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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다미 Feb 13. 2023

미역국은 왜 지겹지 않을까?

  낮에 산책 나갔다가 장을 볼까 말까 고민하다 그냥 들어왔다. 아들은 놀이공원 가서 늦게 온다고 했고, 남편은 저녁을 먹고 들어오는 날이 잦았기 때문이다. 미리 준비해 뒀는데 아무도 먹지 않으면 기분이 좋지 않아서 먹을 사람이 있을 때만 음식을 한다. 남편에게 집에서 저녁 먹으려면 미리 말해달라고 톡을 보내고 들어왔다. 나는 가족이 없으면 그냥 한 가지 반찬으로 대충 때운다. 대충 먹는 습관은 보고 배워서 그런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 바쁜 엄마는 언제나 국그릇에 밥 한 숟갈 말아서 마시듯 식사를 하셨었다. 차분히 식사하시는 모습을 본 기억도 당신을 위해서 음식 하시는 모습을 본 기억도 없다. 나는 바쁘지 않은데도 이상하게 나를 위한 상을 차리기가 어색해서 따로 준비하지 않고 그냥 먹는다.


  몇 시간 뒤 집에서 저녁 먹겠다는 남편의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마트에 다녀왔다. 야채 코너부터 한 바퀴 돌다가 포항초가 맛있어 보여서 바구니에 담은 뒤 이것저것 조금 더 담았다. 마지막으로 육류 코너로 갔다가 한우 국거리를 보고 미역국 끓였다는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내일 점심 약속이 있기 때문에 아들을 위해 미역국을 끓여 놓기로 마음먹고 국거리를 집어 들었다. 이상하게 집을 비울 때는 미역국이 있으면 든든하다. 그러고 보니 어렸을 때 엄마가 서울 가실 때마다 미역국이 있었던 듯하다. 나도 모르게 나오는 행동이 엄마를 닮았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엄마 없이 사는 세상에 적응이 됐다.




  미역을 불려놓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뭐 하세요?"

  "미역국 끓이려고요"

  "안 어울려요."

  "하하 그런가요? 그래도 저 20년 넘은 주부랍니다."

  아이들 어렸을 땐 하루 세끼 밥하던 사람인데, 불과 몇 해전 회사 다닐 때만 해도 간식 만드는 등의 일은 내가 했었는데 어느새 나는 주방과 안 어울리는 사람이 되었다. 가족들이 안 먹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요리와 거리 두기를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딸이 집을 떠난 뒤 음식이 더 하기 싫어졌다. 그리고 입버릇 처럼 하는 말이 "저 음식 못해요."였다. 그러니 내가 음식을 한다면 어색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색하다는 말이 이상하게 기분 좋았다. 그 핑계로 책상에 좀 더 오래 앉아있고 싶어서일까.


  고기를 볶고 미역을 볶은 뒤 물을 붓고 한참을 끓이자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다. 활화산이 끓듯이 팔팔 끓는 냄비 속을 한참 바라보다 미역국은 왜 지겹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미역국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생일이면 인사말이 "미역국 먹었어?"이다. 아이를 낳을 때도 가장 먹는 음식이 미역국이다. 생일날 우연히 미역국을 먹으면 큰 생일 선물을 받은 듯했다.


  아들 낳던 날 밤 10시 17분. 몇 분 전까지 생사를 오락가락했었는데 아이를 낳고 난 뒤 바로 일어서서 입원실로 향했다. 아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난 잠시 뒤 간호사 선생님은 커다란 쟁반에 밥과 미역국을 들고 들어왔다. 냉면 대접에 담긴 미역국을 들이밀며 다 먹으라고 했다. 나는 숙련자답게 아기 낳고 30분 만에 미역국 한 그릇을 비웠었다. 빈 그릇을 보며 피식 웃음이 났었다. 방금 전까지 숨도 못 쉬면서 고통스러워했었는데. 고통이 사라지자마자 미역국을 비운 내가 이상하게 느껴졌었다. 신기하게도 산후조리하는 동안 매일 먹는 미역국이 지겹지 않았다.


  보글보글 끓는 미역국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이런저런 생각하며 한솥 끓여놓고 나니 마음이 넉넉하다. 내일 맛있게 먹어줄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기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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