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가본 사람만이 아는 평온함
날씨도 도와주지 않았다. 하필이면 그 해의 가장 더운 여름날, 아이도 나도 폭발했다. 반쯤 누워서 하품을 해대는 아이는 온몸으로 하기 싫다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뱉었다.
“똑바로 앉자.”
“똑바로 앉은 건데요?”
“다시 한번 제대로 읽어봐.”
“모르겠어요. 하기 싫어요.”
날씨 탓이었을까? 뚜껑이 열린다는 것이 이런 느낌이었나 보다. 그동안 억눌렀던 화가 폭발하고 말았다.
“그럼 하지 마. 이제 그만하자”
라며 책을 덮고 수업을 끝냈다. 아이는 예상을 못 한 듯 잠시 머뭇거리다 나갔다. ‘그만하자’는 <노인과 바다> 또는 이번 수업만을 말하는 건 아니었다. 지훈이와의 영어 읽기 수업을 그만, 적어도 잠시 쉬자는 의미였다. 엄마에게 털어놓았다는 지훈이의 속마음도 그런 듯했다. 재미도 없고 너무 힘들어서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3년간의 수업을 마무리 지으려 했다.
1주일 후 지훈이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1주일간 쉬면서 생각해 봤는데 이렇게 중간에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단다. 힘들게 반이나 읽었는데 그만두는 게 너무나 아깝다며 <노인과 바다>는 끝내고 싶다고... 기특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됐다. 재미없던 책이 갑자기 재미있어질 리는 없다. 힘들었던 게 쉬워질 리 또한 없다. 끝을 보고 싶다는 욕심만으로는 아이도 저도 둘 다 힘들 것이 뻔했다. 하지만 지훈이의 결심은 단호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때까지 <노인과 바다>를 끝까지 읽어본 적이 없었다. 이번이 아니라면 평생 <노인과 바다>는 평생 완독을 못하는 책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마음을 돌려 다시 읽기로 했다. 나도 한 번은 <노인과 바다>를 끝까지 읽고 싶었다.
다시 시작한 책은 여전히 지루했지만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마침 노인이 배보다 큰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는 장면들을 읽었다. 불가능할 것처럼 어려운 일을 이겨내는 노인의 의지가 어려운 책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으려는 자신의 노력과 겹쳐 보였나 보다. 손에 피가 흐르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노인의 힘겨움과 비할 수야 없겠지만,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지만큼은 마찬가지였다. 지훈이는 노인의 고난과 투쟁을 읽으며 더욱 힘을 얻는 것 같았다.
상어 때문에 그동안의 죽을 고생이 헛수고가 되었을 때, 혹시 아이가 실망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자신의 노력도 헛되다 생각할까 두려웠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아이는 노인이 결과를 받아들이며 평안하게 잠자리에 드는 부분을 읽으며 좋아했다. 최선을 다한 후에는 결과가 어떻든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인간은 파멸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는다)”
지훈이는 <노인과 바다>를 통해 헤밍웨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텍스트가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며 배운 것이다. 이 경험은 앞으로 아이가 어려운 일에 부딪힐 때마다 큰 힘이 될 것이다. 끝까지 가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격을 이미 겪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