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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탈 Aug 19. 2019

농업적근면성으로 조직관리하기

사람을 이해한다는 숙제



직책이 생기면 자신의 일을 더 전문적으로 잘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당연히 잘 해야하고, 전문성도 나아져야 한다. 그런데 이걸 실무자 수준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런데 이건 틀렸다. 직책자의 전문성은 실무자의 전문성과 다르다.



직책이 생기면 사람이 따라 온다. 

일에 대한 포괄적인 책임을 맡게 되면 일과 함께 온 사람에 대한 전적인 책임이 함께 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직책자의 전문성은 의사결정자로서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판단력, 이해, 책임감에 의해 좌우된다. 그러려면 그 일을 하는 조직원의 능력과 한계도 잘 알아야 하고, 상황 이해와 대안도 나아야 한다. 그리고 잘 안됐을 경우 발생할 일을 어떻게 해결하고 책임질 것인지도 분명히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흔히 내 밑에 몇명이다 라고 기고만장할 줄만 알지, 그 몇명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는 책임감에 둔감하다. 자기가 편하고 좋은 것만 조직을 통해 얻으려 하고, 얻은 것만큼의 책임에 대해 자각하지 못한다. 그래서 항상 문제가 생긴다. 조직관리 못한다는 얘기도 듣는다.

일은 사람이 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재밌는건 그 말을 앞세우는 사람 중에 아랫사람의 실수까지 포함해 제대로 된 책임을 지겠다는 사람은 별로 못봤다.
나는 그 반대로,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일에 문제가 생기면 책임은 지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역시 문제있는 생각이었고, 좋지 않은 상황을 만들어냈다.

결국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면 직책자로서 역할수행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참 어렵다. 내가 어떻게 상대의 속을 알 수 있을까. 소위 배려라는 것도 그렇다. 나는 배려인데 상대는 배신이라고 생각하는 상황도 생긴다. 이것도 겪어봤다..

배려는 상대를 그저 편하고 즐겁게 해 주는 일이 아니다.
배려는 상대가 조직내 그 위치에서, 맡은 책임과 의무를 스스로 이해하는 상태에서 충실히 수행하여 성과를 만들 수 있게 해 주는 모든 생각과 태도와 의사결정과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다. 그걸 이해 못하면서 배려해 준다고 하면 상대를 spoiled child로 만들게 되고, 나중엔 그 사람으로부터 원망도 듣는다. 더 편하게 해주지 않는다고 혹은 예전에 어떻게 해줘서 내가 뭘 못했다 라고.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시간이 많이 드는 일


나는 천성이 둔하고 눈치가 빵점이라 조금만 신경을 덜 쓰면 상대가 무슨 상황에 있는지 전혀 감도 못잡는다. 그래서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늘 여러가지 시나리오가 머리속에 번쩍번쩍거리며 지나간다.

엄청 피곤한 일인데 어쩔 수가 없다. 안그러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실수하고, 상처를 주거나,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하게 되니까. 내 DNA에 사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없는게 분명하다. 그래서 조직관리를 하려면, 사람을 이해하려면 농업적 근면성을 발휘해야 한다.


농업적 근면성에 대한 요즘의 평판은 좋지 않다. 21세기에 농업적 근면성은 효율을  떨어뜨리는 주범으로 취급받는다. 그런데 이 방식이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라, 적용되면 성과를 낼 수 있는 곳이 많다. 사람에 대한 이해와 조직관리에는 이 방식이 잘 맞고 필요하다.

왜냐하면 아무리 능력있는 조직장이라도 일개 한 개인으로 수 많은 조직원을 한방에 깔끔하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신이 아닌 이상.

한 사람을 이해하는데도 시간이 걸리는데 두 명 이상의 조직원이 있다면 시간은 훨씬 많이 들어가는게 당연하다. 속성법으로 사람을 이해할 수 있고,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인간관계에선 그런게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알아가고 이해하는 수 밖에.

설령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다해도 상대를 완벽하게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노력하지 않으면 나만의 착각에서 배려하고 행동하다가 그게 전부 헛일 이란 것을 알게 되고, 지치고 의욕이 사라진다.

그래서 매일 꾸준히 사람에 대해 생각하고, 이해하려는 시간을 가지고, 노력하고, 나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 그대로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과업을 농업적 근면성으로 하던 시대는 지났지만,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농업적 근면성을 발휘해야 하는 일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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