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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하 Sep 09. 2023

성실의 아이콘, 무대에 서다

얼마나 많은 실수를 하든, 아무리 발전이 느리든 간에 당신은 시도하지 않는 사람들에 비해 이미 훨씬 앞서 가고 있습니다.

    - 토니 로빈스   

                                             

  여름에 시작했던 새로운 수업이 가을, 겨울을 지나고 봄이 되면서 어느새 1년이 다 되어 갔다. 그동안 한 번도 안 빠지고 다녔더니 학원에서는 성실의 아이콘이 되었다. 일을 안 했던 때라 그곳이 아니면 갈 곳도 없고 딱히 다른 할 일도 없어서 그랬던 것뿐인데... 한두 달 다니다 말거나, 등록 기간 중에도 바쁜 일 핑계로 빠지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랬는지 선생님은 나를 매우 기특해했다. 나 또한 한 곳을 이렇게 오래 다녔던 적이 없었던 지라 뿌듯했다.

일 년 가까이 안 빠지고 다니며 연습하다 보니 웬만한 기본 동작은 다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짧은 음악에 맞춰 단순한 안무만 반복하는 ‘작품’도 너무 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슬슬 재미없다고 느껴지고 있을 때였다. 선생님이 내 마음을 읽었던 걸까? 어느 날 수업 전에 공지로 공연 얘기를 꺼냈다. 석 달 뒤에 학원 연합회 공연을 할 예정인데 성인 초급반도 참여하자고 했다. 조금 난이도를 높인 새 작품으로 3개월간 연습한 뒤 무대에 오르자고... 1년 전 다시 시작할 때만 해도 열심히 연습해서 공연도 하고 대회도 나가겠다는 꿈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실제로 공연 얘기를 듣자 망설여졌다.

‘안무를 못 외워서 무대에서 얼어붙는 건 아닐까?’

‘혼자 실수해서 망신당하지는 않을까?’

‘배가 훤히 드러나는 옷을 입고 사람들 앞에 선다고…?’

‘나이 들어서 주책이라는 말이나 듣는 거 아냐?’

등등 자신감을 꺾는 소리만 들렸다. 서로 눈치만 볼 뿐, 참가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마도 모두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 거다. 시간을 좀 두고 생각해 보기로 했다. 어쨌든 새 작품을 시작했다. 조금 어렵다고 했는데... 많이 어려웠다. 공연용 작품이라 그런지 안무뿐만 아니라 자리를 맞추고 대열을 바꾸는 것도 있었다. 이걸 외워서 사람들 앞에서 보여준다고? 하겠다고 손들지 않았던 게 다행이었다.


그런데 진짜 ‘성실의 아이콘’은 따로 있었다. 선생님은 포기하지 않고 한 명씩 따로 얘기하며 설득했다. 초급반 중에서도 무대에 서 본 경험이 있는 선배를 초대해 공연을 준비하며 열심히 연습했던 과정, 무대에 섰을 때의 설렘, 공연이 끝난 뒤의 보람 등을 간증(干證)하는 시간도 가졌다. 한 달간에 거쳐 한 명, 한 명 설득되기 시작했고 우리는 모두 공연에 참가하기로 했다. 공연을 하기로 하자 좀 더 집중해서 연습하게 되었다. 아직 전체 안무를 다 외운 것도 아닌데 이제 겨우 두 달 밖에 안 남았다. 제일 못하니까 실력으로는 막내였던 초급팀이 공연을 망쳐서는 안 되니까...

여름이 되고 날씨가 더워지면서 빠지는 사람이 늘었다. 두 달간 열심히 연습하자던 결심은 어디로 갔는지, 비가 와서, 날씨가 너무 더워서, 또 휴가를 간다며 하나둘씩 빠졌습니다. 이제 겨우 안무를 다 외웠을 뿐인데... 돌아가며 한 명씩 빠지다 보니 대열을 맞추는 것도 어려워졌다. 몇 번 빠졌다 온 사람은 안무도 다 잊어버리더니 못 하겠다며 공연에 불참하겠단다. 날도 더운데, 불쾌지수가 높아서 더 그랬던 걸까? 조금씩 화가 났다.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자고 시작한 춤인데 짜증이 늘다 보니 하기 싫어졌다.

‘나도 안 하겠다고 할까?’

안 하겠다는 사람이 늘어갈수록 불안해지며 하기 싫은 마음도 커갔다. 이제 겨우 한 달 남짓 남았는데... 콘셉트랑 의상도 준비해야 하는데…

이 공연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처음에 걱정했던 대로 무대에서 망신만 당하는 건 아닐지, 온갖 잡생각에 연습에 집중할 수 없던 어느 날. 

사달이 나고야 말았다. 


공연이 한 달도 남지 않았던 어느 날이었다. 휴가 갔다 온다며 2주일 동안 안 나왔던 사람, 바쁘다며 1주일을 빠졌던 사람, 그냥 한 번씩 빠지는 사람 등이 모처럼 모두 출석한 날이었다. 처음으로 다 같이 모여서 안무를 맞춰봤다. 가관이었다. 대열을 맞추기는커녕 안무를 끝까지 외운 사람도 없었다. 대놓고 옆 사람을 보며 따라 하는 사람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잊어버렸다고 그냥 서 있거나 아예 다른 동작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음악이 끝나자 다행인 듯 안도의 한숨을 쉬는 사람, 고개를 못 드는 사람, 민망해서였는지 웃기만 하는 사람 등 반응도 다양했다. 선생님도 한심했는지 그냥 웃기만 했다.

“그래도 공연인데 이렇게 해서 될까요? 한 달도 안 남았는데...”

짜증을 참으며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처음에 미안해하던 사람들이 시간이 갈수록 뻔뻔해졌다.

“그래서 안 한다고 했잖아.”

“이게 최선이야. 나도 몰라.”

“그냥 나 빼고 해.”


성인 취미반 학생들에게 공연에 올릴 정도의 노력을 바랐던 게 무리였을까? 연습을 거듭해도 나아질 것 같지 않았고, 다들 짜증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지친 학생들을 다독이며 같이 연습하던 선생님도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었나 보다. ‘진짜로 못 할 것 같은 사람’을 물어보았다. 나와 한 사람을 빼고 모두 손을 들었다. 못 하겠다는 사람들을 계속 데리고 해 봤자 서로 힘들 뿐... 그나마 하려고 했던 두 사람도 기운이 빠지고 점점 힘들어졌다. 처음부터 별로 하고 싶지 않던 사람들을 억지로 데리고 하려던 게 문제였던 것 같다. 그들은 그냥 시간이 날 때 운동삼아 취미로 하려던 거였고, 그 이상은 할 생각도, 필요도 없었던 거다.

그렇게 네 명이 빠지기로 하고 고등학생의 엄마와 나, 두 사람만 참가하기로 했다. 대대적인 안무 수정이 필요했다. 수정된 안무에 따라 콘셉트도 바꾸고 여기에 맞게 의상과 메이크업도 다시 구상해야 했다. 거의 다 선생님의 일이라 내가 할 일이 크게 달라진 거나 많아진 건 아니었다. 하지만 여섯 명이 하는 군무와 두 명이 하는 듀오 댄스는 부담감의 무게부터 달랐다. 여섯 명이 할 때는 앞줄에 있다가 뒷줄에도 갔다. 뒷줄에 있을 때는 좀 틀려도 눈에 띄지 않고, 안무를 잊어버리면 앞사람을 보면서 할 수도 있었다. 둘이서만 하게 되자 뒷줄이 없어졌다. 동작이 생각 안 난다고 해서 옆을 볼 수도 없고, 또 본다고 해도 보이지도 않았다.

‘나도 그냥 안 한다고 할걸.’

후회가 밀려왔지만 너무 늦었다. 남은 두 사람만이라도 끝까지 하자고 약속했던 터라 혼자 빠질 수도 없었다. 사실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이미 주위 사람들에게 공연에 대해 말했고 초대도 했다. 처음이자 마지막 공연이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다시는 없을 일이라 여겨 당시에 매주 만나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 모두를 초대했다. 꼭 제일 앞에서 볼 거라며 기대하는 친구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아니 꼭 한 번 무대에 서 보고 싶었다. 벨리 댄스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꿈꾸던 모습이었으니까... 힘들다고, 부끄럽다고 이제 와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벨리 댄스는 그때 유일하게 성취감을 느끼는 일이었다. 아니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는 유일한 일이었다. 그런 일을 부담스럽다고 그만둘 수는 없었다. 오히려 나머지 한 사람, 고등학생 엄마가 그만둘까 봐 걱정이었다. 아무리 성취감을 느끼는 일이라 해도 혼자서 한다는 건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그만두지 말자고 볼 때마다 둘이서 다짐했다. 그분마저 그만 두면 내가 아니라 선생님이 포기할 것 같았다. 첫 무대에 독무를 추게 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




 그림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o0axUoy4wb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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