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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르미 Oct 24. 2024

1. 상근이 이야기

  지금부터 나는 내가 만나는 친구들의 사연을 하나씩 차근차근 들어보려 해 

  첫 번째 사연은 상근이의 생이야           



상근이 이야기     


  유기견 상근이는 이름 없는 시골개였대 

  생후 2개월에 노부부에게 입양된 상근이는 1년 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마저 병원에 입원하면서 아들가족이 와서 서울로 모시고 가는 바람에 빈집에 혼자 살게 되었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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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후 상근이는 그 집 마저 허물어지자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대. 그렇게 며칠을 굶으며 사람을 피해 다니다가 추위에 떨며 쓰러진 상근이를 누군가 데리고 쉼터로 왔나 봐


  우여곡절 끝에 이곳으로 오게 됐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자세한 내용은 나도 잘 몰라. 

  우리 상근이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하자. 


"상근아 너의 사연을 우리에게 들려줄래?"

 



  안녕? 나는 상근이야. 사람들은 나를 유기견이라고 불러. 나는 이곳 쉼터에 오기까지 참 먼  길을 걸어왔지. 그 여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어떻게 다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내가 기억하는 건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함께했던 그때야. 아직 강아지였던 내가 할머니의 따뜻한 손길과 할아버지의 온화한 미소를 받으며 자랐지. 할머니는 항상 나를 안아주었고, 할아버지는 내가 뛰어놀 때마다 웃으셨어. 그때는 세상이 이렇게 잔인할 줄은 상상도 못 했어.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어. 할머니가 떠나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도 병원으로 가셔야 했어. 갑자기 혼자가 된 나는 그 집에 남겨졌어. 그들은 나를 돌봐줄 시간이 없었나 봐. 집도 결국엔 무너지고 말았어. 할아버지의 아들이 집을 팔아버려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졌지. 내가 알던 따뜻한 냄새들은 다 사라졌고, 대신 기계 소리와 기름 냄새, 차가운 콘크리트만 남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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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 후로 떠돌이 개가 되었어. 이웃 아주머니들이 가끔 먹을 것을 주고, 동네 아이들이 나를 귀여워해 주기도 했지만,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건 술에 취한 그 남자였어. 이유 없이 나를 때리고 발로 차고, 술병을 던지며 화를 풀던 그 남자. 그가 다가올 때마다 나는 두려워서 몸을 떨었어. 그날이 떠올라. 내가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그날, 그는 나를 더 심하게 괴롭혔고, 나는 결국 그곳을 떠나야 했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나는 또 다른 공포를 마주하게 됐지. 나무 더미에 몸을 뉘고 잠을 자던 어느 날, 고양이몸에 기름을 바르고 무자비하게 불을 지르는 그 청년을 보았어. 고양이를 구하려고 용기를 내어 그에게 달려들었지만, 그가 내 머리를 몽둥이로 내려쳤어. 머리가 깨질 듯 아팠고, 시야가 흐려졌어. 나는 겨우 몸을 숨기고 며칠을 굶었어. 그때부터 사람을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되었어.

  아직도 죽어가며 공포스러워하던 고양이의 목소리가 뇌리에서 떠나질 않아.

  그 고양이를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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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씨는 어느덧 선선한 바람이 불더니 찬이슬이 내리고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찬 기운이 돌았어. 춥고 배고팠지만, 사람들에게 다가갈 용기가 나지 않았어. 어느 날, 나는 길 한복판에서 더 이상 움직일 힘이 없어 그만 쓰러졌지. 


  그때 누군가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나를 감싸 안았어. 그는 두 10살이 채 안된 두 딸을 가진 아빠였고 함께 있던 아내는 그 남자만큼이나 나를 걱정하며 내게 물과 먹을 것을 줬어. 그때는 물마실 힘조차 없었지만 생각해 보면 참 고마운 사람이었지. 그 사람 덕분에 나는 여기 쉼터로 올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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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쉼터에선 다들 나를 따뜻하게 대해줘. 하지만 여전히 나는 사람을 완전히 믿지 못해. 그동안 겪었던 일들이 나를 이렇게 만든 것 같아. 그래도 이곳에서는 적어도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 음식도 있고, 추위도 피할 수 있어. 그리고 천천히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들도 있어.


  나는 이제 그저 평범한 삶을 바랄 뿐이야. 다시는 누군가에게 쫓기지 않고, 따뜻한 집에서 편안히 잠들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기를 바라면서...   


  이곳에서 나는 상근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시작하고 있어. 내가 어떤 길을 걸어왔든, 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나는 여전히 살아 있고, 언젠가는 다시 사랑받는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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