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이 허기진 밤 #038
20대 초반의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하고 싶은 것으로 삶이 충만했다. 물론 게으르기도 했지만. 그걸 감안하고서라도 나의 버켓리스트는 100개로 부족할 정도였다. 혼자 다녀왔었던 여행이라던가, 글을 써서 출판을 했다거나 하는 건 나의 소소한 자랑거리였다. 정형외과를 갈 일이 있어도 정신과는 나와 상관없는 그런 영역에 있는 곳이었다.
딱 하나, 가고 싶다고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나는 나를 알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스스로를 알아볼 수 있는 다양한 심리테스트와 같은 검사들이 도처에 널리고 널렸지만 그건 결국 나를 내가 평가하는 것일 뿐, 신빙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가령 MBTI에서 F가 나온 들, T가 나온 들 내가 나를 평가해서 나온 결과일 뿐 어찌 보면 내가 나를 평가하기에 바라는 나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생각하기에 정신과는 그런 나를 객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고, 한 번쯤은 가보고 싶었다. 나를 좀 더 객관화하여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아니었다.
20대 후반쯤 들어서 나의 감정의 기복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크게 화가 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은 죽어야 바뀌지 라는 생각으로 원래 저런 사람이니까 하면 마음이 편했다. 내가 혹시 실수해서 일이 틀어져도 절망하면서도 해결책을 찾느라 노력했고 끝나면 안도했다. 그러니 나에게 극단적인 감정이 들어갈 틈이 별로 없었다.
단 하나 빼고.
어쩌면 올해는 나에게 있어서 최악의 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나의 삶의 의미는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었다. 회사를 떠나 새로운 직종을 경험하길 원했다. 이젠 신입으로도 들어갈 수 없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또한 나는 늘 흥미를 찾아다니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나의 원동력이기도 했다. 여자친구는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우리는 헤어졌다. 그리고 나의 모든 흥미도 동력을 잃었다. 나는 모든 것에 무관심하고 무가치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여자친구는 나의 하나뿐인 동력원이었다.
참을 수 있었으나, 올해 가을이 되어서야 나는 감당할 수 없는 무기력에 빠졌다. 더불어 자살충동까지. 자잘한 것들까지 나열할 수는 없지만 크게 생각해 보면 지나간 일에 대한 더 미친듯한 후회, 아무리 고민해도 보이지 않는 미래, 큰일이 없는데도 생기는 불안과 우울 그리고 심장의 답답함이 나를 죄었다. 특히 심장의 답답함은 육체적인 증상으로 나오는 것이라 힘들었다. 혼자 산책을 하고 있으면 온갖 잡생각에 휘말리게 되고 어느 순간 버틸 수 없었다. 나는 걷다가 멈추고 심장을 움켜쥐고 들숨, 날숨을 평소보다 세게 쉬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호흡이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이런 증상들은 한번 있었던 건 아니었고 그전에도 꾸준한 증상들이었으나 유독 올해는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정신과에 가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계기가 되었다.
내가 정신과에 가기 꺼려했던 요소들은 많았다.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모르고, 상담 가격은 건너 건너 듣기에 악명이 높았다. 그리고 정신과에 들어간다면 나는 더 이상 정상인이 아니게 되어버릴 수 있다는 막연한 공포도 다가왔다. 그리고 어느 정신과에 가야 할지도 몰랐다. 지도에서 검색해 보면 학생들의 집중력을 강화한다거나 성인 ADHD에 관한 것들. 혹은 아이들에 관한 게 많았지만 성인에 대한 것은 찾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일단 나의 이 증세를 완화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지역 보건소에 전화를 했다.
보건소에서는 지원사업이 있다며 설명해 주었고 이 혜택을 제공해 줄 수 있는 병원 리스트를 문자로 보내주었다. 여기 리스트에 있는 병원들은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중 집과 가장 가까이 있는 곳으로 예약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