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글에서 말한 것처럼 호주는 최저시급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그 사실은 고용에서 상대적으로 고용인의 힘을 강하게 만들어준다. 호주에서는 알바생들이 일을 못하면 해고되는 것이 꽤 흔한 일이다(나도 호주에 있는 동안 두 번 해고를 경험했다). 소위 말해서, 네가 아니라도 그 돈 주고 고용할 사람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에 비해서 알바할 때 조금 더 열심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2018년 6월 말에 나는 첫 출근을 했다. 내가 사는 본다이 비치에서 카페까지는 한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버스 타고 기차 타고 다시 버스를 타는 긴 여정이었다. 나는 내가 사는 곳이 좋기도 했지만, 처음 쉐어하우스에 들어갈 때 최소한 6개월을 살겠다고 약속을 했기 때문에 직장 근처로 이사 가지 않고 계속 머물렀다(지금 생각하면 그냥 나가도 되었는데 내가 좀 순진했던 것 같다).그 당시 출근 시간이 9시이었는데, 초반에는 매일 30분씩 일찍 출근을 했다. 굳이 잘 보이려고 그랬던 것이 아니라, 그냥 빨리 일터로 가고 싶었던 것 같다. 첫 출근을 했더니 이미 사장님을 포함한 모든 동료들이 출근한 상태였다(호주 카페는 보통 오전 6시에 문을 열어서 오후 3~4시에 문을 닫는다).
카페 이름은 Vespa cafe(이탈리아 오토바이 브랜드 이름)이고 바리스타 호주인 리자 그리고 홀 서빙 호주인 마리가 홀 팀이었고 여자 사장님(한국인)과 그녀의 남편 호주인 요리사 필립 그리고 또 다른 요리사 사장님 친오빠 조셉은 주방 팀이었다. 나의 임무는 주방과 홀은 넘나드는 올라운드 플레이어(이름은 그럴듯하지만 그냥 잡일을 도맡아 한다)였다.그리고 여 사장님의 부모님도 한 집에서 함께 살아서 거의 매일 가게에 나와서 일을 도와주셨다(호주인 남편 필립은 본의 아니게 처가살이하는 중이었다). 나의 사수는 조셉 형이었다. 그는 처음 면접 볼 때부터 나에게 큰 호감을 보여주었다(아마도 심심했거나 내가 여자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좋게 보였나 보다). 그는 영어를 잘했고 영국과 호주에서 5년 이상 살면서 요식업과 청소업을 두루 거친 베테랑이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그가 아니었다면 그곳에서 잘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어 잘못하고 한국에서 서비스업 경험이 없었던 내가 그곳에서 버틸 수 있었던 비결은 조셉형의 지극한 돌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호주 카페는 한국 카페와 달리 커피와 베이커리뿐만 아니라 피자, 파스타, 그리고 각종 이태리 요리 등을 판매하는 엄연한 음식점 역할을 한다. 그래서 직원 입장에서 외워야 하는 메뉴가 꽤 많은 편이다. 또 하나 한국 카페와 다른 점은 손님들이 주문하는 방식이다. 호주인들은 커피 하나 주문하면서 여러 가지 주문을 덧붙인다. 예를 들어, 라때 한 잔을 주문하면서 "weak skim milk latte with two sugar"(라때 저지방 우유에 커피 연하게 설탕 두 개 넣어 줘)라고 말한다. 그리고 샌드위치는 더 가관이다. 빵 종류부터 시작해서 속에 들어가는 토핑 일일이 다 정하고 빵 굽기와 소스 양까지 정한다. 그래서 나는 초반에 주문받는 게 제일 떨렸다. 왜냐하면 내가 할 수있는 큰 실수들은 모두 주문받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한 번은 여중생이 치킨버거에 마요를 빼 달라고 한 것을 더 넣어달라는 것으로 듣고 주문을 넣었다. 더 가관은 기겁하고 다시 나에게 들고 온 것을 나는 마요가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더 넣어서 다시 갔다 줬다(지금 생각해도 민망하다). 그 여중생은 또 나를 찾아와야 했고 수습은 조셉 형이 다시 만들어주는 것으로 해야 했다. 나는 나의 서툰 영어로 그녀의 소중한 시간 20분을 뺏어간 것이다. 사실 이 정도면 그 자리에서 해고당해도 할 말이 없었다. 조셉 형이 옆에 딱 붙어서 가르쳐주지 않았고 나의 실수를 덮어주지 않았더라면 얄짤없이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한 달 정도가 흐르니 영어는 서툴러도 메뉴가 모두 숙지되었고 손님들이 하는 말은 한정되어 있어서 그럭저럭 내 역할은 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그때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풀타임으로 일해보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새롭고 재미있었다. 야채 손질하는 것부터 주문받기, 청소와 설거지 그리고 손님들과 수다 떠는 것까지 너무 즐거웠다. 대부분 호주 카페가 그러하듯 우리 카페도 대부분 단골손님이었는데, 직원들과 친해서 매일 담소를 나누곤 했다. 한 번은 내가 중년의 여성 단골(이름을 까먹었다)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말했다. "너는 지금도 아름답지만 나는 너의 젊은 시절이 보여. 나는 네가 그 당시에 정말 예뻤을 거라고 확신해". 나는 당연히 진심으로 말했고 그 마음을 알았는지 그녀는 기뻐했다. 주변에 있던 동료들도 나를 기특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그리고 또 다른 단골손님 매일 콜라와 초코바를 사러 왔던 중년의 남자 크리스는 잘 웃는 유쾌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가 좋아서 매번 장난을 쳤다. 그가 고기 파이를 주문하면 가져다주면서 "여기 당신의 사랑스러운 파이가 왔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면 그는 유쾌하게 웃으며 화답해줬다. 돌이켜보면 다 좋은 추억인 것 같다. 글을 쓰다 보니 숨어있던 추억을 캐낸 것 같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