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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구마 Oct 11. 2020

비결

차구마 일기 10

일 매출 3.8만 원 안팎에 빛나는 차구마의 군고구마 장사 비결을 전격 공개한다.

(삼십팔만 원 아니다. 삼만 팔천 원이다.)


1. 군고구마통을 산다. 

-20만 원 언저리에서 드럼통을 개조해 만든 군고구마통을 구매한다(배송비 포함, VAT 별도).

군고구마통은 크게 장작을 태우는 방식과 가스를 이용하는 방식이 있으며, 

나는 추억의 맛을 내기 위해 장작식으로 결정했다(그리고 매일 많이 울었다). 

*가스 공급이 가능하다면 확실히 가스식이 편하다.


2. 군고구마를 팔 적당한 장소를 물색한다.

-나는 제법 유명한 관광지에서 청년들이 운영하는 농산물 매장 앞에 자리 잡았다. 

나의 주방은 망가진 트럭 위, 사무실은 망가진 트럭 안. 겨울바람과 맞서야 한다.

자고로 군고구마는 추워야 제맛이라 했다(근데 늘 나만 추운 것 같았다).

 

3. 고구마를 구매한다.

-제주도 현지에서 *삼촌이 재배한 꿀고구마를 저렴한 가격에 떼 온다. 보관만 잘할 수 있다면 한 번에 며칠 치를 떼어 와도 좋다. 

*제주도에선 성별 상관없이 어른을 삼촌, 혹은 삼춘이라 부른다. 삼촌 감사했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_ _  )

 

4. 종이봉투 등 기타 필요한 용품들을 구비한다.

-군고구마를 담아줄 누런 종이봉투, 장작, 장작에 불을 지필 신문지와 토치, 공기주입기(삼시세끼 보신 분들, 부채질로 해보겠다고 따라 하지 마세요. 진짜 불 잘 안 붙어요), 소중한 고객의 거스름돈이 들어있는 전대, 군밤 모자 같은 방한용품 등.


5. 가격과 영업시간 등을 정한다.

-고구마 장수 맘대로. 


6. 고구마를 굽는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면, 이제 장작불을 피우고 고구마를 굽는다.

관광객들 혹은 행인들이 몰릴 시간에 맞춰 미리미리 고구마를 구워낸다. 장작식 군고구마통에 날씨가 춥다면 굽는 속도가 생각보다 더뎌진다. 장작이 습기라도 머금은 날엔 불 대신 연기와 눈물만 난다. 손님이 몰렸는데 구워진 고구마가 없으면 눈물이 더 난다. 


7. 열심히 판다.

-정말 열심히 굽고 판다. 고구마가 구워지기 전까지 사색에 잠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 손님이 많을 땐 밝고 유쾌하게 대접하고, 손님이 적을 땐 최대한 불쌍하고 우수에 찬 표정으로 기다린다.(괜히 콜록콜록 기침을 한 번씩 하는 것도 괜찮다. 다만 이 시국엔 좀 곤란하다.)


위의 모든 과정들이 여전히 생생히 기억난다. 겨울은 매년 돌아올 거고, 그래서 매년 생각날 테다.

조금 고생스러웠고, 결과는 신통치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피식 웃음이 난다. 그런 기억이라면 추억이 맞다.


그리고 당신에게도 이런 추억이 하나쯤은 있었으면 좋겠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어쨌든 군고구마는 따뜻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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