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프로젝트 과제가 있었는데, 특정 공공기관 A의 방문객을 활성화하기 위한 마케팅 전략을 기획하고 PT를 통해 제안하는 것이었습니다. A의 담당자가 직접 PT를 듣고 평이 좋다면 내년 사업계획에 포함한다고 하였기에 성공만 한다면 첫 경험으로 매우 좋은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영광스럽게도 그 프로젝트팀의 비공개 투표를 통한 리더가 되었습니다.
살면서 리더였던 경험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리더의 자리는 두렵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리더라는 말을 들으면 영화 “공공의 적 1-1”의 한 대사가 떠오릅니다.
범죄조직 행동대장(김남길 배우)의 대사가 그것입니다.
“흔들려? 대장은 흔들리면 안 되지.”
판단을 미루고 우왕좌왕하는 리더만큼 꼴사나운 것이 없습니다.
리더는 지휘권과 책임을 갖는 자.
그 말은,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중·장기적인 기획력과 자신의 판단에 흔들림이 없는 자기 확신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동료들이 신뢰할 수 있도록 굳건하고 망설이지 않는 것. 그것이 리더의 가장 필요한 필수 덕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필자는 바람에 날리는 풍선 같은 존재. 중심을 잡고 흔들리지 않는 리더와는 전혀 어울리는 타입이 아니라고 스스로 자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프로젝트 리더라니?
영광스러움과 동시에 책임감이 휘몰아쳤습니다.
과연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가진 침대 같은 리더가 될 수 있을까.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한번 결단을 내리면 번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모든 판단이 부담스러워졌고 팀원들을 신뢰하지 못하는 나약함이 겹쳐 스스로 다그치며 모든 업무를 “내가 할게”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보다 못한 강사님이 말했습니다.
“네가 모든 것을 다하면 동료는 어떻게 성장하나. 리더란 동료를 신뢰하고 일을 맡기되, 혹시 동료가 임무를 완수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모든 일을 해놓은 자여야 한다.”
그저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리더 “퀸”
강사님의 조언한 리더십은 체스에서 퀸이라는 기물과 비교하여 생각할 수 있습니다.
퀸은 체스에서 가장 강한 기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가로, 세로, 대각선 그 어느 곳이든지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퀸의 강함은 체스에서 가장 높은 기물 가치(9점)를 가졌다는 것에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8방을 이동할 수 있는 퀸의 행마
대부분의 게임에서 퀸은 이동이 많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전장을 휘저으며 선봉대로 쓰다 잃기보다는 사자가 정글을 내려다보듯 그 자리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게임의 추를 컨트롤하기 때문입니다.
굳이 그 강함을 내보이지 않아도 상대방 기물에게는 압박이 되고 아군 기물에게는 든든함이 됩니다. 그저 존재만으로도 든든한 것. 퀸에게서는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흔들리지 않는 리더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필자는 퀸의 그러한 리더십은 강함에서 오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강사님의 말을 차분히 복기하니 퀸의 리더십은 그저 강하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뒤에서 밀어주며 연대하는 퀸
강한 힘이란 강한 책임이 따릅니다.
퀸은 가장 강한 기물이기 때문에 함부로 움직이기 어려운 기물입니다.
한 턴에 한 번만 움직일 수 있는 턴제 게임에서 기물의 강함이 생존의 강함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체스는 실시간 전략게임이 아니며, 기물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기물이 스스로 능동적으로 방어하는 능력은 없기에 단독으로 강한 기물이라고 해봤자 상대방을 공격하려다 실패하면 잡히거나 템포(주도권)를 빼앗기게 됩니다.
퀸의 연대는 그와 비슷하면서 다릅니다. 퀸은 체스판의 뒤쪽에서 기물이 전진할 수 있도록 지지해 줍니다.
이는 자세히 생각하면 재밌는 아이러니를 느낄 수 있습니다.
퀸은 폰, 비숍, 룩의 모든 능력을 갖추고 있는데 그것을 활용하는 방식은 자신보다 부족한 기물들의 전진을 도와준다는 것입니다. 마치 기물 각자가 스스로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이미 모든 것을 갖춘 퀸이 뒤로 물러나있는 것 같았습니다.
퀸은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체스판 안에서는 만능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행방은 전장에서 강함을 증명하고 화려하게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기물들이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기물이 전장에서 전사했을 때 그 위치를 대신할 수 있기 위해서라는 것을 말입니다.
퀸이 없는 체스판, 각자도생(各自圖生) 엔드게임(END GAME)
리더십은 팀원을 이끌고 통솔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리더가 있기 때문에 리더를 중심으로 팀원들이 뭉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리더가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사라지게 된다면 그 팀은 어떻게 될까요? 아마 팀이 아닌 개인으로서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각자도생하게 되지 않을까요?
체스에는 엔드게임(END GAME)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엔드게임이란 최종장이라는 뜻입니다. 체스에서는 기물이 얼마 남지 않는 상황을 이르는 말인데 종반전과 그 의미가 같습니다.
체스는 오프닝 – 미들게임 – 엔드게임으로 분류됩니다.
오프닝은 큰 줄기의 전략을 짜고, 전략 실행을 위한 기물 배치를 하는 수순을 말합니다. 이 수순을 통해 상대방과 나의 전략의 우위를 분석하고 수를 강구합니다.
미들게임은 오프닝에서 구성된 전선을 활용해 상대방 전선을 무너뜨리는 전술의 시간입니다. 어떻게 상대방 기물을 떨어뜨리거나 전선을 붕괴시킬지 계산합니다. 때로는 목표를 위해 진형을 다시 배열하기도 합니다.
엔드게임은 수읽기와 수 싸움의 시간입니다. 미들게임으로 인해 기물이 교환되어 소수의 말을 어떻게 생존시키고 상대방 킹을 체크메이트 할지 정밀한 수읽기가 요구됩니다. 이 타이밍에서는 나의 킹도 공격에 참여하게 되고 미들게임에서 존재감이 줄어드는 폰의 중요성이 다시 업그레이드됩니다.
왜냐하면 폰이 생존하여 체스판 끝에 도달해 승진하는 것이 게임을 뒤집을 수 있는 핵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게임의 구성(오프닝, 미들게임, 엔드게임)을 나누는 기준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수순이 완료되어 있다면 오프닝으로 보고, 전술이 부딪힌다면 미들게임으로 보고, 기물이 많지 않아 경우의 수 싸움이 된다면 엔드게임으로 보는 식입니다.
다만 몇몇 체스 선수들은 자의적인 시각을 갖고 엔드게임을 판단합니다. 그 기준 중 하나가 퀸의 생존 여부입니다. 왜냐하면 퀸의 강함은 공격의 변수를 만들기 때문에 서로 퀸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기물의 진형의 단단함이 약해짐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퀸이 없어져서 엔드게임이 되는 것을 리더가 없어지거나 혹은 통솔력이 사라져 팀원이 각자도생(END GAME)하게 되는 상황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퀸은 기물 간의 연대가 단단하고 견고해지도록 뒤에서 지원하고 때로는 빈 곳을 메꿔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퀸이 없다는 것은 견고함의 깨짐을 의미하기에 더 이상 연대의 싸움이 아닌 기물 단독으로 살아남기 위해 정밀한 수 계산을 요구하게 됩니다.
리더가 없는 팀전은 세력과 작전의 싸움이 아닌 개인 생존의 싸움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개인 생존은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팀원조차도 생존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타인이 되게 합니다.
든든함이란 각자의 역할을 지휘하고 빈 곳을 매꿔주기에 나오는 것
리더에게는 요구되는 것이 정말 많습니다.
일의 성패를 이끄는 능력, 팀원을 하나로 규합하는 통솔력, 동기부여를 위해 채찍과 당근을 자유로이 활용하는 인심수람술(人心收攬術)등이 그것입니다.
그에 따라 리더십도 여러 분류로 나누기도 합니다.
변혁적 리더십, 위기관리 리더십, 회생의 리더십 등등이 다양한 리더십 종류가 있습니다.
하지만 퀸을 보면서 결국 리더에게 가장 중요한 본질은 팀원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밀어주며 여의찮을 때는 스스로 그 구멍을 메꾸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사님의 말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리더란 동료를 신뢰하고 일을 맡기되 혹시 동료가 임무를 완수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모든 일을 해놓은 자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