부터 5일간의 sea day를 거치면 하와이에 도착한다.

"Still at sea..."

Entertainment team의 일정표.

"HR back"은 말 그대로 한시간 늦추는 날을 말한다. 배의 위치에 따라 time zone이 바뀌니 수시로 시계 세팅을 해야한다!


Sea day 2

오늘 아침엔 헬리콥터 evacuation으로 꼭대기층 gym area에 접근금지령이 내려졌다.

직원 한 명이 medical emergency 이유로 헬리콥터로 구조(?) 됐다. 배 안에 있는 병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응급상황이었나 보다.

어제부터 샌디에고에서 하와이로 향하고 있으니, 말 그대로 태평양 한복판인데, 직원 한 명의 안전을 위해 헬리콥터도 오고, 배도 살짝 동선을 틀었다. 그래, 이게 맞지... Safety first!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직원이 무사했으면 좋겠다.

아, 그리고 배 안에는 영안실도 있다. 가끔 메디컬 팀을 일정 위치로 부르는 방송을 하며 "Bright Star"라는 코드를 외칠 때가 있데, 그건 배 안에서 누군가가 사망했다는 코드라고 한다. 그럼 크루즈 내에 있는 영안실에 시체를 보관한다고 한다. 배에 상주하는 목사님이랑 신부님도 있어서 장례도 치를 수 있다. 크루즈는 정말 바다 위에 떠있는 작은 세계다.


Sea day 3

배가 엄청 꿀렁꿀렁 거린다. 이렇게 요동치는 크루즈는 처음이다. 바람과 파도가 역대급으로 거세다.

술 취해서 걷는 느낌.. @_@ 난 멀미는 안 하지만 이 느낌은 영 별로다....

오늘 공연 이후엔 한 아주머니가 나한테 이것저것 물어보시더니, 디즈니월드에서 일하는 걸 권하셨다. 디즈니 뮤지션들 돈 많이 번다며.ㅋㅋㅋㅋ 솔깃? ehhh

친구들이 숙소에 크리스마스 데코레이션을 하기 시작했다. 하여튼 미국 애들은 시즌 데코에 진심이다.


Sea day 4

어제보단 바다가 잠잠하다. 곧 하와이에 도착하는데, 하와이에서 뭐 하지...?

치밀하게 알아보고, 뭐 할지 계획을 짜서 따르는 친구들이 있는 반면 나는 완전 즉흥파다. (계획 짜는 친구들을 따라다닌다.ㅋㅋㅋㅋㅋㅋㅋ)

가만 보면 나는 예상치 않은 일을 맞닥뜨리는 걸 즐기는 것 같다. 근 5년만 돌아봐도, 전혀 상상치 못했던 일들로 가득했으니 앞으로는 얼마나 더 상상초월의 이벤트를 겪으려나? 물론 모든 게 좋게 돌아가진 않겠지. '이럴 줄 알았으면 계획 좀 세울걸' 하는 후회도 하며 우여곡절을 겪겠지만, 알 수 없는 역경에 대한 마음의 준비라는 건 어차피 할 수 없는 거 아닌가? 그저 소소한 것에 대한 감사함을 일삼으며 성장해 나가는 수밖에.

비행기에서 지도 보듯 매일 TV로 실시간 맵을 보고 있다. 이제 정말 가까이 왔다!!!!


Sea day 5 (12월 7일)

하와이에 도착하면 스카이다이빙을 하기로 결심했다..!!!!!!!

난 무서워서 절대 안 하겠다고 버티고 있었지만 나 빼고 모든 친구들이(!!!) 스카이다이빙을 하러 간다는 게 아닌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모두가 간다니!!!! 며칠째 고민하고 있었는데, 구스타보의 한마디 "Sky dive, Judeees. Pretend you’re me and throw yourself out of a plane!"가 내 쫄보 마음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줬다. 그래, 구스타보였다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스카이다이빙을 했을 거야. 구스타보는 그런 친구고, 난 그 친구가 사는 방식이 멋지다고 생각하니까!

나도 합류하기로 결.. 정...!...

하와이에서 스카이다이빙이라니;;;; 이 또한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이벤트.... 나.. 괜찮겠지..? 괜찮을 거야... ㄷㄷㄷ

요즘 자유시간은 대부분 연습실에서 크리스마스 캐롤 편곡을 하며 보내고 있다! 내년엔 크리스마스 앨범을 내볼까?

그리고 일기에 자주 쓰는 말이지만, 여기서 보는 연주, 노래, 공연, 모든 퍼포먼스에 나는 늘 빠져든다.


일기 원문 일부: 

Dancing is so beautiful. I looooveeee watching live shows. They are amazinggggg!!!!! Ahhh, I can't even express this feeling! There are so many sparkling lights and colors and emotions and joy in the world that we all are missing out because we’re too “busy..” 

I’m not gonna live a busy life. I wanna live a fun life. I wanna see people singing and dancing with all their heart. I wanna see, hear, meet, visit, and do what makes this world wonderful. I wanna be someone who gives that spark.✨�✨Tadaaaa

Okay, bed time. When I wake up, I'll be in Hawaii!!! Stepping on land after 5 dyas of living on waves. Here I come, Hilo, Hawaii!


2024년 지금, 일기를 돌아보는 시점, 그래, 나는 예술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지 참.. 그간 잊고 지냈네. 내가 "I wanna be someone who gives that spark."라고 쓸 정도로, 음악에 대한 애정이 있었고, 예술의 아름다움을 나누고 싶어 했구나. 골방 같은 연습실에서 아무도 시키지 않은 편곡도 재밌게 했던, 지금과는 사뭇 다른 나... 영화 Soul이 나오기 전에 적은 일기인데 내가 "spark"라는 표현을 썼구나. (보고있나, pixar?)

그리고 저 일기에 동생이 달아준 댓글: "Omg… good luck!! 울 언니는 항상 sparks to people✨✨"

ㅠㅠ......

지금은 왜 예술에 대한 애정이 식은 걸까? 예술을 자주 접해야 그 소중함을 느끼고, 그걸 원동력 삼아 나도 의지가 생기는 건데, 주원료 input은 없이 output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그 spark를 잊은 걸까?

"I wanna see, hear, meet, visit, and do what makes this world wonderful. I wanna be someone who gives that spark."

내가 나에게 했던 말을 곱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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