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은 움직임이자 문학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춤은 고고학이자 신비주의, 음악, 미술, 시, 그리고 연극입니다.
춤은 삶과 문화를 무엇보다도 잘 들여다볼 수 있는 창입니다.
- Chitra Visweswaran
나는 춤 공연 관람을 좋아한다. 발레처럼 고급스러운 공연도 좋지만 각 지역의 전통 춤 공연을 특히 좋아한다. Chitra Visweswaran의 말처럼 춤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잘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이기 때문이다. 외국 여행할 때는 현지의 전통 춤 공연을 일부러 찾아서 본다. 보통 관광객용 공연은 정식 공연장의 큰 무대 위가 아니라 식당 한쪽에 있는 무대에서 열리는 경우가 많다. 식당 앞쪽에 무대가 있고 관객은 저녁을 먹으면서 보는 디너쇼 같은 형태이다. 또 보통은 댄서들의 공연이 끝난 후에 관객 중 몇 명을 골라 무대 위에서 같이 춤을 추게 한다. 너무 열심히 봐서였을까? 대부분의 경우에 나는 그 몇 명 중에 한 명이 되어 무대에 올라갔다.
처음으로 보았던 춤 공연은 플라멩코였다. 2000년대 초반, 스페인에서 살던 때였다. 대만에서 스페인으로 출장 오는 친구를 바르셀로나에서 만나기로 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한국인 부부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다. 친절한 아줌마, 아저씨는 바르셀로나에서 꼭 봐야 할 곳들을 알려주었다. 사실 주인아저씨는 본업이 따로 있었다. 바로 침술사였다. 단골손님들 중에는 플라멩코 댄서들이 많다고 했다. 친구와 나는 아저씨의 단골 댄서들이 공연하는 식당으로 플라멩코를 보러 갔다. 공연에 앞서 먼저 밥이 나왔다. 밥을 거의 다 먹을 때 즈음에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었다. 공연을 관람하며 음료나 술은 마셔도 되는데, 친구와 나는 주인아저씨 덕에 상그리아를 추가 비용 없이 맘껏 먹을 수 있었다. 처음 보는 플라멩코도 멋있었고, 처음 먹어 보는 상그리아도 아주 맛있는 정말 즐거운 공연이었다. 댄서들의 공연이 끝나고 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무대 위로 데려가 같이 춤을 출 관객을 고르기 위해서였다. 댄서의 선택을 받은 관객은 보통은 한두 번 빼다가 못 이기는 듯 끌려간다. 그런데 나는 댄서가 손목을 잡기도 전에 벌떡 일어서서 무대로 올라갔다. 아니 올라갔다고 했다. 그리고 손을 잡고 같이 춤을 췄다. 아니 춤을 췄다고 했다. 그랬다.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맛있다며 들이켰던 상그리아에 취해서 무대 위를 휘젓고 다녔다고 들었다. 나의 첫 공연(?)은 고스란히 친구의 카메라에 녹화되었고 한동안 친구의 말이라면 무조건 다 들어줘야 했다.
몇 년 후 페루의 쿠스코를 여행할 때도 공연을 보러 갔다. 쿠스코 지역의 민속춤을 추는 정통 무용단의 공연이었다. 장소도 식당이 아니라 번듯한 공연장이었다. 당연히 고 퀄리티의 공연일 거라 기대했는데,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공연은 무척 실망스러웠다. 노래도 잘 못 했는데 춤은 더 못 췄다. 아무리 노래와 춤을 동시에 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해도 이건 좀 심하다 싶을 정도였다. 제자리에서 콩콩 뛰거나 팔동작만으로 이어지는 단순한 춤으로, 마치 유치원 아이들의 재롱잔치를 보는 것 같았다. 지루한 공연이 끝나고 역시나 관객과 함께하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댄서의 선택을 받았지만 별로 올라가고 싶지 않았다. 안 하겠다고 했지만 집요한 요청에 어쩔 수 없이 올라갔다.
‘내가 더 잘할 것 같은데… 거봐 이렇게 쉬운데…’라는 오만한 생각으로 따라 했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정말 내가 더 잘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숨이 차올라 주저앉고 말았다. 그제야 떠올랐다. 우리가 있던 곳은 3,000 미터가 넘는 고산지대였다는 것을… 그 전날에도 기차를 놓칠까 봐 1분 정도 뛰었다가 죽을 뻔했다. 이번에는 1분 정도 제자리에서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서 죽을 것 같았다. 나는 주저앉았는데도 파트너는 끝까지 웃으며 노래하며 춤을 추었다. 역시 프로는 달랐다. 단순한 춤 동작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대학원을 졸업한 뒤 우리나라로 돌아와 취업했다. 외국 기업이라 휴가 사용에 여유가 있었다. 어느 해 어려운 프로젝트를 마치고 3주간의 휴가를 얻었다. 3주를 알차게 보내기 위해 문화와 자연경관과 해양 스포츠를 모두 경험할 수 있는 이집트에 가기로 했다. 그때는 마침 ‘아랍의 봄’이라고 불렸던 중동의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던 시기였고, 출국 당일 카이로에서 첫 시위가 예정되어 있었다. 조금 망설여졌지만, 공식적인 여행 경보가 뜨지 않아서 출발하기로 했다. 걱정과는 달리 첫 주에는 피라미드에도 가고 사막에서 캠핑도 했다. 문제는 두 번째 주부터였다. 카이로의 공항이 폐쇄되고, 전국의 버스와 기차 운행이 중단되었다. 카이로의 공항이 폐쇄되기 직전에 다행히도 마지막 비행기를 타고 남쪽의 후루가다(Hurghada)라는 곳에 도착했다. 여기에서 국외는커녕 이집트 국내 어느 곳에도 갈 수 없었다. 꼼짝없이 발이 묶여서 언제 떠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며칠 지나자 ‘어쩔 수 없다면 그냥 즐기자’라는 자포자기 심정이 되었다. 덕분에 오랫동안 꿈꿨던 다이빙을 할 수 있었다. 후루가다는 홍해에서도 예쁜 바다로 유명한 곳이다. 밤에는 나처럼 발이 묶인 여행자들과 어울렸다. 그중에는 외국인뿐만 아니라 카이로에서 피난(?) 온 가족도 있었다.
어느 날 그들을 따라 나이트에 놀러 가기로 했다. 그런데 그곳의 나이트는 춤을 추러 가는 곳이 아니라 춤을 보러 가는 곳이었다. 이집트에서 기원한 전통 춤이라고 했다. 아랍문화의 전통 춤이니 당연히 히잡을 쓰고 몸을 전부 가린 댄서들이 조신하게 춤을 출 거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여자 댄서들이 배꼽을 드러내며 춤을 추고 있었다. 나름 많은 전통 춤을 봤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이 추는 춤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움직임이었다. 정신을 놓고 보고 있는 그 춤은 벨리 댄스(Belly Dance)라고 했다. 벨리 댄스와의 첫 만남은 이렇게 충격 속에서 시작되었다.
일곱 살짜리 꼬마까지 모두들 손뼉을 치며 재미있게 공연을 즐기는 중에, 즐기지 못하는 단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나였다. 공연을 즐기지 못했던 건 춤에 넋을 놓고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화려한 의상, 춤과 물아일체의 경지에 도달한 것처럼 보이는 댄서, 그리고 이국적인 음악까지...
그동안 발레, 플라멩코, 탱고 등 다양한 춤을, 디너쇼 공연부터 큰 무대의 화려한 공연까지, 많은 공연을 보았지만 그렇게 강렬한 경험은 처음이었다. 공연 내내 말이 없고,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도 조용한 나를 보며 친구들은 재미가 없었냐고 물어보았다. 아마도 친구들의 눈에는 그들과 달리 신나게 즐기지 못하는 내가 이상해 보였나 보다. 그들의 오해와는 달리 나는 그날 이후 떠나는 날까지 매일 벨리 댄스 공연을 보러 갔다. 처음 볼 때는 그저 춤과 음악에 압도되어 눈과 귀가 홀린 듯한 경험이었는데, 여러 번 보다 보니 왜 그렇게 넋을 잃고 빠져들었는지 알 것 같았다.
먼저 몸을 움직이는 방법이었다. 많은 춤을 봤지만 벨리 댄스에서 몸은 쓰는 방법이나 안무는 본 적이 없었다.
‘배가 어떻게 저렇게 움직일 수 있지?’
춤을 추는 댄서의 배는 물결처럼 움직였다. 천천히 파도처럼 움직이기도 하고 아주 작은 파동이 이는 것처럼 빠르게 움직이기도 했다. 배뿐이 아니다. 가슴에 파동을 만들 때는 정말 볼 때마다 놀라웠다.
‘볼록한 뱃살이 왜 보기 싫지 않은 거지?’
그동안 봤던 춤, 발레는 물론, 플라멩코, 라틴 댄스 등을 추는 대부분의 댄서들은 날씬, 아니 마른 체형이었다. 당연히 춤을 잘 추려면 살이 없고 말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벨리 댄서는 달랐다. 두둑한 뱃살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거침없이 배를 움직이며 춤을 추고 있었다. 어떤 동작은 뱃살이 없었다면 볼품없었을 것도 있었다. 나를 압도한 건 그저 아름다운 춤 동작이 아니라 그들의 자존감이었다. 자신의 몸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나는 한 번도 갖지 못했던 바로 그 자존감이었다.
그렇게 벨리 댄스에 홀려서 지내던 중에 카이로에서 새로운 소식이 들렸다. 시위가 시작된 지 18일 만에, 즉 내가 이집트에 온 지 18일 만에 무바라크 대통령이 결국 사임을 결정했다는 뉴스였다. 30년이나 장기 집권하던 대통령이 18일 만에 물러난다고 했다. 이집트 국민에게는 승리의 소식이었고, 나에게는 드디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소식이었다. 카이로의 공항이 열린 걸 확인하고 비행기표도 다시 확인했다. 이집트를 떠나기 전에 꼭 사야 할 게 있었다. 후루가다에서 제일 큰 쇼핑몰에 있는 벨리 댄스 의상을 파는 곳에 들렀다. 가장 먼저 집어든 건 힙스카프였다. 고급 동전이 달려 맑고 경쾌한 소리를 낸다는, 제일 비싼 힙스카프를 골랐다. 이제 치마와 탑을 골라야 했는데, 쉽지 않았다. 처음 입어보는 벨리 드레스가 민망하기도 했지만 맞는 사이즈가 없는 게 더 큰 문제였다. 이집트 여성, 특히 벨리 댄스를 즐기는 여성과 나는 체형이 달라서 가장 작은 사이즈도 너무 컸다. 성인용은 안 되겠으니 아동용을 입어보라는 굴욕적인 소리까지 들었다. 결국 아동용을 입어봤지만 아동용은 또 너무 작았다. 어쩔 수 없이 가장 작은 성인 사이즈를 집어 들었다. 한국에서 수선하면 된다고 우겼다.
그동안 함께 지내던 친구들과 아쉬운 작별 후에 비행기에 올랐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이렇게 이집트에 눌러앉는 건가?’ 걱정했는데, 포기하지 않고 싸운 이집트 국민들 덕분에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휴가가 끝나자마자 벨리 댄스를 배울 수 있는 곳을 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