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유리천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크리스탈 Aug 24. 2017

회식의 추억

또는 오래된 트라우마


한달 간의 신입사원 교육을 마치고 130명의 동기들이 모두 전국 영업부서로 발령이 났다. 대학을 막 졸업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사원들이 1년간 전국 영업부서에서 OJT를 시작한 것이다. 대학원을 졸업했건, 박사건, 연구소 지원 인력이던 재무지원 인력이던 모든 미래는 1년 후로 미뤄놓고 대체 뭘 해야할지 모르는 영업이라는 세상으로 등 떠밀려 들어갔다. 회사로서도 신선한 시도라기엔 내부적으로 모험이었고 나 자신을 포함한 동기들에게도 큰 도전이었다.

일부는 OJT기간 중 퇴사했지만 대부분이 1년을 잘 버텼다. 욕먹어 가면서, 손가락질 받아 가면서 꾸역꾸역 시키는 일을 하고 해야할 일을 찾아서 열심히 살아냈다.


내가 배치 받은 부서는 백화점의 수퍼를 관리했는데 이름이 백화점1과. 얼마 후 백화점팀으로 바뀌긴 했는데 배치 받았을 땐 유통사업부 백화점1과였다. 당시 백화점팀은 1,2팀이 있었는데 1팀은 소위 4대 백화점-롯데, 현대, 신세계, 미도파-을, 2팀은 그외 서울 시내 백화점을 담당했다. 나는 미도파 명동, 청량리와 미도파 계열 수퍼 십 수개를 맡았다.


우리팀 팀장은 과장이셨는데 여름에 차장으로 승진하셨다. 무뚝뚝하고 괄괄하신 분이었는데 드물게 매우 기분 좋아하셨던 기억이 난다. 승진 축하 회식을 갔을때 팀장님이 무슨 회전의자 어쩌구 하는 노래를 부르며, 말로만 듣던 넥타이 이마에 묶고 춤추시는 장면을 목격했다. 쇼킹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쇼킹한 건 사실 팀 회식이 아니었다. 같은 본부에 배치받은 대졸 여사원들 대여섯명을 따로 불러 사업부장님이 비싼 술과 밥을 사 주시는 회식이 있었는데 그게 너무 힘들었다. 그 해 입사자 130명 중 여직원이 30명이었다. 회사에서 단독으로 치르는  첫 공채에서 무려 30명이나 뽑은 대졸여직원들 관리 잘 하라고 특명이 내려왔는지 사업부장님은 - 아마도 좋은 마음에 - 특별 회식을 시켜 주신것이라고 생각한다.


회식 장소는 항상 고기집이나 한정식 비스무리한 집이었는데 사업부장님이 중앙에 앉고 양옆으로 대졸여직원들, 앞에도 대졸여직원들을 앉혔다. 그렇게 앉아 있으면 내가 무슨 기생이나 호스테스가 된 느낌이었다. 회식자리를 그렇게 정해주는건 팀 회식할때는 없는 일이었다.

우리팀에는 대졸로 주무대리를 맡고 있던 선배 한명 빼고 나머지 선배들이 꽤 고참들이라 나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났는데 놀리기도 많이 했지만 늘 조카와 여동생의 중간 정도 느낌으로 배려하고 보살펴 주었다. 회식 자리에서 굳이 내가 앉기 싫은 자리에 앉히는 일은 절대 없었다. 그런데 사업부장님의 회식은 밥도 잘 안 넘어가게 사업부장님 옆과 앞에 앉아야 하니 너무나 싫었다.


게다가 주위에 동석한 간부들은 사업부장님 비위 맞추기 정신없고, 조용할만 하면 이어지는 건배제의와 원샷, 술잔이 비면 따르라는 무언의 눈빛, 눈치주기까지 있어서 내가 이러려고 입사했나 자괴감 들고 괴로웠다.


술을 함께 마시는 중 잔이 비면 채울 수 있다. 그러나 그건 내 마음이 원할때이다. 원하지 않는데도 억지로 술을 따르고 재미없는 농담에 웃어줘야 하고, 끊임없는 아부와 허세의 몇 시간을 버티던 경험은 두고두고 회식 트라우마가 되었다. 평소 사무실에선 농담도 하지만 회식 자리만 가면 꿀먹은 벙어리가 되고, 할 말도 전혀 생각나지 않고, 누가 건배제의 하라면 너무 싫고 목석같이 앉아있게 됐다. 그 자리에서 이런저런 회사 이야기를 하며 정보교류도 하고 끈끈함도 다진다는데 회식 자체가 싫으니 아무것도 안됐다. 특히 주위에 높으신 분이 있으면 마음이 너무나 불편해서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눈앞에 있어도 젓가락질 마저 잘 안하게 됐는데 회사를 그만두는 순간까지도 이어졌다.


20여년전 회식은 거의 다 그랬다. 혹자는 그닥 심하지도 않았고 1년차때 몇 번 있었던 일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렇게까지 정신적으로 방어적이고 수동적이 되느냐 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매우 큰 충격이고 태어나서 처음  인간적 모멸감을 느꼈던 일이었기 때문에 쉽게 극복할 수가 없었다. 특히 약간의 결벽증이 있는 나로서는 술잔 돌리기, 술 따르기, 등을 두드리는 척 어깨를 감싸는 것, 이어진 가라오케 2차에서 부르스를 억지로 춘 것 모두가 혐오스러운 기억이고 오랫동안 마음을 힘들게 했던 일이었다.


시간이 흘러 세상이 조금씩 바뀌면서 내가 1년차 회식때 당했던 일들이 성희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때도 이건 이상하다, 옳지 않다고 느꼈지만 뭐가 잘 못 됐는지 무엇이라 칭하여 틀렸다고 할 지 몰랐다. 성희롱이라는 개념 자체가 내게도 회사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내 첫 회사는 나름 직원들에게 청렴에 대한 의식과 규제를 많이 하는 회사였는데 지나고 들어보니 성희롱과 횡령이 없지 않았던 것도 알게 돼서 사람이 있는 곳엔 더러운 일들이 없을 수 없구나 하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회식 안해서 팀웍 떨어지는 팀장


팀장이 되면서 회식은 절대로 내 마음대로 하지 않는 일로 만들었다. 날짜, 메뉴, 장소, 자리배치 전부 팀원들이 정해주는대로 했다. 그리고 회식을 안하면 팀웍에 문제가 생기고 너는 그래서 리더십이 부족하다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지만 반드시 한달에 한번 정기적인 부서 회식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팀원들에게 이야기했다. 뭔가 부서의 공식 회식이 필요한 날엔 1차만 하고 빠지는 것으로 이른 귀가 또는 그들끼리의 즐거운 2차를 보장해주었다.  


회식이란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술을 마셔도 일의 연장이고, 아무리 즐긴다해도 그 자리의 제일 윗사람 눈치를 보고 즐겁게 해주려고 알아서 뭔가를 하게 된다. 난 내가 그런 가해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2차까지 있어도 된다고 허락해 주면 같이 아니면 1차만 마치고 집에 왔다.

그런데 그렇게 1차만 하고 먼저 차를 타고 가는 기분이 즐겁지는 않다. 흔쾌히 자리 박차고 나와 택시를 타면 문득 쓸쓸하기도 하고 야속하기도 하고 내가 뭐 어쩐다고 나만 먼저 집에 와야하나 하는 억울함도 밀려왔다. 하지만 내 존재 자체가 어쩌는 것인데 버티고 있는건 할 짓이 아니다. 그건 마치 시월드의 존재 자체가 괴로움인 사람에게 내가 뭐 어쨌다고 그러냐는 시어머니와 같은 것이니까.


나중에 들어보니 팀원들끼리 뜻이 맞아 삼겹살에 소주 마시는 자리는 나 모르게 많았다고 한다. 역시 보스 없는 회식이 제일 즐거운 것.



911, 서바이벌의 rule breaking


마지막 회사에서 회식 관련 룰이 있었는데 '911'이었다. 9시까지 1가지 술로만, 1차에서 끝내기인데 그게 지켜지는 경우도 많았지만 아닌 경우도 많았다. 특히 고직급자들이나 임원들이 많은 자리, 특히 CEO가 끼는/주최하는 자리는 그게 더 안됐다. 다들 죽을 각오를 하고 마시는 것도 같았고, 그런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미련해 보이기도 했다.

임원들은 다들 오래 하면서도 스스로를 파리목숨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회식은 그들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 같다. 충성심을 보이고 자신을 어필 할 자리로 그만한 기회도 없긴 하다. 그러니 새벽 몇시까지 마셨다는 둥, 몇차를 가서 폭탄을 몇 잔을 마셨다는 둥 하는 이야기를 자랑처럼 하는 것이다. 그만큼 몸으로 시간으로 투자했으니 좀 안심이 되기도 할 것 같다.


소비재회사던 b2b던 제조회사의 회식분위기는 비슷한 것 같다. 금융의 분위기는 좀 달랐고, 잠시 몸담았던 외국계 회사는 또 달랐다. 언급한 순서대로 회식 분위기가 경직성이 줄어들었다. 지금은 세상이 많이 바뀌어서 나의 첫 회사도 그런 분위기는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님' 호칭을 제일 먼저 쓴 곳인데 아직도 그럴리가 있으랴.


친구들하고 가볍게 맥주에 치킨을 하는 것처럼 가볍게 회식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즐거운 일과가 될까 싶지만 회식이란 것 자체가 효용성 낮고 적폐처럼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법인카드로 펑펑 지르던 시대도 지난지 오래니 앞으로 회식비 처리할 예산 항목도 사라지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followership에 대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