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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Jun 05. 2021

무뚝뚝한 그이의 아내 사랑법

텃밭은 생명도 사랑도 키워낸다.

기다려졌다, 주말 아침이.     


살아있는 생명체와 함께 한다는 건 그게 아무리 작은 녀석이라 할지라도 손이 가고 신경이 쓰이기는 매한가지. 지난주 배춧잎에 붙어왔던 달팽이 녀석을 일주일 동안 재워주고 먹여 키워 텃밭으로 돌려보낼 거라 맘먹은 일을 깜박하고 그냥 나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일주일 더 같이 지내며 깨끗한 물로 목욕시켜주고 좋아하는 배춧잎도 넣었다가  다른 채소와 당근도 넣어주었다. 어찌나 정직한 녀석들인지 초록 잎을 먹곤 초록 똥을 당근을 먹은 후엔 주황 똥을 눴던 녀석을 이번엔 기어코 텃밭으로 되돌려 주고 싶었다.

내 기준에 깨끗한 물의 목욕이지 소독약 냄새가 녀석들에겐 역겨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 것이다. 늘 몸에 매달고 다니는 집 색이랑 닮은 흙내음 맡으며 이른 아침 탱글탱글 매달린 이슬 받아먹는 시간도 좋을 텐데...

맛난 식사할 때 들려줄 온갖 새 소리랑 가끔씩 온 산 가득 울려 퍼지는 뻐꾸기 소리까지...

내가 많은 걸 뺏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자 한시라도 빠르게 되돌려 놓고 싶은 것이다.    


“그 녀석들 해충이야! 가을배추 자랄 때면 아침마다 젓가락으로 녀석들과 배추벌레 잡느라 얼마나 애 먹는지 모르지...”

2 주 동안 애지중지 돌보던 녀석들이 든 통을 들고 나서는 아내가 웃기기도 하고 이해가 안 되는 눈빛을 보낸다. 농사에 도움을 주겠다는 건지 방해를 놓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단다. 아군이 아니라 적군이라는 거다. 그러면서 텃밭 작물이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놓아주란다.   

 

원래 있던 우리 밭에 데려다 놓고 싶은 맘 컸지만, 매주 가서 손 봐주지 않으면 큰 일 나는 것처럼 부지런한 주인장이라 솎아내고 뜯어낸 작물 속에 또 붙어올 것만 같아 조금 떨어뜨려 놓아주며 작별의 말도 잊지 않았다.  

   

‘너희들이 나고 자란 이 곳에서 잘 먹고 잘 지내라이.’    


텃밭의 살아있는 생명체를 키우는 걸 보다 보니 한 알의 씨앗이 뿜어 올리는 백 배 천배보다 더 많은 양도 놀랍고, 그것들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경건해지며 작은 미물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맘이 마구마구 솟아오르는 신기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다.    

사월의 텃밭이 가벼운 경쾌함과 들뜸이었다면

오월 텃밭은 상큼 발랄하며 유쾌하고 설렘 한 가득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어울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오늘 아침 마주한 유월의 텃밭은 진지한 듯 진하고 묵직한 첼로 소리처럼 다가왔다.   

  

텃밭에 도착하면 꼭 치러야 할 의식처럼  천 평(3305 m2)도 넘는 전체 밭을 수그리고 쪼그리며 한 발 한 발 가까이 더 가까이  들여다보고 매만진다. 차에서 내려 유월의 밭을 바라봤을 때 받았던 첫 느낌의 까닭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그래 이거였어.

댕글댕글 대롱대롱 으챠으챠 으라차차!!’


수줍은 듯 꽃이 피고 진 자리에 알알이 튼실한 열매를 매달고 있으니 이렇게 진하고 묵직하게 보였던 거.

‘에고고, 일주일 사이 이렇게나 몸이 불다니!’


다소 몸 줄기에 비해 버거워 보이는 열매들을 매달고선. 지지대와 끄나풀이 없었더라면 꼬꾸라졌거나 꼬부라지고도 남을.


‘그래 그래, 너도 너도 애썼어. 오구오구  너도 너도 대견하고 놀라워!!’  

  

천 평(3305 m2)이 넘는 텃밭 속에 심어진 녀석들 만나고 있는 동안, 그이는 삽과 호미 들고 울 텃밭 식구들 한 녀석 한 녀석 매만지며 쓰러진 토마토 줄기 세워주고 있다. 비바람에도 넘어지지 않을 만큼 우뚝 선 옥수수 녀석들 허리띠는 풀어주며 흙도 한 번씩 뒤집으며 아내가 이제나 저제나 돌아오나 보조를 맞추고 있는 갑다.   

  

한두 시간 눈 맞추며 사랑의 인사 나누는 시간! 감자꽃, 오이꽃, 수박꽃, 쑥갓 꽃봉오리, 강낭콩꽃, 배추꽃이 이렇게 어여쁘고 아름다운 걸.

아쉬움 뒤로 하고 돌아오면 직접 딸 상추와 쑥갓, 쌈배추를 기다리게 해 준다. 한 잎 한 잎 따는 느낌과 손톱 밑에 때가 끼더라도 흙이 닿는 느낌이 참 좋다.


4평(13m2) 남짓한 텃밭 그이 혼자 왔더라면 10분이면 후다닥 끝낼 일거리.

아내가 넓은 텃밭을 한두 시간 다 돌아보고 올 때까지 천천히 정리하며 기다려주는 그것, 무심한 듯 무뚝뚝한 그이의 아내 사랑법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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