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주 동안 애지중지 돌보던 녀석들이 든 통을 들고 나서는 아내가 웃기기도 하고 이해가 안 되는 눈빛을 보낸다. 농사에 도움을 주겠다는 건지 방해를 놓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단다. 아군이 아니라 적군이라는 거다. 그러면서 텃밭 작물이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놓아주란다.
원래 있던 우리 밭에 데려다 놓고 싶은 맘 컸지만, 매주 가서 손 봐주지 않으면 큰 일 나는 것처럼 부지런한 주인장이라 솎아내고 뜯어낸 작물 속에 또 붙어올 것만 같아 조금 떨어뜨려 놓아주며 작별의 말도 잊지 않았다.
‘너희들이 나고 자란 이 곳에서 잘 먹고 잘 지내라이.’
텃밭의 살아있는 생명체를 키우는 걸 보다 보니 한 알의 씨앗이 뿜어 올리는 백 배 천배보다 더 많은 양도 놀랍고, 그것들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경건해지며 작은 미물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맘이 마구마구 솟아오르는 신기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다.
사월의 텃밭이 가벼운 경쾌함과 들뜸이었다면
오월 텃밭은 상큼 발랄하며 유쾌하고 설렘 한 가득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어울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오늘 아침 마주한 유월의 텃밭은 진지한 듯 진하고 묵직한 첼로 소리처럼 다가왔다.
텃밭에 도착하면 꼭 치러야 할 의식처럼 천 평(3305 m2)도 넘는 전체 밭을 수그리고 쪼그리며 한 발 한 발 가까이 더 가까이 들여다보고 매만진다. 차에서 내려 유월의 밭을 바라봤을 때 받았던 첫 느낌의 까닭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그래 이거였어.
댕글댕글 대롱대롱 으챠으챠 으라차차!!’
수줍은 듯 꽃이 피고 진 자리에 알알이 튼실한 열매를 매달고 있으니 이렇게 진하고 묵직하게 보였던 거.
‘에고고, 일주일 사이 이렇게나 몸이 불다니!’
다소 몸 줄기에 비해 버거워 보이는 열매들을 매달고선. 지지대와 끄나풀이 없었더라면 꼬꾸라졌거나 꼬부라지고도 남을.
‘그래 그래, 너도 너도 애썼어. 오구오구 너도 너도 대견하고 놀라워!!’
천 평(3305 m2)이 넘는 텃밭 속에 심어진 녀석들 만나고 있는 동안, 그이는 삽과 호미 들고 울 텃밭 식구들 한 녀석 한 녀석 매만지며 쓰러진 토마토 줄기 세워주고 있다. 비바람에도 넘어지지 않을 만큼 우뚝 선 옥수수 녀석들 허리띠는 풀어주며 흙도 한 번씩 뒤집으며 아내가 이제나 저제나 돌아오나 보조를 맞추고 있는 갑다.
한두 시간 눈 맞추며 사랑의 인사 나누는 시간! 감자꽃, 오이꽃, 수박꽃, 쑥갓 꽃봉오리, 강낭콩꽃, 배추꽃이 이렇게 어여쁘고 아름다운 걸.
아쉬움 뒤로 하고 돌아오면 직접 딸 상추와 쑥갓, 쌈배추를 기다리게 해 준다. 한 잎 한 잎 따는 느낌과 손톱 밑에 때가 끼더라도 흙이 닿는 느낌이 참 좋다.
4평(13m2) 남짓한 텃밭 그이 혼자 왔더라면 10분이면 후다닥 끝낼 일거리.
아내가 넓은 텃밭을 한두 시간 다 돌아보고 올 때까지 천천히 정리하며 기다려주는 그것, 무심한 듯 무뚝뚝한 그이의 아내 사랑법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