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나. 에나?..' 그가 유난히 자주 사용했던 진주 방언이었다. 토속어가 옛 기억을 상기시키는 진주를 작년 사전 답사에 이어 다시 왔다.거뭇하고 긴 얼굴이 아브라함 링컨의 분위기를닮았다고 생각했던 그였다. 어느 설교 단상에서 진리를 전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여러모로 신세를 졌던이의 고향에서 공무를 시작했다.
놋그릇에 담긴 육회 진주비빔밥을 아이들은 소처럼 되새김할 요량인지 10여 분 만에 쓱싹했다.사후 만족도 평가의 큰 요인이 음식이다. 속으로 속되게 흐뭇했다.
진주의 랜드마크 진주성에선 5월 26일부터 열리는 논개 축제 준비로 바빴다.
안전요원이 예약 없었던 문화 해설사를 어렵게 모시고 왔음을 자찬했다. 불뚝한 그의 뱃살이 함께 춤을 추었다.
"진주는 경남 초ᆞ중ᆞ고 선생님들을 배출하는 도시로서, 경남 교육 중추 역할을 합니다. 전통의 진주교대, 경상 사범대.."
문화 해설사는 진주의 교육적 긍지를 강조했다.충무공 시호를 12명이나 받았다는 설명도했다.아이들은 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임진란 3대 대첩을 대답 못하는 아이들에게 해설사의 실망하는 표정이 과하게 정직했다. 행주대첩, 한산대첩까지는 대답하더라만.
촉석루 마루에 맨발로 올라섰다. 나무 바닥에 애잔한 옛날이 찐득했다. 기녀의 애국지정을 품고 남강은 유유히 흘렀다.
이순신 공원 해안길을 버스에 남아 있겠다는 아이 둘을 구슬려서 함께 걸었다.
꿈이 뭐냐고 물었더니 둘 다 꿈이 없다고 했다. 날개가 돋지 않아서 애처로웠다.
미니어처검은 숲이 연상되는 속눈썹을 가진 아이였다. 속눈썹에감탄했더니 속눈썹 파마와 속눈썹 심기의 장단점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거 알아? 여자들이 손끝부터 발끝까지 공들여 꾸미는 것을 남자들이 착각하는 거.남자들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인 줄 아는데, 여자들은 자기만족이란 거 있잖아? 여대 학생들이 멋을 더 많이 부려."
"맞아요. 맞아요.. 꾸미고 나면 기분이 좋아져요."
교실에서는 입을 늘 앙다물고 있던 그 아이가 생동감 있게 반응을 했다.
사진을 여러 장 찍어 주었다. 아이에게 지금 이 순간이 추억으로 잘 새겨지기를 바랐다. 18살 아이의 여리한 손을 잡고 갯바위를 건너고 또 건넜다.푸른 바다와 맞닿은 하늘에는 흰구름이 평화로웠다.
통영으로. 루지 체험
한 시간 이동으로 한국의 나폴리 통영에 도착했다.
통영의 선주(船主) 앞에선 돈 자랑 말라던 옛 충무다. 선주의 딸을 사랑하고도 친구에게 첫사랑을 뺏긴 백석 시인이 시린 마음을 다스린 곳이다.다도해를 바라보며 출렁이던 시심을 시로 탄생시켰던 통영이다.
청마 유치환 시인과 이영도 시인의 연정을 키운 통영여고도 문학 산실이다.
미륵산을 오르면 하롱베이를 연상할 한려수도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박경리 소설가의 묘소가 지척에 있다. 미륵산이 품은 자랑이다.
이 시대, 수능 대세인 '신새벽에 너의 이름을 부른다. 민주주의 만세'라고노래했던 김지하 시인의 장모라고 아이들에게 일러 주었다. 그러한 정보는 산을 오르는 의지를 자극할 수 없었다.아이들은 언덕 같은 산도 싫어한다. 땀 흘리는 것이 싫단다.
통영은 그렇게 문학적인 서정의 도시이나 주제별 체험학습 여정으로 문학 탐사는 소외당한다. 학교 폭력 SNS 사안을 접하다 보면 알 건 다 아는 나이다. 그런데 주제별 체험학습 설문 결과를 보면 잘 먹고 현란하고 통쾌한 것에관심이 더 많다. 단세포고2라고말하고 싶다.
아이들에게 가장 핫한 체험은 Luge였다. 세계 5군데만 있다고 했다. 뉴질랜드 본사에서 운영을 해서 티켓팅이 뉴질랜드 전산망으로 전송되기에 줄 서서 인내심을 발휘해야 했다.
아이들 뒤에서카트를 매단 스카이라이드 후에 또다시한 시간을 기다렸다. 틱 장애가 있는 아이가 한 손을 가끔씩 뗀다는 사실을 안전요원에게 말했다. 카트에 앉고 나서야 체험이 불가능하다고했다. 동행한 특수 학급 교사가 불편한 기색 없이 아이를 데리고 돌아갔다.제한이 일상이라는 듯이.
바다가 보이는 산비탈을 달리는 Luge 체험에 아이들은 주제별 체험의 방점을 찍었다.맥박들이 물고기처럼 펄떡거렸을 것이다.
통유리를 덮은 암막 커튼이 손끝 두 마디로도 스르르밀렸다. 큼직한창으로 들어온 통영 미장센에 연 이틀 젖었다.
어둠이 다도해로 살포시 내려앉았다. 수평선을 가뿐히 디딘 후에 파도를 따라 해안으로 밀려왔다. 그 어둠은 고개를 한 번 들어 숨결을 가지런히 다듬었다.마리나 리조트 308호 내 홀로의 방 통유리를 건너왔다. 길게 드러누웠다.
칠흑의 바다에서 파도는 밤새 철썩였다.
양귀비 꽃밭의 꽃들은 얇은 몸을 파르르 떨었고, 정박한 낡은 고깃배에 해달이 올라앉았다.
공무 외적인 사소한 풍경이 경이로움으로 마음을 채웠다.풋풋한 나이의 남교사가 양귀비꽃을 처음 보았다고 했다. 들떠서 코를 들이댈까 망설였다. 관상용인 줄 진짜 모르는 것 같았다. 다른 이는 어젯밤에 순식간에 떨어지던 별똥별을 처음 보았다고얘기했다.나는 꼬리 긴 해달을 처음 만난 저녁이 있었고, 잎과 표정이 없어도 환상적 아름다움이었던 흰꽃을 처음 본 새벽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