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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Jun 07. 2021

수제비

한 끼 식사는 사랑이다.

한 끼 식사는 사랑이다. 손수 장을 봐다 여러 과정을 거쳐 한 접시 담아 챙겨주는 사람도 챙김을 받는 사람도. 그것이 설령 직접 요리하지 않는다 한들 어떠랴. 다른 사람 손을 빌린 대가를 충분히 지불하고 사 먹는 음식 또한 마찬가지일 터.    


옷을 챙겨 입으라 했다. 수술 후 퇴원한 지 며칠 되지 않을 때라 병실에서 집만 바뀌었지, 난 아직 환자인데... 외출을 막 하기엔 아직 이른 건 분명하다.    


오월의 중간 요일엔 어린이날도 부처님 오신 날의 휴일이 있었다. 아픈 몸으로 걱정과 두려움 한 가득. 몸이 성하고 온전해야 빨간 날도 휴일도 누릴 맘의 여유를 한 뼘쯤 낼 수 있는 건가. 그날이 그날 같고 해가 나고 매일 같이 비가 와도 별 감흥이 없었다.    


느릿느릿 굼뜬 몸 수술 후 회복하느라 누웠다 앉았다 하는 나에게 어디 정해 놓은 데가 있는 듯 외출 준비를 하라는. 늘 그이는 그랬다. 평소 아프지 않을 때도 혼자 열심히 찾아보고 옷 입으라 할 때 챙겨 입고 나서면 된다.     

먹을 곳을 미리 찾아보고 간다는 게 나로선 아직 이해가 안 된다. 그곳을 실컷 둘러보고 먹는 것은 이쪽저쪽 다녀보다 깔끔하고 맛있을 거 같은 느낌이 오는 곳 들어가면 되는데... 못 먹고 죽은 귀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먹을 곳을 찾아 나서는 게 못마땅한 거다.    


지난번 가족여행으로 제주를 갔을 때 네 가족 모두 여행 목적이 안 맞았다. 볼거리 위주로 다니는 나와 먹거리 위주로 먼저 찾고 나설 뿐만 아니라 볼거리는 등한시되는 것이  대놓고 못마땅했다.


아이들도 느꼈는지 가족 계를 모아 여행을 가자는 말도 쏙 들어가 버렸다. 먹을 곳만 정하고  길을 나선다는 게 솔직히 아직 적응이 안 된다.    


지금 나섬도 볼거리를 위함은 아닐 테고, 따로 맘 내어 줌을 감사하며 아픈 배를 부여안고 겨우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평소 입던 바지 입고 허리춤의 고리를 걸기엔 무리였다. 펑퍼짐한 원피스가 걸리적거리지 않고 편하고 좋았다.     


어디 가느냐고 묻지 않고 지하에 대어 놓은 차를 몰고 오는 동안 1층 출입구에서 기다렸다. 곧 띠웅 소리를 내며 나오는 차를 만나 올라탔다. 오후 4시 넘은 늦은 시간인데, 해가 길어져 훤한 대낮 같은 밝음이다.    

 

서울은 어느 방향이든 누군가는 움직임을 하기에 도로 위 차들은 시간에 상관없이 밀린다. 평소 가던 길이 아니어서 어디 가냐고 이제야 물었다.    


“수제비 먹으러.”


대개 남자들이 그렇지만, 음식 가리지 않는 그이 또한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다. 내가 무지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 집 근처도 아니고 도로 위 차들이 빼곡한 곳을 지나 어딘가에 있을 수제비를 먹으러 가기 위해 큰 도로 위에 차를 올린 것.     


순전히 나를 배려한 음식 찾으러 가는 길임을 알기에 불편한 배를 감싸 안고 의자를 뒤로 젖혔다. 차창 밖 수려하게 뻗은 도봉산과 수락산 심지어 북한산의 능선과 산봉우리를 올려다보며 감동이 일렁인다. 산이 주는 아늑함과 웅장함과 싱싱함은 언제나 좋다.

   

며칠 병실에 갇혀 지내느라 답답했을 맘을 풀어주려 한다는 걸 알고 있다. 1~2년 산 것도 아닌 30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하다 보니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어지간한 건 어떤 맘일지 서로 알아차리는 거다.    


수제비 한 그룻 먹기 위해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곳까지. 그 주변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닌 곳.

뭔 수제비길래 거기까지 차비도 안 나오겠다는 둥 차 막히는 데 꼭 이 곳까지 한 끼 먹기 위해 가야 하나 했을 텐데...  기운 얼른 차리게 해 주고픈 그이 만의 방법이겠거니 여겨지니 고맙고 감사한 맘 장착시키고 어떤 맛일지 궁금해하며 따라가고 있다.    


그 이는 여길 찾기 위해 휴대폰 속을 시간 들여 찾고 뒤졌을 테다. 맛이 있었다는 후기도 다 읽어보았겠지. 그렇다면 블로그가 이 사람이 그곳을 찾는 적잖은 영향을 미친 거네. 많은 이들의 흐름이 이럴진대 따라야 하는 건가.    


아내는 블로그를 잘하지 않고 누군가와 만남을 가져도 먹을 곳을 정해 놓고 가지 않는데... 작년 배울 때 잠시 하다 만 블로그.  음식점 갈 때면 어디에 쓸지 모를 사진은 열심히 찍어대는데, 이번 참에 소생시켜 볼까나.  정보를 줘야 할 텐데, 순전 내 개인적인 느낌만 늘어놓고 도움 1도 안 될까 봐  걱정부터 하는 거다.    


여간해서 도로 위의 차가 뚫리지 않는다. 수제비를 먹으러 간다 하니 오래전 엄마가 해 주던 수제비가 불현듯 떠오른다.

더위가 한창일 때 엄마는 땀을 뻘뻘 흘리며 양은 양푼에 밀가루 반죽을 하느라 여러 번 치대었다. 공기를 빼주기 위함이라는데, 그러면 더 쫀득쫀득한 맛있는 맛을 느낄 수 있다며 그런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거다.    


한 귀퉁이 툭 떼어주면 꾹꾹 눌러 만두를 만들었다 가래떡도 만들곤 했다. 손에 묻지 않을 정도가 좋은데, 어떤 때는 반죽이 질어 양 손 가득 떡이 될 때도 있다. 이쯤 되면 엄마는 손 씻고 얼른 끝내라고 소리쳤을 테다. 여기저기 문질러 수습 곤란해지면 일거리만 늘 테니까.  

  

미리 준비된 펄펄 끓는 육수에 얇은 막처럼 손바닥 넓게 펴서 톡톡 던지다 국자로 휘휘 저어 보글보글 한참 끓어오르면 멸치 육수 냄새와 밀가루 익는 냄새로 입맛을  쩝쩝 댔다. 한 대접 떠 주면 성급하게 먹다가 입천장 까지게 먹던 그 수제비.

지금은 다시 맛볼 수 없는 맛이 되었다.    


엄마가 끓여주던 추억의 수제비로 입 맛 다시는 동안, 드뎌 목적지에 도착했나 보다.

22주년 기념이라며 가게 앞엔 수많은 서양란 화분이 가득했다. 오랫동안 가게를 유지하며 운영하고 22주년 기념행사까지 한 걸 보면 예사롭지는 않다. 일단 맛보지 않아도 주변 환경이 손맛을 말해주는 듯.

빈대떡을 먼저 하나 시켜 먹는 동안, 보글보글 끓고 있는 수제비가 한 뚝배기 나온다. 된장과 우거지를 넣어 끓인다는 특이점이 있단다. 빈대떡까지 먼저 먹은 후라 배불러 수제비 고유의 맛을 느끼지 못했다. 밑반찬으로 조금 주는 것도 아닌 큰 걸 먹어버렸으니.  

  


그 멀리 차가 막히는 모든 걸 감수하며 한 끼 식사 중 아내가 분명 좋아할 수제비를 먹이기 위함은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던가. 볼거리가 있는 곳이었다면 더 금상첨화이었을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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