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아이들이 연필로 뭔가 쓰윽쓱 그릴 때는 화려한 드레스에 왕관을 쓴 공주 그림이었다. 남자아이들은 그림보단 놀이를 즐기고. 불과 3~4년 지났을 뿐인데, 지금은 정말 달라진 듯하다.
다른 사람 다른 종족을 만난 것처럼 낯설다. 여자, 남자 그림 그리기에선 구분이 나누어지지 않는다. 두 쪽다 엇비슷하게 그리는 걸 주로 한다는 말이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건 주로 어몽 어스, 자기 가진 힘보다 훨씬 더 큰 힘을 가진, 아이템이 많을수록 세진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그려댄다.
어몽 어스의 등장인으로 외계인과 우주인을 마주한 듯 이목구비가 드러나지 않는다. 하트도 전달하는 심장을 가진 듯하다.
완성한 아이들은 친근함을 너머 자신 모습을 마주한 듯 기뻐하고 환호한다. 기쁨의 소리 또 다른
나의 아바타, 힘을 주는 무기 장착의 아이템인 것이다.
어쩌다 나와 가족, 친구들이 드러나는 모습을 그릴 때면 나도 낯설어할 만큼 아이들이 의도적으로 사람 모습 그리자고 할 때만 그린다. 스스로 우러나서 그리는 친구를 거의 보지 못한 것이다.
다른 세상을 사는 듯한 아이들과 엄마에 대해 나누면 어떤 이야기들이 쏟아질까 궁금했다. 종일반이라 직장 다니는 엄마, 아빠를 둔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분위기 있는 명상음악과 함께 교실 바닥에 편안히 눕게 하였다. 개구쟁이 녀석들 발장난이 하고 싶고 색다른 분위기에 까르르 깔깔 웃음이 터져 나온다. 둘셋 녀석으로 처음엔 집중하기 힘들다. 그래도 꿋꿋이 눈감고 집중하는 아이들로 인해 겨우 분위기를 다잡고 아침에 만났던 엄마를 떠올려 보는.
‘눈을 감고 엄마를 떠올리니 엄마가 많이 보고 싶어요.’
누군가 한 명쯤 그런 말을 해 줄거라 은근 기대했다. 애석하게 애틋해하며 눈물이 날 거 같은 그런 거 없었다. 엄마가 돈을 벌기 위함이든 자기 커리어를 위해 일을 놓지 않던 자아실현을 위한 그 무엇이든 아이를 맡겨 놓고 일을 나가듯 아이들도 살기 위해 당연히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그렇게 엄마와의 아침 모습을 떠올렸다. 역시 지난번 자신을 엄마, 아빠의 큰 선물이라고 썼던 K는 햄버거 가게에서 44세 엄마랑 7살 주인공이 마주 앉아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맛있게 먹는 걸 떠올렸나 보다.
전등 불빛이 비추는 그림이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다. 둘 사이 사랑의 징표인 빨간 하트. 진한 사랑받고 있음이 그대로 드러나 보인다.
쉬는 날, 자기 방에서 오빠랑 일찍 일어나 놀고 있고, 커튼 사이로 아침 햇살이 들어와도 오래 잠을 자는 엄마, 아빠. 그중에서 아빠가 꼴찌로 일어난다는 C.
다른 날 각각 수업을 하였음에도 아침부터 컴퓨터로 일하고 있는 엄마를 떠올린 쌍둥이 자매 I와 E.
엄마보단 똥 싸고 있는 아빠가 떠올랐던 J. 어느 집이나 아침 풍경은 비슷한 건가. 무심한 듯 자세히도 보았다,
그 외에도 많았지만, 엄마를 사랑해 지금 당장 달려가 보고 싶은 그런 맘 아니었다. 엄마가 아빠가 준 만큼 딱 그만큼 사랑하는 다른 나라 다른 종족 같은 이들의 사랑법이었다. 상처 받고 싶지 않고 주고 싶지 않은 것처럼.
좀 더 깊고 자세히 알려면 수 날이 걸릴 테고, 그 흐름을 계속 쭈욱 따라가 보는 것도 그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될 듯하다.
맛있는 거 요리해 주는 엄마, 공부 잘 가르쳐 주는 엄마는 온 데 간 데 없는 듯하고, 휴대폰과 컴퓨터 많이 하는 엄마, 나 포함 잔소리 대마왕 엄마만 남았다.